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소식, 호수에도 가을은 왔다.)
엊저녁 뉴스에선 새벽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였다. 새벽에 창문을 열자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부산하게 오고 간다. 바람은 또 뒷산 낙엽을 한 아름 날라다 놓았다. 바람도 외로워 낙엽과 동반했나 보다. 바람 부는 아침이니 낙엽을 쓸 수도 없는 일이다. 낙엽이 떨어지면 그냥 두고 보는 것도 그럴듯한 일이다. 일 년의 수고 끝에 떨어지고 만 낙엽, 며칠 정도는 봐주어야 자연의 노고에 답하는 것 같아서다. 골짜기에 위치한 시골집에 바람이 또 찾아온 것이다. 낙엽을 한 아름 모아다 잔디밭에 뿌려 놓았다. 울긋불긋한 낙엽이 누런 잔디밭에 가득하다. 가을의 정취를 한껏 알려줌이 고맙지만, 어떻게 쓸어내야 할까도 가끔 고민된다. 얼른 생각을 접고 자동차에 올랐다.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운동을 하러 가기 위해서다.
큰길로 나선 자동차 길엔 많은 차량들이 오고 간다. 시간을 보니 벌써 7시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났지만 언제나 잔디밭을 서성이다 보면 시간을 금방 가고 만다. 큰 차도에 들어서자 가을빛이 역력하다. 커다란 메타쉐콰이어가 붉은빛 옷을 해 입었다. 잔잔한 잎으로 치장한 껑충한 키로 하늘 끝까지 닿아있다. 세찬 바람이 가까스로 남은 잎에 심술을 부린다. 힘겹게 부여잡은 손을 놓친 잎이 눈이 되어 날아든다. 붉은빛 늦가을 눈이 시야에 가득하다. 언제부턴가 가로수로 자리 잡은 메타쉐콰이어(Metasequoia 또는 dawn redwoods), 중국이 원산지로 한국, 중국 등에 분포하며 35m까지 자란단다. 무성한 잎이 떨어지고 가을을 아쉬워하는 잎만 아스라이 버티고 있다. 세찬 바람에 이어 비가 내리면 버틸 수 있을까 안타깝다.
세찬 바람 속에 도착한 체육관엔 위드 코로나 덕분인지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언제나 한두 명이 운동을 해 왔는데 제법 사람이 많다. 조심스레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체육관에 들어섰다. 여러 가지 기구를 통해 근육운동으로 몸을 풀고 러닝 머신에 올랐다. 멀지 않은 5km를 뛰기 위해서이다. 5km 정도를 달리면 적당히 땀도 나고 안정적인 호흡이어서 좋다. 하프마라톤을 할 때는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20여 km를 달려야 속이 시원해지는 젊음의 호기였다. 늦은 밤에 20여 km를 뛰고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도 끄떡없던 몸이었다. 야속한 세월이 흘러 5km를 뛰면서 몸을 시험하고 있다. 5km라도 뛸 수 있을까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몸풀기와 달리기를 하면 거의 80여분이 소요된다. 샤워장에 들러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밖에는 비바람이 세상이 어지럽다. 주변 은행나무에서 잎이 떨어져 노란 비가 내린다. 햇살이 비추면 반짝이는 모습이 자연의 황홀함을 연출하던 나무였다. 하나둘씩 떨어지는 낙엽이 아름답지만 서럽기도 했다. 혹시라도 모든 잎이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할까? 운동을 하면서 바라보는 은행나무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작은 바람에도 팔랑이는 잎, 햇살에 반짝이며 흔들리는 모습이 대단했었다. 작은 바람도 못 이겨 앞뒷면을 번갈아 보여줌이 앙증맞기도 했고, 찾아온 햇살에 반짝이는 잎은 은빛 물결이었다. 운동이 어려운지를 모르게 하는 자연의 조화였다.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하는 운동은 언제나 쉬운 놀이였다. 남은 은행잎이 모두 떨어지면 어떠할까? 부디 몇 잎이라도 남겨 주었으면 하는 기대감을 남겨 놓고 집으로 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비바람은 여전하다. 곳곳에서 나뭇잎이 공중을 오가며 사선으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굵어졌다 가느다랗게 변하는 빗줄기가 요술을 부리고 있다. 누렇게 물들었던 들판은 어느새 휑하니 비어 빗줄기에 주눅이 들어있다. 곳곳에 쌓여있는 볏짚이 빗물에 젖어 지친 모습이다. 새벽에 만났던 가로수엔 아직 잎이 남아 있다. 하늘을 수놓고 있던 메타쉐콰이어 잎이 남은 것이다.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들어선 시골길, 여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몇 줄기 남아 있던 하얀 억새가 비바람에 몸서리를 친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갈대, 아예 몸을 뉘이고 비를 맞이한다.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보단 수월하리라는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했다. 앞산에 가득한 낙엽송도 부산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자디잔 잎을 달고 있던 낙엽송은 온통 주황색이었다. 자잘한 주황색 낙엽송 잎이 바닥에 가득하다. 아직도 모자란다는 듯이 바람이 다그친다. 빗줄기도 봐줄 생각이 없는가 보다. 비와 바람이 합한 힘을 낙엽송은 이겨낼 수가 없다. 아름다운 주황색 황금비가 온산을 덮었다. 가느다란 도랑까지 색이 변했다. 몸집이 작아진 도랑에 갖가지 낙엽들이 웅성거린다. 물을 따라 떠나려는 낙엽과 남아 있으려는 낙엽이 몸을 부딪치며 시끄럽다. 세찬 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섰다. 잔디밭에도 온통 가을의 흔적들이다. 앞산의 낙엽송과 참나무 그리고 밤나무 잎까지 찾아왔다.
가을비가 추적대는 잔디밭에도 낙엽이 가득하다. 남은 공작단풍과 화살나무잎이 그냥 있지 않았다. 가끔 떨어진 솔잎이 노랗게 물을 들였다. 비바람이 심해 나갈 수가 없는 잔디밭을 하루쯤 두고 봐야겠다. 봄부터 가을까지 집을 빛내 주었던 낙엽이니 하루는 봐주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조금은 서두르는 성격을 비바람이 꾹 눌러주고 있음이 감사하다. 커피 향을 맡으며 거실에 앉아서 바라보는 앞산과 잔디밭은 근사한 도화지가 되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가을비가 도화지를 수시로 바꾸어 놓는다. 붉고 노란 물감이 순식간에 모였다 흩어진다. 서서히 단풍이 들고 떨어지는 잎사귀가 순식간에 운명이 바뀌었다. 소나무 잎은 아직 건재한 모습이다. 비바람이 찾아왔지만 푸르른 솔잎은 끄떡없이 남아있다. 그래서 소나무인가 보다.
모진 비바람에 따라 살아남는 방법은 다양하다. 잎을 떨어트려야 하는 나무가 있다. 끝까지 잎을 떨구지 않고 같이하는 나무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봄을 기약해야 하는 나무들이다. 봄을 기다려야 하는 자연의 식구들이다. 저마다의 삶의 방법을 찾아 비바람을 맞이하고 있다. 겨울이 되어 두툼한 옷을 입혀야 하는 감나무가 있고, 대추나무도 있다. 추운 지역에 자리 잡은 비운의 운명 때문이다. 가을비가 끝나면, 입동이 지났으니 서서히 겨울이 찾아오리라. 수도를 단속해야 하고 추위에 약한 나무를 보호해 줘야 한다. 보일러를 비롯한 창문을 점검하여 인간들도 삶을 보전해야 한다. 졸졸 거리던 도랑물이 얼음장 밑에서 옹알거릴 겨울이 오면, 찾아 새봄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비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아침이 생각을 다급하게 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서둘러 겨울준비를 해야 하겠다. 비가 오는 가을 아침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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