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뜰, 꽃 이야기. 뜰앞 붉은 병꽃)
눈 덮인 앞산이 서서히 물러가고, 앞 도랑 얼음장 밑으로 봄기운이 찾아왔다. 겨우내 얼음장 밑에서 갈갈 거기던 도랑물, 얼음이 녹고 봄바람이 불자 얼굴을 통째로 내밀고 갈갈거린다. 봄이 왔다는 소리이다. 꽃들의 잔치가 서서히 시작될 무렵, 한 포기의 산수유가 노란 꽃을 피웠다. 잎도 아직인 산수유나무, 겨우내 우두커니 서있던 산수유나무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은 노란 꽃을 피웠다. 잎이 나와 푸름이 있었으면 어떨까를 생각도 해 보지만, 나름대로 노랑이 분위기를 살려준다. 돌 틈 사이에 돌단풍이 비집고 나왔다. 서서히 세를 불리더니 하얀 꽃을 피웠다. 자그마한 바위틈에 자리한 돌단풍, 넉넉한 잎사귀를 배경으로 하얀 꽃을 이고 소박하면서도 조용한 돌단풍이다.
봄기운이 스며들면서 뜰앞 잔디밭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살아보겠다고 난리가 난다. 조용하게 소란을 피우는 것은 지면패랭이라 불리는 꽃잔디이다. 겨우내 죽은 듯이 숨죽이고 있던 꽃잔디 줄기에 서서히 푸름이 찾아들었다. 가느다란 줄기를 따라 푸르름이 번지는 모습은 자연의 위대함을 저절로 알게 한다. 대 자연의 신기함과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다. 꽃잔디는 서늘한 바람을 안고도 넉넉한 꽃을 피워준다. 진빨강 꽃을 잔디밭 가로 가득히 깔아 줄 무렵, 영산홍이 서서히 트림을 한다. 어떻게 봄을 알았을까? 꽃잔디가 속삭였을까? 아니면 지나는 바람이 알려줬을까? 잔디밭 가장자리에 가득 심어진 영산홍이다. 서서히 물이 올라 준비를 하더니 자그마한 꽃망울을 달았었다. 서서히 봄이 익어가면서 꽃망울이 입을 벌리며 꽃잔디에 장단을 맞추어준다. 빨강이 넘치도록 꽃을 피워 고맙기만 하다.
아래로는 꽃잔디가 있고, 위로는 영산홍이 빛을 발할 즈음, 도랑 건너 벚꽃이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하얀 꽃으로 무장한 벚꽃이 피면 영산홍에 기가 죽어 있던 철쭉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하양으로 무장한 철쭉꽃이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꽃을 안고 허덕이고 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조용하게
우뚝 서 있던 모과나무가 잎을 내민다. 봄이 왔지만 추운 날씨에 움츠려있던 모과나무가 잎이 나오고 하얀 꽃으로 무장을 한다. 자그마한 꽃이 피었는지 알 수도 없는 모과꽃이 잎사귀 사이로 어느새 가득 피어있다. 외로이 서 있던 명자나무는 진한 빨강으로 도배를 했다. 너무 아름다워 아녀자가 바람날까 집안에는 심지 않았다는 꽃이다. 일명 산당화라 하는 명자나무가 빨강의 진수를 보여준다. 작은 가지로 움츠려있는 라일락은 소식이 없다. 지난해에도 세를 불리지 못했던 라일락이 올해도 꽃을 피우지 못해 못내 서운하다.
붉은빛을 자랑하는 아스틸베도 그냥 있을 리 없다. 붉은 꽃을 피우며 꽃잔치에 한몫할 것이다. 누가 이 아름다운 아스틸베를 노루오줌이라 했던가? 꽃의 아름다움에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을 한다. 공작단풍도 잎을 내밀었다. 공작처럼 화려한 날개를 펴고 우아하게 자리를 차지하려는 공작단풍이다. 서서히 잎이 나오면 붉은 잎으로 잔디밭을 그윽하게 드리워줄 잔디밭의 거대한 우산이다. 잔디밭 가에 우두커니 서 있던 붉은 병꽃나무도 빨간 꽃을 피웠고, 네 그루의 수국이 수북한 꽃으로 나무를 덮었다. 도랑 건너에 하얀 병꽃을 유혹이라도 하듯이 뻘건 병꽃나무가 활짝 피었다. 하양에 분홍이 곁들여진 병꽃나무만 있는가 했다. 여기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빨간 병꽃나무가 흐드러진 꽃을 달고 나타난 것이다. 예상치 못한 빨강의 반란에 잔디밭이 붉게 물들었다. 붉은빛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간다. 울타리 삼아 드문드문 심어놓은 단풍나무가 제법 키를 키워 붉은빛이 햇살에 빛난다.
봄 꽃잔치가 이루어지는 사이에 작은 꽃들도 자리를 잡았다. 패랭이가 꽃을 피웠다. 빨간 꽃이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치열하게 피었다. 노란 수선화가 그냥 있을 수 없고, 지난해에 심어 놓은 산나리가 잎을 내밀었으니 며칠 후면 주황빛 꽃을 피울 것이다. 분홍빛 앵초가 꽃을 피우며 서서히 봄이 깊어간다. 가끔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가 구슬퍼질 즈음, 뜰에는 노란 금계국이 진을 칠 것이다. 올해는 너무 키가 크지 않도록 물을 많이 주지 않았다. 지난해 많은 물로 키를 키워 힘들게 했던 기억 때문이다. 금계국 밑으로 수많은 꽃범의 꼬리가 자리를 잡았다. 어찌 번식력이 좋은지 심어 놓은 것에 비해 너무 번식해 걱정이다. 분홍빛 꽃으로 화답을 할 테고 이어서 구절초가 그만둘 리가 없다. 하얀 꽃으로 마당을 밝게 빛내 주리라.
모과나무 밑에 자리한 밥티시아가 키를 불렸다. 보랏빛 꽃으로 단장을 한 밥티시아가 우아하게 빛을 낼 무렵, 서양톱풀이 빨간 꽃으로 요술을 부릴 것이다. 벌써 키를 훌쩍 키워 놓은 서양톱풀이 꺽다리 주목 옆으로 가득 자리를 잡았다. 잔디밭 가장자리로 가득한 박하가 그냥 있을 리 없다. 곤충을 퇴치하기 위해 아내가 심어 놓은 박하도 제 세상인양 자손을 번식해 놓았다. 어찌 그리 번식을 했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지난해 몇 포기였던 것이 여기저기에 고개를 내밀어 가득하다. 박하의 은은한 향에 하얀 꽃을 피우며 각종 곤충을 충분히 방어해 줄 것이다. 빨간 금낭화, 며느리주머니 꽃이 주렁주렁 주머니를 달았다. 분홍에 하양으로 무장한 주머니가 작은 바람에도 살랑인다. 마당 곳곳에 빨간 주머니를 달고 일렁이고 있다.
주목나무 밑으로는 많은 꽃가족들이 자리를 잡았다. 우선은 가을을 빛내 줄 국화이다. 지난해에 몇 뿌리 심어 놓은 것이 한껏 세를 불려 놓았다. 가을이 저물 무렵 주황색 꽃으로 장식을 할 테고, 일본 조팝나무도 들썩이고 있다. 영산홍 밑으로 야금야금 자리를 넓히더니 어느새 남의 자리까지 탐내고 있다. 소나무 밑으로는 말발도리가 하얀 꽃으로 무장을 했다.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말편자 같다 하여 말발도리라 하는 꽃이다. 말발도리가 하얗게 꽃을 피우는 사이, 블루베리는 추위 때문인지 꽃이 실하지 않아 걱정이다. 높다란 나무에도 꽃이 피었다. 산수유가 파란 잎으로 무장하는 사이, 홍화 산사나무가 붉은 꽃을 피웠다. 나뭇잎 사이로 핀 홍화 산사나무는 수줍은 빨간 꽃을 피워 제 몫을 하고 있다. 삼색 버들, 무늬 개키버들이 세를 불러간다. 흐드러지게 줄기를 늘어트리고 아리랑을 불러준다. 두고두고 아름다움을 주는 우리 집의 으뜸 상쇠이다.
서늘한 날씨 탓에 언제나 늦은 꽃구경을 하는 복을 누린다. 다른 곳의 꽃이 질 무렵이면 꽃이 피기 때문이다. 하얀 벚꽃이 질 무렵 도랑 건너에 하얀 야광나무가 이어서 피었다. 밤이면 하얀빛을 발하는 야광나무 꽃, 달밤이면 흐드러진 모습이 가히 환상적인 그림이 된다. 거기에 구수한 소쩍새가 분위기를 거든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야광나무가 지루해질 무렵에 아카시나무가 꽃을 피웠다. 동네 벌들이 다 모여들었다. 아직도 그 꽃은 피어있다. 언제 지려는지 알 수가 없다. 여름까지 내내 피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아카시나무 밑으로 하얀 찔레꽃도 한몫을 거들었다. 하양과 하양으로 어울림에 하얀 밤은 가로등 빛에 더 빛이 난다. 하얀 꽃잔치를 빛내는 도랑물이 오늘따라 갈갈거린다. 하양으로 잔치를 하는 시골마당 끝이다.
서서히 봄이 익을 무렵, 수돗가에 하얀 꽃을 피웠던 보리수나무가 열매를 가득 안았다. 너무 많은 열매를 달고 힘겨워한다. 줄기마다 열매를 달고 있는 보리수나무가 넉넉한 그늘을 준다. 서서히 세를 불리던 만첩 빈도리, 하얗게 꽃을 달았다. 껑충한 키에 하양이 매달려 그네를 타고 있다. 수국과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하양이 넘쳐나면서 가장자리에 황 겹 매화가 꽃을 피웠다. 언덕 위에 치렁치렁 세를 불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여기에 질세라 루드베키아가 꽃을 꽃을 피울 것이고, 베를 짜는 삼나무를 닮았다는 삼잎국화도 꽃을 준비하고 있다. 노란 꽃으로 껑충한 키를 어울리게 만들어 줄 것이다.
신나는 꽃잔치가 저물어가면 서서히 가을이 달려오고, 하늘에 고추잠자리 붉은빛이 가득할 것이다. 서서히 가을이 물들어 갈 무렵, 국화꽃이 만발한 곳에 서서히 하얀 구절초가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리라. 달맞이 꽃이 달을 맞이하고, 구절초 하얀 꽃까지 잔치의 막을 내리면, 하얀 눈꽃이 잔디밭을 덮고 또 새봄을 기다릴 것이다. 일 년 내 수많은 꽃들이 같이 살자며 꽃을 피워대니 오늘도 나의 뜰에 꽃을 돌봐주러 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