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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16. 2021

'꽃범의 꼬리'는 여름을 잊지 않았다.

(여름날의 꽃 잔치, 꽃범의 꼬리)

지난해 여름, 기나긴 장마가 60여 일 동안 지속되었다. 긴 장마에 갖가지 꽃들이 지칠 대로 지쳐 꽃잎을 접고 말았을 무렵, 시골집 마당 한 곳에서는 화려한 꽃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옅은 분홍을 자랑하며 자란 꽃, 소리도 없이 대단한 자생력을 자랑하던 '꽃범의 꼬리'였다. 봄철, 작은 새싹이 잔디밭 구석을 비집고 나왔다. 특별한 관심 없이 물을 주고 돌보자 푸름에 한몫을 하려는지 작은 고개를 든다. 봄이 익어 갈 무렵, 여기저기에서 손을 들고 존재감을 과시한다.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잔디밭 가에 수두룩하다. 


꽃범의 꼬리였다. 작은 키에 긴 줄기를 세워 작은 잎을 달고 나왔다. 올망졸망한 무리가 잔디밭 가장자리를 가득 메우며 자리를 잡았다. 긴 장마에 미리 나온 꽃들은 빗물을 감당하지 못했다. 곳곳에서 처절한 모습으로 여름을 나고 있을 무렵이다. 긴 장마에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던 '꽃범의 꼬리'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장맛비 속에서도 화려하게 꽃을 피우며 살아있음을 과시했었다. 꽃범의 꼬리는 올해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대단한 번식력을 무기로 잔디밭 점령군이 되어 꽃잔치를 벌이고 있다.

꽃범의 꼬리, 잔디밭을 가득 자치했다.

꽃범의 꼬리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여러해살이 풀이다. 속명인 피소스테기아(Physostegia)로도 부른다. 바람이 불면 꽃대가 범이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꽃범의 꼬리'라는 범이지만 범같지 않은 아름다운 이름을 얻은 꽃이다. 대단한 장맛비 속에서도 끄덕 없이 꽃을 피우던 꽃, 올해는 언제 자리를 넓혔는지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말았다. 잔디밭은 물론이고 금계국이 자라던 곳을 완전히 점령하고 말았다. 잔디밭 끝부분 언덕, 노란 금계국이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던 곳이다. 금계국이 온데간데없이 자리를 잃고 말았다. 꽃범의 꼬리 때문이다.


꽃범의 꼬리가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없이 자리를 잡았다. 바위틈에도 자리했고, 커다란 키를 자랑하는 구절초 사이에도 비집고 들어갔다. 가냘픈 몸매를 들이밀고 사이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서서히 여름이 자리했다. 더위가 한참 무르익을 무렵, 부스스 꽃을 피우기 시작한 꽃범의 꼬리가 세를 과시하기 시작했다. 잔디밭 한 구석에 자리했던 꽃범의 꼬리가 분홍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몇 포기의 돌단풍은 말을 걸 수가 없다. 엄청난 꽃범의 꼬리 세력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꽃범의 꼬리, 언덕에도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마당 끝, 바위틈엔 많은 구절초를 심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 올 무렵, 하얀 구절초가 어울릴 것 같아서이다. 구절초가 꽃을 피우고, 하얀 달빛이 찾아오길 기대해서이다. 100여 포기를 심어 놓은 구절초가 세를 불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리를 잡았다. 구절초의 세에 밀리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꽃범의 꼬리였다. 노란 금계국을 물리쳤고, 다시 극성을 부리며 자리 잡은 구절초에도 밀리지 않는 뚝심을 과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꽃범의 꼬리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분홍 꽃으로 세를 과시하며 구절초 무리를 무시하고 꽃을 피웠다.


여름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수도 없는 꽃범의 꼬리가 가득 꽃을 피울 것이다. 어느새 영역을 넓혔는지 깜짝 놀랐다. 곳곳에서 삐쭉이 솟아 나오는 줄기가 헤아릴 수 없이 가득하다. 아직은 꽃을 피우는 초기였기에 드문드문 꽃을 피웠다. 여름이 깊어 갈수록 꽃범의 꼬리는 꽃을 피우며 잔디밭 가와 언덕을 환하게 비추어 줄 것이다. 분홍빛으로 꽃범의 꼬리가 시골집을 수놓을 때, 하얀 달빛이 산을 넘어 마실길이면 더 좋다. 분홍과 하얀 달빛이 어울릴 즈음, 먼 산에서는 소쩍새가 구슬피 울며 분위기를 잡아 주리라. 이때쯤, 님 찾는 고라니가 구슬프게 울면 산골의 밤은 점점 깊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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