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메뉴 고르는 게 제일 힘들다.
오늘 뭐 먹지?
몇 가지 후보의 메뉴들을 생각해 내는 건 나의 몫.
후보 중 최종 하나를 고르는 건 너의 몫.
이번엔 네가 생각해 보라며 떠밀어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결국 네가 먹고 싶은 거 먹잖아."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어진다.
"먹고 싶은 몇 가지 메뉴를 말해주면 내가 그중에 고를게."
"...."
"응? 엉? 말을 해 봐!"
"생각 안 나, 네가 말해 봐."
"치킨? 찜닭?"
"...."
"김치찌개? 된장찌개?"
"...."
"족발?"
"...."
"돈가스?"
"그건 네가 좋아하는 거지."
"김치볶음밥 해 먹을까?"
"...."
"김 구워서 달래장에 슥슥?"
"...."
"그냥 스팸이랑 양파랑 청양고추 넣어서 볶을까?"
"...."
계속 이어지는 수요 없는 공급에,
혹시... J 씨가 소리 소문 없이 죽어버린 것인지 생사확인을 위해 고개를 돌려본다.
살아있다. 살아서 입술을 꼭 다문 채 휴대폰만 보고 있다.
"대답 안 해? 죽을래?"
"돈가스 먹자."
"오빠는 돈가스 싫다며?"
"...."
"싫다며?"
"...."
"먹고 싶은 거 없어?"
"...."
순간의 싸함을 알아챌 눈치정도는 있는지
오공본드로 붙인 듯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J 씨의 입술이 움직인다.
똥집 같은 J 씨의 입술에서 겨우 전해 들은 단비 같은 한마디는,
후련하다기보다 왠지 화를 부른다.
내가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기는 먹는데, 마음은 찜찜하다.
"있잖아... 대답 좀 빨리 해주면 안 돼? 속 뒤집어질 것 같아."
"나는 너와 달라서 신중하잖아. 신중히 고르느라 그래, 재촉하지 마."
아구창을 날리고 싶다.
요즘 우리의 대화,
왜인지 모르게 통쾌해하는 너,
대화만 시작하면 울화가 치미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