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긴장을 푸는 연습.
아침 7시, 저절로 눈이 떠졌다. 역시 내가 감당해내기엔 너무 찐득한 대구의 여름이다.
다시 잠을 청하려 노력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고 이렇게 불쾌한 상태로 누워있을 바에야 아침 산책이나 가자 싶어 가볍게 씻고 집을 나섰다.
집 앞 잘 가꿔진 동네 산책로에는 늘 뛰는 사람, 걷는 사람, 운동 기구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 벤치에서 함께 나온 누군가와 수다를 즐기고 있는 사람 등 시간을 즐기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늘은 개미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이 더위에 뚫고 산책로에 운동 나온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이 넓은 산책로에 나 혼자라는 게 신기한 듯 짜릿해서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음악 소리에 맞춰 팔다리를 춤추듯 흔들었다. 누군가가 봤다면, 춤이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을 그런 몸짓.
30분쯤 내리쬐는 땡볕에서 수박처럼 붉어진 얼굴로 걷다 보니 목이 말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기 위해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아이스 박스에서 라지 얼음컵을 골라 결제하고 편의점 과자코너를 지나 뒤편에 있는 커피머신에서 얼음컵 윗부분의 랩핑을 뜯어 머신에 올려놓고 라지 아이스 아메리카노 버튼을 눌러 샷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던 찰나 뭔가 이상했다.
아? 얼음컵 뚜껑이 없네?
커피를 다 내리고 나서 계산대로 다시 갔다.
"사장님, 방금 제가 계산한 라지 얼음컵 뚜껑이 없어요."
"없다고요? 아. 그렇네요! 없네요."
편의점 사장님은 아이스 박스 안에 컵 뚜껑이 분리되어 혼자 나뒹굴고 있는 건 아닌지 찾아보셨다.
"아가씨가 뚜껑 없는 컵을 집었네요."
"아 그래요? 죄송해요."
결국 짝을 잃은 내 컵의 뚜껑은 발견되지 않았고 사장님은 다른 멀쩡한 얼음컵의 뚜껑을 벗겨내어 나에게 주셨다.
"감사합니다."
편의점을 나와 걷다 보니 문득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닌데 나는 왜 죄송하다고 말을 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장님의 잘못이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장님은 내가 죄송 과 감사를 표현할 때도 별일 아니라는 듯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컵 뚜껑을 전달해 주고는 본인의 일을 하셨다.
그냥 별 일 아닌 일이다. 재수 없었던 내 똥손이 문제라면 문제였겠지 누구의 잘잘못을 따져야 되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죄송하다.'는 말로 나 스스로 '내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회사의 인사팀에 입사하여 가장 중요하게 여긴 업무 예절 중 하나는 인사 예절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은 우리 인사팀은 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종의 서비스직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직원들과 거래업체 모두와 좋은 관계가 유지되어야 다음에도 얼굴 붉힐 일 없이 업무를 평화롭게 진행할 수 있었기에 매사에 먼저 숙이고 들어 갔던 습관적 말버릇들이 내 일상에도 서서히 들어와 버렸다.
그렇게 꾹꾹 눌렀던 감정들이 흘러나가지 않고 쌓여버려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정신상태가 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불필요한 사과와 지나친 감사를 표현하고 있다.
물론, 사과와 감사의 표현은 인간관계에서 당연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가벼운 해프닝과도 같은 일에도 '사과'와 '감사'를 반복하여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낮춰버리는 나의 말버릇은 내가 일상을 늘 긴장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는 것이 아닐지?
'예의 바름'과 '지나침'의 경계를 잘 구분하여 표현할 스킬이 나는 아직 부족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는 '나'임으로 스스로를 상처받게 하는 일을 만들지 말자.
일상에서의 긴장을 조금씩 풀어내고 옭아매고 있던 스스로의 버릇들을 알아가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