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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Sep 30. 2021

꿈같은 전원 살이, 지난한 노동이 필요조건이다.

(전원 주택살이, 뜨락에 핀 구절초)

전원주택, 푸르른 잔디가 떠오른다. 야트막한 지붕 위를 갖가지 나무가 푸름으로 덮고 있다. 그림 같은 집 주변엔 푸르른 잔디가 자리 잡고 있다. 융단처럼 펼쳐진 푸른 잔디밭에 노랑나비가 춤을 춘다. 나무 밑엔 흔들의자가 자리해 있고, 나무 가지엔 그네가 흔들거린다. 그곳엔 여지없이 바비큐 파티가 열리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전원주택의 모습이다. 꿈의 전원주택 안엔 푸른 잔디가 당연히 주인이 된다. 가끔 스프링 쿨러가 나와 사방으로 물을 뿌리고, 운이 좋으면 무지개가 나타나는 행운도 만날 수 있다.


적당한 텃밭이 있어 상추도 기르고, 방울토마토 맛도 볼 수 있다. 뜰 앞에는 조그만 도랑물이 졸졸거리거나, 잔잔한 호수에 물안개가 피어 분위기를 돋워준다. 잔잔한 호수 위에 물안개가 끼고, 불어오는 바람에 일렁이는 모습이야 말로 제대로 된 전원의 모습이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는 전원주택의 모습이다. 지나는 길에 만난 전원주택의 잔디밭, 너무나 부러운 그림이다. 융단처럼 자란 자잘한 잔디가 이슬을 젖어 반짝인다. 빛나는 반짝임이 부서질까 숨이 멎었다.   

잔디밭에 보름달이 내려왔다.

전원주택을 생각하며 상상해 보는 전경이다. 더없이 좋은 풍경들이다.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그림 같은 집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전원 살이,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풍경들이다. 아름다움도 있지만 쉼 없는 어려움도 녹아 있는 풍경이다. 세상에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던가? 무엇도 그냥 얻을 수는 없다. 아름다운 전원주택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커다란 부를 무기 삼아 살아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수많은 시행착오와 사연을 담고 있는 전원주택이다. 어렵게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서서히 전원의 삶이 시작되었다. 꿈만 같은 전원 살이, 쉽지 않은 끈기와 부지런함이 기다리고 있다.


싱싱한 상추를 그냥 얻을 수 없고, 맛깔난 토마토를 누가 주지 않는다. 푸르른 잔디를 누가 길러주지 않고, 풀한 포기도 내가 뽑아야 한다. 돌아서면 키가 커 있는 것이 풀이다. 풀은 자라려고 태어났다. 자라는 것이 풀의 본연의 직업이고 삶이다. 푸르른 잔디밭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시간과 때를 가리지 않고 키를 불려 놓는다. 비가 와도 좋고, 가물어도 상관이 없이 몸을 불린다. 전원 살이 중에도 한 번쯤 갖고 싶은 푸르른 잔디밭, 한없는 편안함과 휴식을 주는 대신 끊임없는 돌봄을 요구한다.

햇살이 가득하다.

전원 살이를 멋지게 살려주는 잔디,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정원이나 골프장에 가꾸며, 무덤이나 제방에 심어 둑을 튼튼하게도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잔디의 자태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침저녁으로의 노력이 들어있고, 피나는 꾸준함이 녹아있다. 하루 이틀만 눈을 주지 않아도 표시가 난다. 어느새 잡풀이 고개를 들고 있다. 잔디밭 위로 고개를 번쩍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늘진 곳엔 어느새 푸르른 이끼가 자리를 잡았다. 잔디밭을 정리하기 위해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섰다. 


시골살이가 익숙하지 않으면 갖가지 벌레가 그냥 두질 않는다. 다리를 물고 팔뚝을 간질이며 눈앞에 아른거리며 약을 올린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시골살이다. 어려운 난관들을 즐기면서 같이 살지 않으면 안락한 편안함도 올 수가 없다. 잔디밭에 나서 풀을 뽑아야 하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잔디를 깎아줘야 한다.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제초제를 뿌린다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어딘지 시골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망설인다. 아침저녁으로 오가며 돌보아야 한다. 푸르른 잔디가 그대로 자랄 수가 없다. 땀 흘린 노동 속엔 또 커다란 기쁨과 휴식이 있다는 것은 해봐야 아는 기쁨이다.

여름을 축복해 주던 토마토

아래위를 단단히 무장하고 잔디밭에 나섰다. 곳곳에 숨어 있는 잡초를 솎아낸다. 어느새 키를 불렸는지 깜짝 놀란다. 어제 뽑았는데 또 자랐다. 자그마하던 잡초가 밤새 키를 불린 것이다. 야속하게 생각하면 잔디밭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가 없다. 잔잔하게 자란 풀을 뽑아내고, 웃자란 잔디를 가지런히 깎아낸 아침이다. 어수선하던 잔디밭이 축구장에서 만났던 그림으로 나타났다. 멋진 예술가가 마술을 부려놓은 듯이 아름답다. 한참의 노동의 대가가 허락해준 시골의 맛이다. 저절로 얻어짐이 없음을 오늘도 실감한다. 


여름내 자란 토마토가 울긋불긋하다. 요란스러운 아름다움이 눈길을 끈다. 얼른 방울토마토를 따서 입에 넣는다. 물에 닦아 낼 것도 없다. 옷소매에 쓱 문지르면 해결된다. 붉음과 푸름이 적당이 섞인 토마토다. 입안에서 확 터져 나오는 달큼하면서도 상큼한 맛,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미칠 것 같은 맛이다. 달큼함과 신선함이 섞인 맛, 설명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잔디밭을 정리하는 사이,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도랑으로 내려섰다. 시원한 물줄기가 얼굴에 닿는 순간, 온몸이 짜릿함으로 달아오른다. 온몸에 진저리 쳐지는 이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다던가? 모두가 잔디밭에서 풀과의 전쟁을 끝내고 맛보는 환희의 순간들이다. 꿈같은 전원 살이는 끝없는 노력과 참음이 있어야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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