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 Sep 06. 2022

궁금하면 값을 치러야 한다?

-아직 남아있는 직업병.

 서울로 이직한 구. 회사 후배와 카톡으로 소소한 일상에 대해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의 직장동료가 갑자기 오늘 휴직계를 냈다고 한다.

 나: 왜? 갑자기 무슨 일로 휴직하는 거래? 궁금하네.
 P : 안 물어봤어요. 저 주말에 수영장 가거든요. 그래서 수영복 쇼핑 중이에요.


 인사팀 실무자였던 나는 알고 싶지 않은 회사 내의 정보들까지 모두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후배 녀석은 그런 나에게 소문의 진상을 알아내고자 늘 끊임없이 질문하던 아이였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기 때문에 수 가지의 질문을 던져서라도 알아내야 하는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그녀 직장동료의 갑작스러운 휴직계'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채 우리의 대화는 다른 주제로 넘어가 버렸다.


 전 직장에서 나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모를 권리'를 누릴 기회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입퇴사가 잦은 중소기업에서 가장 큰 무기는 회사의 히스토리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것이다.

 인사팀에서 13년 이상 근무했던 나는 웬만한 회사의 굵직한 사건사고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왔기에 아는 것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업무와 상관없을지라도 이전 이력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회의에는 늘 참석하라는 사장님의 지시를 받곤 했다.

 

 회의에 참석했다는 이유만으로 미참석자들로부터는 나와 상관없었던 회의 내용에 대해 정리하여 알려달라는 메일을 받기도 했고, 참석자들로부터는 회의록 작성이나 개선 사항에 대한 의견 정리와 같은 업무들을 떠맡기도 했다.

 분명 몰라도 되는 것들이었는데 서서히 나의 일이 되어 갔고, 일의 범위는 의도치 않게 광범위해져 갔다.

 다들 '네가 일을 잘해서 그래.'라고 말하지만 나는 안다, 귀찮은 일을 떠넘기기 위해 내뱉는 말들이라는 것을.


 나도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는 것이 회의에 참석하더라도 자리만 빛내고 오면 될 것을 듣다 보니 생겨버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질문을 하고 답을 메모하는 등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담당자들이 보기에 '내가 해보겠음'으로 오해 사기 딱 좋았던 듯했다.

 아니! 나와는 무관한 일이더라도 궁금해할 수는 있지 않는가? 궁금하다는 것이 '내가 그 일을 하겠다.'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과장님, 궁금해도 묻지 마세요. 그럼 또 과장님이 해야 해요."

 남의 일엔 별로 관심 없어 보이던 영업팀 대리가 탕비실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에게 진심 어린 걱정을 한 적이 있다.

 나에게 관심을 보여 준 대리에게 고맙다가도 그녀의 말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들어가는 것인가.'

 모를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모르고 싶어 졌고, 모르고 싶어 지니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일이 싫어졌다.

 아마, 후배 녀석도 아무리 사소한 앎이라도 부메랑처럼 '나의 일'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기에 더 이상 알고자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니까.


 아직 쓴 맛을 덜 봐서 그런다며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궁금한 것 투성인 채로 살아가고 싶다.


엄마는 나에게 살아 숨 쉬는 한 스트레스가 없을 순 없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 당장 궁금증의 대가로 무언가를 감당할만한 여력이 없는 것이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나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으니.

  

이전 15화 지긋지긋한 월요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