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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l 21. 2021

이웃들의 수다는 오늘도 계속된다.

(아줌마들의 수다, 능소화)

저녁을 먹고 난 시간, 거의 오후 7시가 되었지만 아직도 밖은 훤하다. 이층에 올라 컴퓨터 앞에 앉아 오전에 생각했던 글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아내는 얼마 전에 시작한 수채화 작업을 위해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비가 올까 말까 망설이며 조금은 더운 날씨인데, 원래 서늘한 시골이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는 동네이다. 아직 에어컨을 한 번도 틀어 본 적이 없으니 돈 들여 에어컨을 사놓고만 있는 동네이다. 갑자기 이웃집 아주머니들 소리가 들린다. 운동을 하러 갈 모양이다. 그러면서 아내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운동하러 가자고 부르는 소리이다.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모여 운동을 하며 수다를 떨려는 모양이다.


시골집이 자리한 곳은 긴 도랑을 끼고 동네가 형성되어 있다. 도랑 건너편으로는 야트막한 산이 자리하고 있고, 산에는 낙엽송을 비롯한 나무가 가득하다. 봄이면 각종 나물을 길러내고, 가을이면 큼직한 알밤을 쏟아내는 밤나무가 있는 보물창고 역할을 하는 산이다. 그 앞으로 동네가 길게 늘어서 차량이 오갈 수 있는 도로가 형성되어 있다. 동네 이웃 아주머니들은 500여 m는 될 듯한 길을 걷거나, 큰길까지 2km 정도 되는 길을 적당히 걸으면서 수다를 떨며 덤으로 운동을 하곤 한다. 오늘도 운동을 하자고 아내를 부르는 소리이다.

동네 길을 따라 핀, 메리골드

시골로 이사를 오면서 가장 걱정을 한 일은 동네 이웃들과 아내가 어울리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였다. 동네 사람들이 텃세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을 갑자기 팔고 나갈 수도 없고, 외면하고 살 수도 없는 일이니 내심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시골집에 들어오고 나서 이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금방 알았다. 대문이 없고 있어도 있으나 마나 한 동네, 비밀스러운 일을 할 수 없는 시골 동네이다. 이웃들이 언제나 다정다감하고 늘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가끔 채소가 문 앞에 놓여 있고, 갑자기 모이라 하면 먹거리가 있는 것이다. 삼겹살을 구워 먹다 보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다. 먹거리를 하나씩 싸들고 찾아온다. 낮에도 아내는 또 이웃집으로 마실을 갔다. 옥수수를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다 모여서 옥수수를 먹는다. 아내는 남은 옥수수를 싸가지고 오면서 고마워한다. 엊그제는 통닭을 먹으러 갔다 왔다. 가까운 곳에 5일장이 열렸는데, 통닭을 사 왔으니 통닭과 맥주를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단다. 언제나 먹거리가 있으면 혼자 먹을 수 없는 동네이다. 

시골길을 밝혀주는 황금 낮 달맞이 꽃

며칠 전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감자를 캐야 하는데, 계약을 한 사람이 상품성이 있는 것만 가져가고 밭에 남은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좋은 감자만 골라 갔어도 남은 것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단다. 시장에 나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으니 밭으로 와서 가져가라는 것이다. 친구의 부름에 얼른 대답을 하고 찾아간 감자밭, 너무 감자가 아까워 차로 가득 실고 왔다. 동네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며 감자 잔치를 벌였다. 너무나 맛있다고 여러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여름날이 왔으니 이제는 옥수수의 계절이 돌아왔다. 옥수수를 맛보라며 수없이 울타리를 오고 갈 것이다. 


이웃집에 오이를 심어 놨다면서 따다 먹으라 한다. 호박이 많이 달렸다면서 언제든지 따다 먹으란다. 느닷없이 아욱 바구니가 오가고, 근대가 한 아름 문 앞에 와 있다. 동네 이웃들이 손수 길러 나누어 주는 것이다. 도랑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이웃들이 서먹서먹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는 정을 베풀어 주고 있는 시골이다. 큰 소리가 나서 바라보면 이웃들이 모여있다. 하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여기에 먹거리가 빠질 수 없다. 옥수수가 등장하고, 통닭이 등장하고 엊그제는 번데기까지 등장했단다. 도랑에 물이 흐르는 동네, 그곳엔 파란 파라솔이 설치되어 있다. 먹거리를 장만해 수시로 모여 발을 담그고 있다.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불러 모아 수다를 떤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많을까?


아내가 이웃들과 운동을 하러 나간 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소나기가 쏟아진다. 운동 나간 아내가 걱정되는 소나기이다. 우산을 가지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차로 태우러 가야 하나? 대부분 생각해봐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동행한 이웃들이 있으니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동네이다. 동네 어느 곳을 가든지 이웃들이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를 나누고, 삶의 모습을 나눌 수 있는 소박한 산동네가 오늘도 즐겁고도 소박한 삶 이야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다 같이 살아가는 이웃들의 수다는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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