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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Sep 22. 2021

눈이 부시게, 이 좋은  가을날엔

(아침햇살이 찾아오다, 칠자화에 나비가 오고)

여름을 적당히 넘긴 장마, 가을이라도 적시어 보겠다며 새벽까지 추적거렸다. 오늘은 해를 볼 수 있으려나 기대하며 눈을 뜨니 6시다. 창문 밖에 훤해짐이 마음도 맑아진다. 망설임 없이 창문을 열었다. 하늘이 맑아질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앞산에 안개가 가득해 녹음 위를 오고 간다. 하늘의 망설임에 간절함이 전해졌는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산을 넘을 햇살이 맑은 화살 되어 뒷산으로 꽂혔다. 남은 햇살이 창문으로 넘어왔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짜릿한 햇살이다. 맑은 빛에 눈이 부시다. 도심에서 맞이하는 햇살 맛이 아니다. 색깔이 다르고 반짝임이 월등히 다른 빛이다. 녹음에 투과되며 물든 햇살이 푸르르다. 푸르다 못해 투명한 햇살이 짜릿짜릿하다. 어디서 이런 맛을 또 볼 수 있을까? 앞 산 푸름에는 추적대던 빗방울이 묻어 있다. 가느다란 바람에 나무가 몸을 흔든다. 녹음 위 은빛 물방울에 맑은 햇살이 내려앉았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반짝임이다. 눈이 부시다는 말이 어울리는 말이었다. 눈이 부시게 반짝인다.

햇살이 빛나고 있다.

반짝이고 남은 햇살이 잔디밭으로 넘어왔다. 엊그제 짧게 단장한 잔디밭, 그곳에도 물기가 남아 있다. 짧은 푸름에 작은 물방울이 머물러 있다. 푸른 물방울에 투명한 햇살이 떨어졌다. 떨어지는 햇살을 못 이기듯 영롱한 물방울이 빛을 발한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맑음이다. 맑음에 청량함이 더해저 시리기까지 한 맛을 얹어 주는 영롱함이다. 가을로 가는 길목에 목이 긴 코스모스가 꽃을 피웠다. 마당 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코스모스다. 어느 곳엔 키 작은 코스모스가 자리 잡고 있다. 어쩐지 어설퍼 보이는 코스모스다. 오랫동안 머릿속에 있는 커다란 코스모스가 더 좋다. 코스모스는 커야 제격인 기분이다. 정원에 꺽다리 코스모스가 정겨운 이유이다.


빨간 꽃잎에도 물기가 있고, 작은 잎에도 물기가 남았다. 여기에도 햇살이 넘어왔다. 꽃잎에 앉은 물기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떨어진 햇살을 얼른 되받아 올린다. 눈이 부시도록 분홍이 튀어 오른다. 눈이 부신 것은 꽃잎만이 아니었다. 푸르름에 눈이 부시고, 맑은 물방울에 눈이 부시고, 분홍빛에 눈이 부시다. 아침에 만나는 자연의 선물이다. 눈길을 접고 있는 사이 고요함이 깜짝 놀랐다. 

잔디밭이 상큼해 보이고

어느새 어제 왔던 나비가 찾아왔다. 앉을까 말까 망설이다 하나 남은 꽃에 앉았다. 장마에도 씩씩한 꽃 '꽃범의 꼬리'에 앉은 것이다. 바람에 떨구고 남은 물방울이 빛을 발한다. 영롱한 빛에 깜짝 놀랐는가 보다. 다시 날아 올라 한 참을 망설인다. 언제나 동행하던 나비가 날아들었다. 망설이던 날갯짓을 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숨길 수 없는 쌍 나비의 춤사위가 눈이 부시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던 나비, 어느새 칠자화에 내려앉았다. 


어제의 달큼함을 잊을 수 없었나 보다. 늦잠을 잘 수 없었는지 새벽부터 발길을 했다. 어제도 오고, 그제도 온 그 나비다. 염치도 없이 또 오고 말았다. 말릴 사람도 없어 오고 싶으면 온다. 투명한 가을 햇살을 마음껏 즐기고 있다. 너울너울 춤을 추며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짝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 너무나 자유스럽다. 걱정도 없이 맑은 하늘 속으로 날아든다. 자연 속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나비 한쌍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 꽃 속으로 스며든다.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을 감출 수가 없다. 맑은 이슬이 아름답고, 햇살이 아름다워 미적거릴 수 없었나 보다.

갖가지 사연을 주는 앞산의 안개

산을 넘은 가을 햇살이 주는 신비스러움이다. 자연을 살게 하고 덤 삼아 싱그러움까지 주는 햇살이다. 맑은 햇살이 담을 넘어오면서 만들어지는 시골집의 풍경이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아침나절의 풍경, 자연이 주는  풍경에 감사해한다. 소중한 자연에 감사함을 잊고 살았다. 쉬이 접할 수 있음에 잊었나 보다. 모든 것을 잃고 나면 아쉬워한다. 잃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는 인간의 습성인가 보다. 호사스러운 아침을 맞이함이 어찌 쉬운 일이던가? 눈을 감고 있어도 좋은 햇살이다. 나뭇잎에서 튀는 햇살에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이 부시게 이 좋은 가을날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있는 것이 좋다. 멍하니 햇살을 즐김이 너무 좋다. 시골 아침의 성스런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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