(아침에 찾아온 생각, 홍화 산사나무)
창문을 열자 앞산에 구름이 가득하다. 밝은 빛이 보였는데 얼굴색 변하듯 하늘이 변했다. 햇살 밝은 날에 맞이하는 아침은 색다르다. 마음까지 상쾌해져 고맙기만 한 하루의 시작이다. 지난해의 지긋지긋하던 장마가 생각난다. 두어 달 동안 내린 장맛비가 곳곳을 헤집어 마음까지 황폐하게 만들어 놓았었다. 겨우 마음을 다스려 가을을 맞이했던 기억에 맑은 햇살이 그리운 아침이다. 구름이 드리운 아침, 마음까지 울적해지는 기분이다.
햇살이 밝은 날, 나뭇잎 사이로 강렬한 빛이 찾아온다. 빛은 그칠 줄 모르고 달려와 어두운 구석까지 비추어 준다. 어둑한 마음까지 환하게 만들어 고마운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은 아침부터 다르다. 앞산에 낮게 드리운 구름 낀 아침, 뜰 앞 잔디밭으로 나섰다. 아내는 벌써 나와 풀을 뽑고 있다. 자그마한 채소밭엘 들렀던 모양이다. 케일을 몇 장, 상추를 몇 장 따서 오는 중이란다. 오는 중에 만난 잡초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부리고 잡초를 뽑고 있다. 아내는 잡초의 정의가 나와 다르다. 앞뒤로 있는 잔디밭에 잔디 말고는 잡초라 하며 뽑는다. 아내는 정색을 하고 나를 말린다. 자그마한 꽃이라도 피면 잡초가 아니란다. 민들레도 그냥 두고, 수두룩한 제비꽃도 그냥 두잖다.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쁘냐며 핀잔이다. 꽃이 피면 어두운 마음까지 환해지니 잡초도 마음먹기 나름이란다. 어떻게 잔디만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잡초를 뽑으려면 늘, 아내와 등지고 뽑아야 한다. 일일이 참견을 하며 뽑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화단 옆에 홍화 산사나무가 보인다.
잔디밭 가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홍화 산사나무가 얼굴색이 변했다. 시들시들하게 꽃이 진 자국이 뚜렷하다. 꽃이 피면서 보여 주었던 우아함은 온데간데없이 화단을 지키고 있다. 화려하던 꽃은 순식간에 지고, 뿌옇게 구름 낀 앞산처럼 우울한 모습이다. 가까이에 앞산이 보인다. 거두는 눈길에 산사나무가 서 있다. 앞산엔 낮은 구름이 드리웠고, 산사나무엔 화려하던 꽃은 지고 말았다. 햇살이 찾아왔던 앞산에 구름이 내려왔고, 산사나무엔 화려한 꽃이 시들었다. 변한 것은 구름이 왔고 피었던 꽃이 졌을 뿐이다.
구름 속에 갇혀 있는 앞 산,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홍화 산사나무, 꽃은 시들었지만 의연하게 화단을 지키고 있다. 구름이 앉고 꽃은 졌지만 그 자리에 말없이 서 있는 것이다. 구름과 비가 있어야 푸르름이 가득한 산이 맑은 햇살에 빛날 수 있다. 꽃이 피고 저야 화사한 꽃이 다시 필 수 있고, 잡초가 잘 사는 땅이라야 잔디도 살아갈 수 있다. 비구름이 없이 푸름이 있을 수 없고, 화려한 꽃이 지지 않고 열매는 맺을 수가 없다. 앞산은 맑은 날이 오리라는 기다림으로, 홍화 산사나무는 봄이 오면 또 꽃을 피우리라는 기대감으로 서 있다.
주절주절 살아온 삶 속에 세월이 흘러감을 실감하는 아침 시간이다. 어느새 머릿결은 희끗거리고, 많던 머리숱은 가느다란 바람결에도 힘없이 나부낀다. 구름이 낀 날도 있었고, 화려한 꽃이 진 날도 있었다. 햇살 맑은 날은 상쾌하고도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우아한 꽃이 피었을 때는 하늘을 날아가는 삶이었다. 지나온 삶 중에, 구름이 끼고 화려한 꽃이 졌을 때 나의 삶은 어떠했을까? 구름이 끼었다고 불편해하지는 않았을까? 구름이 앉은 산과 꽃 떨어진 산사나무를 바라본다. 잔디 속에 섞여 자란 수많은 잡초를 바라본다.
대부분의 삶은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一喜一悲)의 연속이었다. 구름이 끼어도 불편해했고, 햇살이 따가워도 그러했다. 화려한 꽃이 피어도 더함을 얻으려 했고, 화려함이 쇠잔함을 슬퍼했었다. 잔디밭에 잡초가 있어 늘 불편해했다. 모든 일에 노심초사(勞心焦思)해 하는 삶이었다. 언제나 맑으며 화사한 꽃으로 이루어진 삶을 기대했지만 그렇게만은 살 수 없었다. 파란 잔디밭에 잡초는 자연스러운 순리였다. 구름이 끼고 꽃이 지는 것은 자연의 섭리였다. 고단한 삶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고, 참고 기다림 속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긴 세월 속에 평안한 기다림과 바라봄을 잊고 살아온 삶이었다.
구름이 내린 산은 말없이 비구름을 끌어안고 있다. 꽃이 진 홍화 산사나무는 의젓한 가지를 늘여 화사한 화단을 보듬고 있다. 언젠가 구름 걷히고 맑은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꽃을 피우리라는 기다림에 익숙한 세월이었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할 뿐, 불편해하지 않는다. 지난날을 기억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리를 탓하지 않고, 세월을 탓하지 않는다. 긴 세월 속에 삶은 의젓한 기다림에 익숙해야 하는 세월이 되었다. 불편해도 기다림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삶이 되었다. 구름 낀 아침, 자연을 보며 생각해 보는 세월 속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