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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29. 2021

뒤뜰 드렁칡과는 아직도 갈등(葛藤) 중이다.

(칡이 나무를 괴롭힌다, 칡 꽃)

충절을 굽히지 않던 정몽주에게 태조 이방원이 시 한수를 던진다. 이름하여 하여가(何如歌)였다. 만수산 드렁칡처럼 이리저리 얽혀서 한 세상 잘 살아보잖다. 이방원이 뜻하던 만수산 드렁칡, 이방원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칡이다. 모두가 어울려 잘 사는 것이 아닌, 그들만이 살아남아 모두를 못살게 하는 드렁칡이다. 인간에게 이로운 것도 주지만 함께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삶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칡이기도 하다. 주변의 나무를 비롯해 오를 수 있는 모든 것에 올라 찝쩍거리는 불편하기만 한 칡넝쿨이다. 


칡, 덩굴식물로 낙엽성 관목이다. 생명력이 왕성하여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 자랄 곳만 있으면 아무 나무줄기나 잡고 순식간에 자리를 잡는다. 널따란 잎을 내세워 모든 빛을 차단해 오른 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괴롭힌다. 공생이라는 말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삶의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이 칡이다. 성장 속도가 빨라 한철에 20m 가까이 자란다고 한다. 대단한 생명력인데, 오래전에는 줄기를 이용해 밧줄을 만들었고, 꽃과 뿌리는 약이나 구황식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오래 전의 기억이다. 칡뿌리를 캐러 산으로 나섰다. 고단한 노력 끝에 캐낸 칡뿌리, 지금은 볼 수 없는 작두를 이용해 적당한 길이로 자른다. 작은 칡뿌리를 손에 들고 다니며 씹던 기억이다. 조금은 달큼함이 배어 있고, 씹을수록 무엇인가가 배어 나오는 느낌에 입이 지저분해질 정도로 씹던 기억이다. 친구들과의 추억을 만들어 준 칡이기도 하다. 칡넝쿨과 잎은 소가 좋아하는 먹잇감이기도 했다. 밭두렁에 길게 자란 칡넝쿨을 소가 잘 뜯어먹었던 기억이다.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갔다.

친구들과 산행을 한다. 어느 산이건 내려오는 입구엔 언제나 칡즙이 있다. 숙취에 좋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기도 하는 음료이다. 한방에서는 뿌리와 꽃을 약으로 쓰기도 한다.  말린 꽃은 갈화(葛花)라 하고, 뿌리 말린 것을 갈근(葛根)이라고 한다. 갈근은 치열이나 해열에도 쓰이며, 칡즙을 마시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뿌리를 이용해 갈분을 만들어 과자나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단다. 하지만 칡넝쿨은 불편함도 많이 주는 식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칡은 곳곳에서 자라며 주변 식물을 어지럽게 한다. 


시골집 뒤 언덕엔 많은 꽃과 나무 식구들이 자라고 있다. 벚나무를 비롯해 매화와 사철나무, 찔레나무 등 수없이 많은 식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봄이 찾아왔다. 작은 새싹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앙증스러운 잎을 내밀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모습에 가슴이 저려온다.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바라만 보고 있다. 안쓰럽고 귀여워서이다. 파릇한 더덕이 잎을 내밀었고 덩달아 바위취도 바위에 앉았다. 여기에 겨울 동안 숨어 살던 칡도 머리를 내밀었다. 어느새 파란 싹을 내밀고 봄날에 온갖  참견을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참견이다. 


봄철이 서서히 익어 여름으로 넘어왔다. 점잖던 칡넝쿨은 어느새 세력을 꽤 넓혀 놓았다. 여기저기에 시비를 걸고 이웃을 찝쩍거린다. 가만히 있는 벚나무도 건드려보고, 사철나무도 또 찝쩍거린다. 어느새 이파리도 넓게 살을 찌웠다. 성큼 벚나무에 올라가더니 벚나무 머리칼을 움켜잡는다. 서서히 세력을 키워 벚나무를 감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세력이 커질 대로 커진 칡넝쿨은 벚나무를 덮어버려 숨통을 죄여 온다. 소리도 지를 수 없을 만큼 기세가 등등하다. 가시로 무장한 드룹 나무도 꼼짝을 하지 못한다.

칡과 환삼덩굴, 칡이 꽃을 피웠다.

갈등(葛藤), 칡 '갈'에 등나무 '등'자이다. 칡넝쿨과 등나무가 만났다. 칡도 나무를 감고 올라야 하고, 등나무도 나무를 감고 올라야 했다. 그런데 칡은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야 하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야 한단다. 실제로 보면 그렇다. 칡과 등나무가 만나 서로 얽히고설키며 감고 올라가려니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는 사이다. 그래서 갈등(葛藤)이 시작된다. 시골집에 사는 나와도 도저히 타협이 되지 않는 칡넝쿨이다. 대단한 생명력과 번식력을 가진 칡넝쿨이 뒤뜰을 가득 덮은 것이다. 할 수 없이 칡넝쿨을 평정하기로 했다. 단단히 무장을 하고 뒤 언덕으로 올랐다.


봄내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던 벚나무는 거대한 칡넝쿨에 질려 숨만 쉬고 있다. 노란 꽃을 보여주던 매화는 숨조차 쉬지 못하는 형상이고, 나머지 사철나무와 찔레나무도 몰골이 말이 아니다. 할 수 없이 칡넝쿨을 뜯어말리기로 했다. 덤불 속을 어렵게 들어가 칡 줄기를 찾아냈다. 아쉽지만 많은 나무를 위해 칡넝쿨을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 짓눌린 뒤뜰 식구들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처방이다. 벚나무를 구하고 사철나무, 매화나무 등 뒤뜰을 해방시키자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살아난 나무들이 박수를 친다. 굽었던 허리를 펴며 긴 한 숨을 토해낸다. 풍성함을 자랑하는 뒤뜰에서 갈등의 주역이었던 칡넝쿨을 정리하고 난 아침은 산뜻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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