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은 보물창고였다, 꽃이 핀 시골집)
계절은 어느덧 봄을 넘어 여름으로 달려간다. 연초록이 벌써 검은 초록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봄이 점점 익어간다는 뜻 이리라. 아름다운 자연은 정말로 위대했다. 인간에게 무수한 먹거리로 명을 잇게 해주고 삶과 쉼을 주는 삶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작은 풀이라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자연의 고마움이다. 드넓은 바다가 끝없는 은혜를 베푸는가 하면, 깊은 골짜기에서부터 얕은 산에서도 무수한 먹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봄에 이르러 인간의 배를 불리는 것이 봄나물이다. 봄나물, 어쩐지 그리움과 고마움이 담긴 그 단어이다.
이른 봄, 산 말랭이엔 연초록의 홑잎 나물이 선을 보였다. 냉이가 서늘함을 물리치면서 향긋함으로 봄을 알려주었다. 쑥이 슬며시 얼굴을 내밀었고, 하얀 솜털을 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었다. 작은 바람에도 바르르 떠는 모습이 앙증맞기도 했다. 민들레가 꽃을 피웠고 질경이가 푸름을 과시했다. 갖가지 산나물이 등장할 즈음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삶을 이어주는 푸름 속에, 고스란히 자란 나물들이 인간의 삶을 풍요하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시골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뒷산, 산나물의 보고로 봄부터 갖가지 나물을 주고 있다.
나물에 관해 아는 것도 없고, 단지 오래전 어머님이 뜯어 오시던 나물만 생각나는 사람이다. 앞치마에 나물을 가득 뜯어 오시면, 어머니는 언제나 흐뭇해하셨다. 취나물을 알고 고비를 알게 해 준 어머니이시다. 몇 년 전에 자리 잡은 시골에도 고사리를 비롯한 많은 나물이 자라고 있음은 이사 후에 알게 되었다. 동네 이웃들이 자랑 거리였다. 홑잎나물과 취나물이 한창이었다. 푸르름 속에 손수 방어하려는 듯 가시로 무장한 두릅이 등장했다. 인간의 이기심이 놔둘 리 없다. 두릅이 점차 쇠어 갈 무렵 취나물과 고비가 고개를 내밀었다. 취나물이나 홑잎나물은 흔하게 대할 수 있는 나물이다. 고사리도 흔히 만날 수 있는 나물이다. 하지만 고비라는 나물은 낯설어 보이는 나물이다.
고비,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섬유질이 풍부하고 비타민, 인과 칼슘 등이 풍부한 나물이란다. 고사리보다도 맛이 좋아 고급스러움을 가진 나물이란다. 고비와 고사리, 모두 양치식물로 고사리 목에 속하지만, 고사리과와 고비과로 나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고사리보다 조금 낯선 고비나물은 숲 속의 소고기라고 할 만큼 맛이 좋으며, 고사리보다 연하고 식감이 좋다. 어렸을 적의 기억이다. 어머니를 따라 나물을 뜯으러 뒷산에 올랐다. 낙엽송이 드리워진 숲 속, 작은 우물이 있었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이다. 작은 우물 덕분에 축축함이 배어 있는 곳곳에 고비가 고개를 들고 나온다. 하얀 솜털을 이고, 꼬부라진 머리를 들고 나온다. 고부라진 머리가 솟아 나오면 긴 대가 나오는데, 거기에도 하얀 솜털이 자라고 있다.
고사리보다도 맛이 좋다는 고비지만 만나기는 쉽지 않았었다. 이웃 사람들은 많은 고비를 꺾어 말린다. 어디서 꺾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제법 많은 양이다. 알려달라고 할 수도 없다. 괜히 불편함을 줄까 해서이다. 봄이 익어 가는 얼마 전, 뒷산이 궁금해 산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이 궁금해서이다. 곳곳에 사람들이 진을 치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다. 한 골짜기를 올라가던 중에 운 좋게도 고비 가족을 만났다. 누구도 알지 못했는가 보다. 가시덤불 속에 숨어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끝부분이 둥글게 말려 나오는 고비가 소복이 나온다. 어려서 어머님과 함께 만났던 그 고비였다. 오랜만에 만난 반갑고도 귀한 고비였다. 사람들의 발길 따라 봄이 깊이 익어 갔다.
푸름이 가득해지면서 두릅 철이 지나며 고비도 어느덧 철이 지났다. 살아남은 두릅은 큼직한 가시를 달고 사방을 경계한다. 살아남았음에 쾌재를 부르고 있다. 고비도 큼지막하게 몸집을 불려 기어이 살아남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푸름 속에 몸을 숨기고 살아남았음이 자랑스럽다. 우거진 산속 식구가 되어 밀려오는 푸름에 몸을 불린다. 짓궂은 나물꾼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바람에 일렁인다. 하지만 뒷산엔 고사리가 지금쯤 나오고 있다. 양지쪽에서는 가끔 볼 수 있지만 음지에서는 아직 나오지 않아 궁금하기도 하다.
곳곳에서 나오는 고사리를 꺾는 묘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살아보려고 나오는 어린싹을 꺾는다는 것이 늘 미안하기만 하다. 내가 놓아둔다고 온전할리는 없지만 항상 미안한 생각으로 고사리를 꺾었다. 얼마 전에 이웃이 고사리를 많이 꺾어 왔다. 뒷산에 한 번 올라가 보기로 했다. 야트막한 산길에 접어들자 푸르름이 가득하다. 어느새 길을 막는 녹음이 가득하다. 곳곳에 많은 사람들이 오간 흔적이 많다. 마치 몽골 사막에 수많은 자동차 길을 연상케 한다. 처절하게 오고 간 흔적들에 갑자기 난감해진다. 어떻게 할까?
어디로 갈까를 망설이던 중, 지난해에 고사리가 많았던 산 말랭이를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고사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섬찟한 생각이 드는 것은 사람의 욕심이 과했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해에 많은 사람들이 고비와 고사리를 따러 나섰다. 인간의 욕심과 과욕에 지쳤는가 보다. 아직도 나오지 않는 고사리 심정을 가늠해 본다. 수없는 사람의 발길에 산이 지쳐있는 듯했다. 자라날 틈도 없이 사람들이 찾았음을 알 수 있다. 곳곳에 길이 있고, 자라나는 녹음이 망가졌다. 인간에 지치고, 과욕에 심술이 난 숲은 대답이 없다. 고사리 한 줄기도 내줄 수 없다는 뜻인가 보다. 어쩐지 미안한 생각에 얼른 내려오고 말았다. 그동안 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