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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Jan 09. 2023

담임 선생님이 마니또라니!

- 고등학교 1학년때 수호천사로부터 대단한 것을 선물 받았다.

 '난 뭘 잘하지?'

 마흔 살까지 왔는데도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단박에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애써 생각해내려 노력하지 않는 날들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날은 날 잡고 나의 장점을 끄집어 내보며 손가락을 접어보기도 했다.

 하나씩 접히는 손가락에 기분이 산뜻해지다가 나 스스로 끼워 맞춘듯한 시시한 것들 뿐이라는 생각에 다시 기분이 곤두박질칠 때쯤, 어김없이 고등학교 1학년 나의 담임 선생님이 써 준 편지가 생각난다.


 나라는 인간이 꽤 괜찮은 인간이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자신감 부적과도 같은 담임 선생님의 편지.




 중 2 때 지금의 동네로 이사를 왔고,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중고등학교가 같은 재단 소속으로 건물이 붙어 있는 학교였다. 그래서 대부분 같은 재단의 중학교에서 올라온 애들이었고, 서로가 새롭다기보다는 익숙함을 넘어 지긋지긋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때는 정말 낯가림이 심했다.

 고 1 때, 학교 갈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뜬 눈으로 이른 새벽을 맞이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고요한 새벽은 나에게 안정감보다는 극도의 불안감을 주었고, 그 불안감을 견디다 못해 처음으로 청소년 심리상담센터에 전화도 해보았다. 물론, 너무 늦은 혹은 너무 이른 새벽이라 전화연결이 되진 않았지만...


 그러다 조금씩 안정되어 가고 원래의 성격을 조금씩 반친구들에게 꺼내보게 된 계기는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는 내 친구들 덕이다. 내 앞자리, 옆자리, 뒷자리에 앉아있던 그 친구들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같이 매점도 가자 해주고, 체육수업 시간에 운동장으로 함께 나가주기도 하면서 더 이상 고요한 새벽에 깨어있지 않게 되었다.


 그녀들 덕에 나는 어느새 반에서 가장 웃긴 아이가 되어 있었다. 반 친구들을 웃기는 게 즐거웠던 나는 때론 과감하게 수업 시간에 웃긴 대답을 해대곤 했는데,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를 한 번도 혼낸 적이 없었다.




 그러다 1학기가 끝날 때쯤, 담임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일주일간 '마니또 놀이'를 해보자 제안하셨다.

 선생님도 참여하겠다는 말에 다들 선생님만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누군가의 마니또가 되기 위해 이름 적힌 종이를 뽑았고, 일주일 동안 우리는 서로의 천사가 되어 주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뽑았던 반 친구에게 최선을 다해 수호천사가 되어주려고 노력했던 듯하다.

 그 아이보다 일찍 등교해 바나나 우유를 자리에 놓아두기도 하고, 글씨체를 알아볼까 일부러 왼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가며 정성껏 편지도 썼다. 급식 당번이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일부러 그 아이에게 반찬을 더 놓아주기도 했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조회시간, '내가 너의 마니또야!'라고 밝히는 순간이 왔다.

 수호천사로써 그 간의 노력들을 상대방에게 열거하느라 바쁜 와중에 나의 마니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마니또가 없었던 것 아니냐며 반친구들이 놀려대기 시작했고, 생각해보니 일주일간 나의 의심을 살만큼 나에게 살갑게 대해준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듯하다는 사실에 내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회시간이 끝나고, 나를 제외한 모든 반친구들은 마니또의 여운이 남아있는지 계속 들떠있었다.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쉬는 시간, 들떠있는 반친구들 틈 사이로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오셨다.

 그리고 편지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마니또였단다."



 시끌벅적했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시간이 멈춘 듯했고, 어안이 벙벙한 내 표정과 달리 선생님은 '놀랬지, 요놈아!'라는 통쾌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여기저기서 담임이 마니또라니 불쌍하다며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위로를 받고 있으니, 담임 선생님이 마니또였다는 게 정말 위로까지 받을 일처럼 느껴졌다.


 담임 선생님은 1학년 화학 수업을 가르치는 여자분이셨다. 모든 일에 담백한 노잼 선생님으로 유명했다.

 우리는 담임 선생님을 다정다감하고 잘 웃으시는 옆 반 담임 선생님과 늘 비교했고, 옆 반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옆 반 담임 선생님의 과목은 게다가 '가정'이었다. 너무나 어울리는 과목이라 우리 모두 생각했다.


 담백한 노잼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써 준 편지치고는 편지지 한 장 빼곡히 아주 정성껏 적혀있었다.

 일주일 간 마니또 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는 첫 문장이 신선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였다면 '마니또 놀이'에 참여를 하지 마시지 라며 원망을 시작으로 편지를 읽어 나갔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것과 진배없는 네가 서서히 적응해 가는 모습이 기뻤단다.

그리고 내가 너를 보며 가장 신기했던 것은 네가 수업시간에 불쑥불쑥 내뱉는 농담들에 반 아이나 담당 과목 선생님들 단 한 명도 불만을 표하거나 싫어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거였단다.

 그만큼 네가 눈치도 빠르고, 공감도 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너와 그런 너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기는 반 친구들을 보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꼭 말해주고 싶었단다.

 자기를 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 그건 대단한 행운이란다.

 그 행운이 계속 너와 함께 하기를, 그렇게 자라주기를 바란다.


 선생님이 마니또라 실망했겠지만 말이다.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처음으로 타인들이 바라보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내 마니또는 그간 들키지 않기 위해 근무태만 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달란트(talent)를 찾아내어 선물해 줬고, 수호천사로써 나에게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이보다 더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 마니또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그 뒤로 반 아이들과 동참하여 담임 선생님을 욕하지 않았고, 옆 반 담임 선생님을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니들이 몰라서 그래. 우리 담임이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다가 편지 하나 달랑 써 준 마니또가 뭐가 그래 좋아 편을 드는 거냐며 나를 비웃었지만 난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마 잊었을지 모른다.

 당신이 나의 마니또였다는 것, 편지를 써 주었다는 것, 그 편지의 내용이 이러했다는 것도...

 누군가에게 나의 의견을 어필하는 순간이나, 내 계획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야 될 때 선생님의 편지는 나에게 아주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나는 미움받지 않는 행운을 가진 사람이라는 선생님의 믿음 방패. '


전혀 분주하지 않는 나의 월요일 아침,

스멀스멀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불안감이 피어오르려 할 때 감사하게도 선생님의 편지가 또 생각났다.


  나라는 존재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모두의 사랑을 머금은 나의 선택을 의심치 않아야 함을.




 우리 모두에게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한낱으로 시작되었지만 나에겐 대단하고 거대한, 소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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