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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13. 2021

오늘도 우리 집 앞은 꽤 시끄럽다.

(정넘치는 여름밤, 뜰에핀 나리 곰취 꽃)

저녁을 먹고 난 시간이 오후 7시경인데 아직도 밖은 훤하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입추를 기점으로 바람의 생김이 다르다. 여름밤의 바람은 더위를 피부에 놓고 가는 느낌이라면, 입추가 지난 바람은 피부를 스쳐서 지나는 바람이다. 살짝 왔다는 표시만 하고 슬며시 지나간다. 계절의 조화를 생각해 보지만, 절기를 깃점으로 신비스러운 날씨 변화는 오늘도 깜짝 놀라게 한다. 날씨 변화를 느끼며 잠시 쉬려는 순간, 밖에서 아내를 부르는 소리가 난다. 이웃들이 모여 부르는 소리이다. 날씨도 선선한데 산책을 하자는 부름이다. 


아내가 얼른 나선다. 저녁도 해결되었고 바람도 시원하니 얼른 합류해 산책을 하려는 것이다. 산책을 한다고 하지만 집 앞을 오가며 운동삼아 걷기를 하는 것이다. 몇 분의 이웃들이 또 모인 것이다. 200여 m 되는 동네 앞길을 걷다 쉼이 필요하면 집 앞에 자리를 깔고 앉는다. 가끔은 옥수수가 등장하고, 집에 쟁여 두었던 아이스크림이 등장하기도 한다. 시골에 살아가며 이웃과 어울려 사는 즐거움이다. 


이층 서재에 앉아 책을 읽던 오후, 아내가 이웃과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잠시 후 아내가 집으로 들어온다. 현관으로 들어오는 아내, 커다란 가지 서너 개가 손에 들려있다. 텃밭에 가지를 심었기에 따 오는지 알았다. 우리 가지냐는 물음에 이웃이 주었다는 것이다. 벌써 생김이 다르다. 가지 농사에 익숙한 이웃이 기른 가지는 윤기가 난다. 텃밭에 있는 가지와는 품위가 다르다. 이웃집에 달린 가지를 식구들이 즐기지 않는다며 울타리 너머로 주었다는 것이다.

시골집엔 작은 도랑이 있다.

시골에 이사를 오면서부터 자주 있는 일이다. 문밖에 상추가 놓여있고, 붉은 토마토가 한 바가지 놓여있다. 꼬부랑 오이가 놓여있기도 한다. 품목과 생김새를 보면 누구네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옆집에 무엇을 어디다 몇 포기 심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김새와 어느 정도 익었는지도 알 수 있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우리 동네의 멋이다. 고민을 했던 이웃과의 어울림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모습이었다. 시원한 바람 따라 이웃들, 아이까지 모여 집 앞이 한참 시끄럽다. 


동네를 따라 길게 만들어진 도로를 중심으로 도랑이 있다. 집집마다 갖가지 꽃을 심어 동네가 환하게 빛이 나고 있다. 올해는 합심하여 프렌치 메리골드를 심었다. 환하게 핀 모습이 동네를 확 바꾸어 놓았다. 집집마다 채소밭엔 각종 채소를 심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전혀 신경 쓰지 말고 뜯어다 먹으라 한다. 너의 집과 나의 집의 구분 없이 이웃집을 돌봐 준다. 비가 오면 이웃집의 비설거지를 해준다. 외출할 때는 집을 잘 봐달라며 부탁도 한다. 언제나 부담 없는 말을 주고 받는다. 집안의 사정까지도 이야기하며 감추래야 감출 수 없는 동네이다. 만날 수 없는 이웃들 덕에 항상 감사하며 사는 시골이다. 

노란 나리도 말참견을 한다.

여름이 서서히 물러갈 무렵이면, 집 앞이 늘 시끄러워질 것이다. 자리를 깔고 저녁마다 모여 동네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웃들이 다 모여 하루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먹거리가 있으면 모두 들고 나온다. 더없이 흥겨운 우리 동네 풍경이다. 이웃들과의 갈등으로 시골살이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현지인과의 갈등이 왜 없겠는가? 무더위 속에 일을 하는 주민들, 그 속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시끌벅적하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늘,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없으면 어디서도 같이 살 수가 없다. 


오늘도 창밖에는 이웃들이 모여 하루를 정리하는 모양이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도 많을까 늘 궁금하다. 닭을 키우고, 고추를 따며 또 옥수수를 따서 삶는다. 닭이 앍을 낳고 부지런히 품어 병아리가 부화했다. 갑자기 매가 나타나 닭들이 긴장을 한다. 고양이가 닭을 위협해 갑자기 동네가 시끄럽다. 모두가 서민들의 삶의 이야기들이다. 시시한 삶의 부산물인 듯 한 이야기지만, 시골에선 삶의 전부인 것이다. 소소하지만 이런 일이 시골살이의 전부이다. 시원한 산바람 덕에 오늘도 동네 이야기로 창밖은 시끄럽다. 언제 끝날지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시골집이다. 삶이 뭐 특별한 게 있겠는가? 그렇게 시골살이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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