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의 추억)
부슬부슬 봄비 내리는 체육관, 근육운동을 마치고 러닝머신 위에 올랐다. 아직도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오른 러닝머신이다. 힘겨운 싸움을 하며 바라본 창으론 화려한 벚꽃이 봄비와 손잡고 흩날린다. 봄비가 아닌 꽃비가 내리고 있는 체육관 주변풍경이다. 봄비 속 창 너머로 한 어르신이 서성이신다. 조심스레 울타리로 다가가 따는 것은 홑잎나물이 아니던가? 체육관을 빙 둘러 화살나무 울타리다. 봄부터 푸르름을 주고 가을이면 멋진 단풍을 만들어 주는 화살나무다.
초봄이 다가왔다. 자연이 주는 천연의 색깔, 연초록이 세상에 가득이다. 여기에 꽃이 피었으니 더 말할 것이 무엇이던가? 아내는 아침부터 한마디 한다. 앞 산에 홑잎나물이 나왔을 거라고. 언제나 초봄이면 앞산에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산나물이다. 초봄에 이르러 제일 먼저 내미는 초록이 홑잎나물이다. 야리야리한 잎을 어떻게 뜯을 수 있을까? 마음이 약해 망설이다 따라나섰다. 손녀가 좋아하는 봄나물이기에 며칠 후면 찾아 올 손녀생각에 산에 오른 아내다. 가지를 잡고 드문드문 따야 나무도 살 수 있다며 한 움큼을 따서 내려오는 연례행사 중 하나다.
홑잎나물, 화살나무나 회잎나무의 순을 이르는데 이른 봄철에만 만날 수 있다. 순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으면 억세 진다는 이유로 '부지런한 며느리도 세 번만 딸 수 있다'는 홑잎나물은 식감이 뛰어나다.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고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단다. 오래 전의 기억 속에도 어머님의 홑잎나물이 있다. 야리야리한 홑잎나물을 살짝 데쳐 간장이나 된장에 무친 후, 깨소금이 얹힌 맛은 떨칠 수 없는 맛이었다. 대충 무쳐 기름 손으로 입에 넣어주던 어머님의 홑잎나물 맛, 진정한 봄나물 맛이었다.
신선하면서도 진득한 식감은 봄철에나 잠깐 맛볼 수 있다. 골짜기에 이사를 와보니 이웃집 울타리가 화살나무였다. 이웃집 덕에 쉽게 홑잎나물을 얻을 수 있었지만, 힘겹게 산에 올라 얻어오는 나물맛이 진정한 봄나물이었다. 할 수 없이 화살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씨가 떨어져 나온 싹을 얻어 심기도 했고, 화살나무를 얻어다 울타리에 심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홑잎나물을 뜯어 왔고, 이웃집에서 얻어 오기도 했으며 심어 놓은 나무에서 얻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어머님이 그리워지고, 할아버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 보물이다. 아내는 밥상 위에 여지없는 홑잎나물을 올려놓았다. 울타리에서 한 움큼 따서 만든 봄나물이다. 머위 잎이 놓여있고, 텃밭 상추와 겨자채가 신선한 샐러드로 변신했다.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최상의 반찬이 근사하게 앉아 있다. 자연이 주는 갖가지 선물을 받은 아침 밥상이다. 체육관 창너머 봄비 속에 허리가 굽으신 할아버지가 홑잎나물을 따고 있다.
한 움큼이 되면 윗 주머니에 욱여넣으신다. 나물 넣을 봉지대신 호주머니가 한몫을 하고 있다. 한 나무에서 한 움큼을 따신 할아버지, 다른 나무에서 한 움큼을 따 아래 주머니에 넣으신다. 흐뭇한 얼굴로 봄나물을 따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봄비를 마다하고 할머니를 생각하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밥을 해 놓고 기다리실 것이다.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쏟아지는 홑잎나물을 씻으실 것이다.
뜨끈한 물에 데쳐 참기름과 간장에 무쳐 놓은 홑잎나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반찬이 될 것이다. 주섬주섬 주머니를 단속하신 할 아버지는 봄비를 뚫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봄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몇 주먹의 홑잎나물을 뜯어가셨지만 홑잎나무엔 표시도 없다. 자연이 만들어낸 진귀한 홑잎나물이 할아버지 호주머니에서 봄으로 소생하는 신성한 아침이었다. 한 움큼의 홑잎나물이 아침반찬이 되어 노부부의 입맛을 돋우어 줄 것이다. 한참을 바라본 할아버지의 풍경이 봄비 따라 안갯속으로 사라지는 아침이다. 다시 돌아온 골짜기의 풍경은 푸릇함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