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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Aug 18. 2024

삶엔  맞바람이 있어 살아 볼만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안장 위에서 만나는 자연은 신비스럽고, 시원함 속에 다가오는 아름다움은 떨쳐 낼 수 없다. 계절 따라 변하는 자연은 늘 신기하기 때문이다. 봄이면 연한 초록이 유혹하고, 여름에 만나는 검푸름은 눈을 의심하게 한다. 누런 빛깔 가을이 눈을 멀게 하고, 겨울에 만나는 하양은 삶을 숙연하게 한다. 어림없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자연이 주는 신비함에 늘 감사해하는 자전거 길, 오늘도 바람은 여전히 맞바람이다. 긴 언덕에 허덕이는 근육은 오늘도 고단하다. 근근이 만들어 낸 근육이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인데 바람은 여전히 앞에서만 불어온다. 원망과 야속함이 섞인 한숨, 가끔 맞바람이 아니었으면 해도 어림없다. 삶은 늘 맞바람이어도 반항이라도 하듯이 '나도 할 수 있을까?'라는 명제를 확인하고 싶었다. 


어디까지 해 낼 수 있는까? 언제나 엉뚱한 발상으로 삶에는 신선함과 불안이 공존했다. 뜬금없이 하프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를 확인하고 싶었다. 온통 삶은 내가 할 수 있을까를 알아내고 싶었고, 해내고 싶은 무모함이었다. 온 힘을 다해 올라가는 긴 언덕,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짧고 평탄 길을 두고 언덕을 택한 것도 한계알아내고 싶어서였다. 


삶은 녹녹지 않은 맞바람이었다.

숨이 멎을 순간까지 근육을 소진한 언덕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야, 맞바람이 이렇게 시원하구나! 처음으로 느껴보는 상쾌함이다. 마라톤과 자전거에서 또 삶에서도 늘 맛바람이었다. 고단함을 이겨낸 상쾌함은 잊을 수가 없다. 맞바람이 주는 상상할 수 없는 통쾌함이었다.


친구들과 더불어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자전거에 오르며 오늘도 바람을 가늠해 본다. 바람이 밀어주지는 못해도 맞바람만 아니었으면 하는 기대감에서다. 대수롭지 않은 듯한 작은 바람도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견딜 수 없는 막바지에서 만나는 바람의 위력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친구가 세상에 쉬운 일은 한 개도 없단다. 얼른 끄덕거렸다. 사람 관계가 쉽지 않고, 만나는 일들이 녹녹지 않다. 복잡한 세상살이가 편안하게만 되진 않았다. 가족 간에도 이견으로 얼굴을 붉히는데, 남과 함께 사는 세상이야 말하면 뭐 하겠는가? 세상에 쉬운 일은 한 가지도 없었다. 


긴, 인내를 요구했다.

색소폰을 배우면서, 시원한 음에 절망했고 반박자 길이에 좌절했다. 음을 찾아내려는 지하실 겨울훈련은 고단했다. 같은 음을 진저리 나도록 반복하며 그 소리를 찾아냈다. 반 박자 길이에 좌절하면서도 수없이 연습을 했다. 어림도 없는 반박자의 길이는 드럼으로 알아내야 했다. 정확한 한 박자 반을 터득하며 고충 속에 감동이 있음을 확인했다. 


반박자를 찾기 위한 드럼도 수월한 듯 고단했다.  머리와 눈이 별개여야 했고, 오른발과 왼발 그리고 오른손과 왼손이 달리 해야 했다. 초보자가 감히 생각도 못했던 어려운 속도, 한 박자를 나누고 또 나누어야 하는 드럼이었다. 역시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7번 국도의 자전거 길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고단하고도 어려운 길, 포항에서 통일 전망대까지 갈 수 있을까? 다시 할 수 있을까를 알아보고 싶었다. 굽이 굽이 고갯길은 어려움과 시련이었다. 훈련되지  않은 체력이 그리고 준비 못한 물건들이 아쉬웠다. 고통을 이겨내고 통일 전망대에서 만난 희열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세상은 힘들어도 고단함이 있어 즐거움이 있다. 


자전거길에 만난 이방인, 부산에서 통일 전망대를 걸어간단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을까를 확인하고 싶어 출발했단다. 정동진쯤에서 만났으니 지금까지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하지만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이방인, 기어이 성취해 낸 다음의 희열을 찾아 한 발짝씩 떼어 놓는 것이었다. 고단함이 있어 성취 기쁨을 가질 수 있다. 힘든 고갯길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자전거길이기에 더 소중한 도전이다.


삶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자전거길 맞바람은 나만의 바람은 아니었다. 누구는 덤덤하게 받아들였고, 어떤 이는 야속하다 했다. 가끔은 밀어주는 바람을 기다렸고, 맞바람에 돌아서고 말았다. 하지만, 고단함 속에 만나는 맞바람은 멈출 수 없는 흥분을 주었다. 시원함을 주었고 통쾌함을 주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어려움 속에 만나는 바람은 충분히 보상을 주었다. 기어이 참아내야 하는 맞바람이 주는 희열이었다. 


7번 국도의 자전거 길, 어려워도 고갯길과 동해 바람을 견디어 냈다. 삶에서 도전과 해냄을 시험하지만 망설였다. 도전 속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가 확인하고 싶어 도전을 한다. 도전 속엔 여전히 맞바람이 존재했고, 그 속엔 시원함과 통쾌함이 있었다. 노력과 인내가 없이 통일 전망대에서 동해바다를 만날 수 있겠는가? 


살아감에는 늘 맞바람이 있다. 그 바람은 나에게만 오는 바람이 아니었다. 모두 견디며 살아가는 바람이었고, 맞바람과 도전 속에 찾아든 고희의 세월에 무엇에 도전을 해야 할까? 서서히 풀어지는 긴장의 끈을 조이며 늙음의 근육을 움츠려 본다. 움츠려진 근육은 언젠가는 펼쳐지지 않을까 해서다. 언제나 수긍하며 살아가긴 쉽지 않지만, 고단한 삶 속에 만난 성취감은 짜릿하다. 힘든 마라톤을 완주해야 희열을 맛볼 수 있다. 해 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희열이다. 고단한 맞바람을 기꺼이 끌어안고 페달을 밟아야 하는 이유이다.      

(2024.08.13.오마이 뉴스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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