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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Jul 26. 2021

시골 아침엔 얘깃거리가 너무 많다.

(잡초를 뽑는 아침, 앞 뜰에 밝게 핀나리꽃)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 새벽 뜨락으로 나섰다. 미칠 것 같은 시원한 바람이 금방 내려왔다. 팔을 크게 버리고 바람을 맞는다. 언제 이런 바람을 또 맞이할 수 있을까? 먼지 한 톨 섞이지 않은 바람이 산을 타고 내려온 것이다. 잔디밭으로 나섰다. 푸름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이슬이 가득 내렸다. 먹고살기 위해 살아 있는 생물들의 발걸음이 새벽부터 분주하다. 밤새 거미는 갖가지 모양으로 예술품을 만들어 놓았다. 설치 예술을 통한 삶이 아름답기도 하다. 곳곳에 이슬을 받은 거미줄이 신선한 아침을 선사한다. 우선은 새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처마 밑에 신혼방을 차린 참새들, 새끼들이 제법 커졌다. 짹짹거리는 울음소리가 하루하루 달라진다. 어느새 몸을 불린 새끼가 풀밭을 어정거린다. 날아질 듯, 날아질 듯 어깨춤을 추며 날아 보려 한다. 어미는 먼발치에서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다. 인기척이 나자 기어이 몸을 날린 새끼가 나뭇가지에 날아올랐다. 안도의 숨을 쉬는 어미가 멀리서 바라본다. 온갖 새들이 하늘을 오가며 분주하다. 아침이 왔다는 것을 알려 주려나 보다.

접시꽃의 위세

시원한 바람에 끌려 잔디밭으로 들어섰다. 기다란 잔디 잎에 이슬이 촉촉하다.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파란 잎이 작은 바람에 바르르 떤다. 미끄러질 듯 이슬이 푸른 잎을 타고 떨어진다. 홀가분한 기분에 한 숨을 쉬는 파란 잎이 고개를 든다. 곳곳에 잔디가 아닌 것이 숨어있다. 거룩한(?) 잡초들이다. 지난해에는 작은 민들레가 많았었는데 올해는 보이지 않는다. 너무 잔인하게 뽑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올해는 잔디밭을 서성이는 풀 종류가 달라졌다. 우뚝한 망초대가 많고 또 괭이 밥이 많아졌다.


땅을 망친다고 하는 망초대가 작은 키에 우뚝 솟아났다. 망초 싹은 뽑아내기가 수월해 좋다. 우뚝 솟아 올라 내가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 못 하는 망초가 고맙기는 하지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다. 살아 보려 고개를 내민 어린싹이 아닌가? 잡초를 뽑으며 늘, 같은 생각을 한다. 살려고 하는데 그냥 두면 안 될까? 대단한 번식력만 아니면 그냥 두고 보고 싶은 어린 풀이다. 그냥 두어 볼까? 며칠이 지나면 잔디밭을 덮어버릴 기세에 또 망설인다. 아내는 꽃피는 것은 두라 하지만 아직까지 타협되지 않는다. 


갑자기 많아진 괭이밥은 조금 불편하다. 자디잔 뿌리를 잔디밭에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간신히 줄기를 찾아 뽑아내야 하는 괭이밥이 번거롭다. 괭이 밥, 고양이가 소화가 되지 않을 때 뜯어먹는 풀이라 하여 '고양이 밥'이라 하는 풀이다. 어렸을 적엔 잎을 따 먹기도 했던 풀이다. 조금은 시큼한 맛이 있어 '시금초'라 했던 풀이다. 잔디밭에선 잡초라 했던 괭이밥, 요즈음은 웰빙식품으로 새싹 요리에 쓰이기도 한단다. 

프렌치 메리골드, 만수국

어린 망초대와 괭이 밥, 잔디밭에선 잡초라 불편해하는 풀이다. 망초대와 괭이밥이 다른 곳에서 터전을 잡았더라면 쓰임새가 있는 풀로 쓰였을 텐데, 아쉬움을 준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적당한 곳에, 적당한 시절을 만나면 훨씬 요긴하고도 값어치 있는 삶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잠시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이때쯤 슬며시 잔디밭과 타협을 한다. 이 정도의 잡풀은 놔뒀다가 뽑아야 수월하다고. 조금 더 자라야 뽑기가 편하다는 타협점을 찾아 풀 뽑기를 멈추고 만다. 한참을 구부리고 있었더니 허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하는 의식과 같은 잡초와의 전쟁 아닌 전쟁이었다. 시원한 공기를 찾아 나선 잔디밭에 잡초가 불쑥불쑥 솟아나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솟아오르는 풀, 잠시도 눈을 돌릴 수 없다. 조금은 불편하고 지루함을 갖게 하는 풀들의 삶이다. 괜히 시골살이를 시작해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아닌가? 아파트에서 문만 닫고 살면 되는 것을 이 고생을 하는 것은 아닌가? 가끔은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다. 인간이기에 여러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은 어림없는 생각이다.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언젠가는 나무 한 그루, 꽃 한 포기 심을 곳도 없음에 절망했었다. 넓은 천지에 예쁜 꽃 한그루를 심을 곳이 없단 말인가? 한동안의 고민 끝에 준비한 시골 주택이다. 이젠, 토마토도 심을 수 있고 상추도 심을 수 있는 곳을 마련한 것이 아닌가? 몇 포기의 잡초 때문에 시골살이를 싫어할 수가 없다. 어떻게 준비한 터전인데. 많은 자연과의 동거를 포기할 수 없어서이다. 맑은 공기를 주고, 갖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자연을 포기할 수 없다. 얼마나 소중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는 자연인데. 잡초와의 적당한 타협을 마치고 도랑으로 내려섰다.


아내가 작은 돌로 막아 놓은 도랑물이 발을 적시어 준다. 시원한 물줄기에 종아리가 아려오더니 시원함이 넘어 발이 저려온다. 팔을 걷어붙이고 푸드덕거리며 세수를 한다. 시원함이 전신으로 옮아 온다. 이런 맛을 어디서 맛볼 수 있단 말인가? 얼마간의 노력이면 이 보다도 훨씬 많은 자연과의 이야기를 엮어 낼 수 있는 곳이다. 이웃집 닭이 큰 소리로 울어댄다. 알을 낳았다고 유세를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저만 알 낳은 듯이 동네를 시끄럽게 한다. 이웃집 닭이 품앗이 울음을 울어준다. 하늘 보고 짖는 동네 지킴이들이 거들어 준다. 참새 새끼는 날아오르려 날갯짓을 또 하고 있다. 아직 이웃들의 수다는 남아 있지만, 시원한 잔디밭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시골살이 이야기들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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