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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Oct 26. 2022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

회인의 책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

회인은 자기 몸으로 자기를 낳고 싶다고 했다. 자신에게 자궁이 있다면. 대신 그는 소설을 썼다.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라는 제목의 B6 사이즈 책은 검은색 표지에 2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두께로 가격은 만 원이었다. 서문도 없이 단 일곱 편의 소설이 실린 이 책은 50권만 인쇄되었다. 회인은 캐리어에 50권을 전부 챙겨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회인의 책이 제주도 전역에 배포되고 5개월 뒤, <공무원 게스트하우스>라는 제목으로 배우와 가수와 개그맨 세 명이 모여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방영되었다. 거기서 배우 공이 숙소 잔디밭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다 갑자기 카메라를 향해 책을 보여 주며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책이지 않습니까? 저도 읽게 만드는 마성의 책, 물론 제 독서량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방송 중인 것도 잊고 열중하게 만드는 책, 소설이죠, 이 책이 소설입니다. 컵라면 익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읽을 수 있는 길이의 단편들이 일곱 편, 그러니까 컵라면을 일곱 개 먹을 수 있는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

 그 책이 회인의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였다.

 방송이 나온 날 실시간검색어에 ‘회인’,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 ‘공무원’ 따위의 단어들이 떴고 인터넷 어디에도 책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사람들은 가방에 호기심을 챙겨 제주도로 왔고 이 책을 찾기 어렵다는 소문이 돌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로 몰려들었다. 유명세는 희소성과 정비례한다. 거기에 기묘한 증언과 소문이 더해지면 설화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제주도 여행 중 이 책을 읽은 뒤 오름에서 실종됐다는 학생의 이야기가 트위터에서 RT를 탔다. 최초 게시자는 회인의 책을 보유한 공무원 게스트하우스 근처 카페 사장인데 머리가 산발인 어떤 손님이 ‘회인 때문에’ 사라지려고 제주에 찾아왔는데 회인의 책을 정말로 보여주자 몹시 놀라면서...뒤로 이어지는 글은 금방 삭제되어 찾을 수 없었다.

 어느새 회인의 책을 찾아다니는 제주 여행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가 발견된 책방과 카페 지도가 만들어졌다. 공항을 시작점으로 두고 시계방향으로 바닷가를 따라 한 바퀴 도는 타원형 안에 무수한 점이 찍혔다. 제주시 함덕에서 월정리 해변, 세화, 종달리를 지나 성산에서 표선, 남원, 위미리, 서귀포 시내를 통과해 화순, 대정, 금능과 협재, 애월, 다시 제주시내로 돌아오는 코스 속에 25곳의 책방과 24곳의 카페, 단 한 곳의 게스트하우스가 자리했다. 그중 아홉 곳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했고 다섯 곳이 폐업했으며 지속적으로 갈등 상황이 생겼다. 한 책방은 여행객이 몰려들어 책은 사지 않고 책 인증샷만 찍는 일에 질려 회인의 책을 불태우는 모습을 유튜브 라이브로 생중계하고 어마어마한 악플에 시달렸다. 이후 해명 영상에서 책방 주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인이 누구인지 궁금하십니까? 그 책을 읽고 싶습니까? 나는 그를 만났고 책을 읽었고 이렇게 5년 간 무탈하게 운영해 온 책방을 다음 주로 닫게 되었습니다. 그를 만나자마자 나는 나의 미래를 예감했습니다. 그 책을 읽고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섬을 떠납니다. 영원히.”

 영상 아래 댓글 창에서 사람들은 끝없이 싸웠다. 그래서 회인이 그인가 그녀인가, 작가를 직접 만난 사람이 그라고 표현했으니 남자다, 저기요 그라는 대명사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요, 작가의 성별을 알아내려는 것 자체가 다분히 성차별적이고요, 그 책을 읽다 보면 회인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작가와 작품은 엄연히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해야 합니다, 아니 지금 구하기도 힘든 그 책을 누가 읽어요 너는 읽었냐? 난 한 권 가지고 있음, 인증 없으면 손모가지 날아간다, 지난 새벽에 누가 중고나라에 50만 원으로 올렸다가 십 분 만에 지웠던데 그 사이에 댓글은 또 수십 개가 달렸대, 나는 이 책을 절대 팔지도 않고 나 이외의 사람에게 보여주지도 않을 것이다, 구라 치고 있네, 증거 있어? 다들 평소에 책도 안 읽으면서 연예인이 추천했다고 이 난리 치는 거 웃기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책을 찾아라.”

 “그렇지.”

 “찾아서 책에 대한 책을 써라? 제가요?”

 “그 일 하는데 우리 장원이가 제격이지.”

 나는 웃었다. 하나뿐인 상사이자 삼촌인 사람이 하늘에 구름 떼어다 솜사탕 팔자는 얘기를 하고 있으면 웃을 수밖에 없다. 삼촌은 구름 같은 휘핑크림이 위협적으로 흔들리는 카페모카를 빨대로 저어가며 내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제주도 여행 간다고 생각하고 가면 되나?”

 “가벼운 마음으로 가, 가볍게. 그래야 대어가 잡혀.”

 두 입에 주먹보다 큰 휘핑크림을 먹어치운 삼촌이 말했다. 

 “삼촌...아니 사장님은 사장님이 무슨 일을 하는 회사를 운영하는지 알고 있는 거 맞죠?”

 “안다고 생각하면 안 돼. 사업이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거야. 가벼운 마음으로.”

 확실히 삼촌은 회사 이름을 지을 때부터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였을 게 틀림없다. ‘한국문화컨텐츠부흥엔터네이너코퍼레이션’이라는 간판을 주문 제작할 때 삼촌은 지금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었을지 궁금했다. 점심을 먹고 매일 한 잔씩 마시는 삼촌의 카페모카처럼 휘핑과 온갖 시럽과 초콜릿이 첨가된 음료와 같은 이 회사는 타이어가 터진 줄도 모르고 달리는 자동차 같은 상태였다. 삼촌의 제안으로 입사해 내 손으로 퍼지기 일보직전의 회사 부품을 하나하나 교체하고 기름 부어 가며 시동을 건 결과 그럭저럭 굴러갈 만한 곳이 되었고 삼촌은 기뻐했다. 내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이렇게 잘 해준 거라고,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삼촌 특유의 화법에 적응해 가며 같이 일했다. 

 사실 나도 삼촌의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삼촌의 방식대로 간단히 설명하자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될 만한 작품을 발굴해 업체를 이어 주는 일이 주 업무였다. 나를 포함한 직원 세 명이 출근하면 각자 컴퓨터로 웹 소설이나 웹툰을 보고 점심을 먹고 시중에 출간된 소설을 읽다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삼촌은 매일 건물 1층에 붙어 있는 회사 간판을 닦고 파티션으로 분리된 사장실에서 전화를 하고 전화를 하고 전화를 하다 점심을 먹고 카페모카를 먹고 낮잠을 잤다. 가끔 영화사 대표나 드라마 피디 같은 사람들을 만나러 나갈 때도 있었다. 삼촌이 나가면 우리는 과자를 먹으며 요즘 유행하는 웹 소설 트렌드에 대해 토론하거나 최근에 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감상을 나누거나 이 회사가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내기를 했다. 직원 1은 하루 종일 BL만 읽다 매달 월급을 받는 게 좋으면서도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직원 2는 자신이 여기서 일한 지 이 년 가까이 되어 가는데 영화화가 된 작품 하나 없는데 어디서 돈이 나오는지 궁금해 했다. 

 가볍게 생각해, 가볍게.

 하지만 이 일은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될 일이었다.

 “일단, 영화로 한 번 만들어진 작품이었잖아요. 그 책에 대한 판권은 그 쪽에 있을 거고, 작가가 누구인지 정체가 밝혀진 것도 없고...”

 “바로 그거야.”

 “제가 방금 뭐라고 했죠?”

 “아무도 모르는 작가의 정체를 추적하고 그가 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책의 주제야.”

 “삼촌, 제가 삼촌 하는 일 태클 안 걸고 열심히 일해 왔잖아요, 고마워서.”

 삼촌은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요, 삼촌, 존재 여부도 불확실한 책과 그 작가에 대한 책을 쓰라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삼촌은 USB하나와 회사 법인카드를 내게 내밀었다. 

 “내가 말로 설명하면 복잡하니까, 똑똑한 네가 직접 읽고 이해하면 쉬운 일이 되겠지? 여행 경비는 이백 프로 다 대준다니까, 이백만 원 준다는 소리는 아니고, 비싼 거 먹고 렌트카도 제일 좋은 걸로 빌리고.” 이백만 원 농담이 마음에 든 삼촌은 낄낄대며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누가 대준다고요?”

 “출발은 다음 주 월요일이다.”

 오늘은 금요일이었고, 주말동안 자료를 확인한 뒤 바로 떠나라는 소리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남은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다 마셔버렸다. 사무실로 올라가 USB에 든 자료를 전부 프린트했다. 2쪽 모아 찍기를 했는데도 백 장이 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 프로젝트 사업계획서, 그 책과 작가 회인에 대해 보도된 모든 뉴스와 정보들, 일곱 편의 작품 중 온라인에 공개된 두 편의 소설, <공무원 게스트하우스>와 배우 공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나는 주말 내내 서너 시간만 자고 일어나 자료를 읽고 <공무원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회차를 정주행하고 공이 제작한 영화 <화장실 전쟁>을 보았다. 

 사업계획서가 말하는 이 프로젝트는 삼촌의 말과 달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업계획서를 쓴 사람은 베일에 싸인 작가 회인과 그가 쓴 비밀의 책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를 찾아나서는 추리 형식의 작품을 제안하고 있었다. 책이 배포된 카페와 책방과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하고 회인을 만났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책에 얽힌 사람들, 책을 읽고 실종되었다는 학생과 같은, 인생이 변한 이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회인과 회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흐름의 책을 원하고 있었다.

 이 일을 맡기 전까지 나는 회인에 대해, 그가 쓴 책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거의 없었다. 직원 1이 공의 팬이라 그가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를 영화화할 계획이었고 첫 작품으로 「화장실 전쟁」을 제작하고 감독과 주연까지 맡았으며 그 영화가 그의 은퇴작이 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직원 1은 회인이 공을 망친 거라며 열변을 토했고 그 모습은 유튜브에서 회인의 책을 태우며 저주를 퍼붓는 책방 사장의 모습과 톤이 비슷했다. 

 이렇게 책을 둘러싼 이야기만 들으면 천재 작가의 저주받은 걸작 같지만, 인터넷에 공개된 두 편의 글은 내가 보기에 평범했다. 독서량이 아주 많은 편도 아니고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내 눈으로도 회인이 썼다는「화장실 전쟁」과 「인정하는 부분인 것입니다」는 어설프게 느껴졌다. 공의 영화가 개봉한 날 공개된 「화장실 전쟁」은 결벽증을 가진 주인공이 우연히 오래된 빌딩 공용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폭탄 테러범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고 「인정하는 부분인 것입니다」는 SNS 스타 인플루언서 이야기로 책을 불태운 책방 사장이 전문을 공개한 작품이었다. 「인정」은 책이 휘말린 운명을 예언한 것 같아 흥미롭긴 했다.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뒤쫓는 모습은 인간의 본능과도 같다. 나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내가 팔로우하는 연예인이 입고 나온 코트를 주문한 적 있었다. 내 월급의 반을 털어 산 코트는 내가 입으면 인간 청소기가 되어 바닥을 쓸고 다닐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얼어 죽기 전 롱 패딩 파였다. 

 그 코트는 비싸긴 해도 살 수 있었지만, 회인의 책은 정가의 백배가 올라도 구할 수가 없었다. 중고판매 사이트에 몇 번 『일기』가 백만 원에 올라왔다가 사라지고 상황은 한층 더 악화되었다. SNS로 책의 존재를 인증했던 카페에서 도난사건이 벌어졌고 손님들이 책을 가지고 싸우는 일이 생겼다. 애월에 있는 책방에서 한 손님이 수표를 주며 회인의 책을 팔아 달라 요구했고 서점 주인이 거절하자 소란을 피웠으며 이를 제지하던 다른 손님까지 휘말려 타박상과 찰과상과 깨진 창문을 남긴 사건도 있었다. 열기가 최고점으로 치솟은 순간 공이 『일기』의 영화화를 발표했고 유명 배우의 첫 감독 작품이라는 타이틀로 상당한 투자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공은 데뷔 20주년이 되는 해, 스물아홉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잠적했다.

 어려운 일이 되겠어, 캐리어에 필요한 것들을 던져 넣으며 나는 무심히 생각했다. 실물조차 찾기 힘든 책을 찾아 잠적 상태인 유명 연예인까지 짜 맞추려면. 사업계획서는 공이 제주에 있을 거라 추측하며 그의 흔적까지 발굴해 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미스터리한 작가와 돌연 사라진 배우, 그들의 무대가 되어 주는 섬,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클리셰인데, 온갖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지친 내 머리가 파업을 선언하고 나는 캐리어를 베개 삼아 잠이 들었다.     


 5월의 제주는 제주 특유의 냄새로 소란스러웠다. 잠이 부족해 반수면 상태인 뇌를 깨우는 데 제주 공기가 제격이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받아 성산 방향으로 운전하면서 창문을 모두 내렸다. 제주의 바다는 육지의 바다 냄새와 종류가 다르다. 바다 짠내와 물에 젖은 숲 냄새와 지글지글하게 익어가는 현무암 냄새가 모두 섞인 제주도만의 냄새. 특히 5월엔 이 냄새가 극대화되어 제주의 바람 속에 실린 제주를 맡으며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는 대책 없는 낙관에 몸을 실을 수 있다. 

 제주의 공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변했다. 회인이 책으로 꽉 찬 캐리어를 끌고 공항 밖으로 나온 3년 전 그날도 5월이었다. 그가 책을 남기고 간 24곳의 카페 중 14곳이 바다가 보이는 곳이었고 10곳은 숲이나 오름 사이에 있었다. 모두 바깥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창이 있는 카페였다. 3년 사이 새로운 카페가 생기고 새로운 책방이 생기고 또 생겼다. 회인의 책이 있던 장소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있었다. 세화 해변 앞 핸드드립 전문 카페는 해물라면집으로 바뀌었고, 성산일출봉이 액자처럼 창문에 쏙 들어오는 뷰를 자랑하던 책방은 건물 자체가 없어졌다. 그 근처에 새로 생긴 책방 사장은 회인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했다.

 “뭐,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요. 그때 그 책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는 소리는 들었죠.”

 그는 인터넷에 그 책의 단편 중 하나를 공개하며 책방에서 인증샷만 찍고 가는 관광객들을 저격한 글을 올린 사건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같은 문제로 고민 중이었다. ‘구매 후 사진촬영 가능’이라 적힌 안내문을 가리키며 성산의 책방 사장은 허탈하게 웃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진만 찍고 책 한 권 안사고 가버리는 사람들은 여전하지만요.”

 나는 거기서 책 한 권을 샀다. 제주 공항부터 함덕, 월정리, 세화, 종달리를 거쳐 성산, 온평, 표선, 남원, 위미에 있는 카페와 책방들을 방문해 커피를 마시고 책을 샀다. 장소 자체가 사라지거나 주인이 바뀌어 회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어디에도 책은 보이지 않았다. 서귀포 시내를 통과해 사계리로 향하는 내 머릿속은 카페인 과다로 지나치게 밝았다. 정오의 태양이 통째로 머리통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 기분이 정말 카페인 때문일까?

 위미리의 바다 앞에 자리한 이름이 ‘바다앞’인 카페에서 나는 오늘의 열 번째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내려 준 직원은 제주에 온지 한 달 된 휴학생이었고, 회인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카페 한구석에 놓인 작은 책장엔 검은색 표지의 책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바다가 액자처럼 걸려 있는 커다란 창문 앞 테이블에 앉았다. 네 개의 의자가 놓인 그 자리에 누군가 먼저 앉아 있었다. 

 의자 하나만큼 거리를 두고 앉아 잠시 눈앞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제주의 공기만큼이나 바다 역시 육지와 달랐다.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에메랄드 빛 바다, 하지만 나는 에메랄드를 태어나서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다. 지금 내 눈에 밀려드는 저 바다 빛깔을 묘사하기 위해 내가 끌어올 수 있는 건 엄마의 옥가락지다. 문신처럼 엄마의 오른손 약지에 박혀 있던 그 옥가락지를 녹여 바다에 풀어놓는다면 딱 저 빛이 나올 것 같다. 옥이라는 단어가 왠지 낡고 구식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실제로 손에 놓고 바라본 옥빛은 내면에 빛을 품고 인내하는 고귀한 품성을 느끼게 한다. 비록 물건의 주인은 정반대의 성질을 갖고 있었지만.


 멍하니 바다를 보며 엄마를 생각하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나를 제외하고 카페의 유일한 손님을 바라보았다. 어깨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커튼처럼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인 그는 뭔가를 쓰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네가 우리 집 옥에 티다, 오랜만에 엄마의 목소리를 불러들인 건 방금 전 바다를 보며 생각했던 옥가락지다. 옥빛 바다를 배경으로 그려진 이 캔버스에서 유일한 티가 내 존재라고, 양심이 있다면 어서 자리를 옮기라고, 이 그림에서 넌 빠지라고, 엄마의 옥가락지가 엄마의 목소리로 말한다. 넌 절대 저 사람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될 수 없다. 

 그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혼자 오셨나 봐요?”

 보티첼리의 그림 속 주인공이 바흐의 파이프오르간 같은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내가 그 순간 떠올린 예술 작품이 보티첼리와 바흐뿐이라 내가 쓸 수 있는 최대한의 수식어를 그에게 몽땅 안길 수밖에 없었다. 

 “그...쪽도 혼자 여행 오셨나 보네요.”

 “혼자가 편해서.”

 그는 웃으며 왼손의 펜을 내려놓고 노트를 덮었다. 붉은 테두리의 네임 스티커가 붙은 검은색 몰스킨 노트 표지가 반들거렸다. 

 “제가 혹시 방해가 된 걸까요?”

 “전혀.”

 그는 유리에 담긴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은 아름다워요.”

 “예를 들면, 바다?”

 “바다도, 이 장소도.”

 그는 몇 년 전 이곳에 온 적 있다고 했다. 과거와 현재를 변함없는 바다가 이어주고 있었다. 사람은 시시각각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연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다고, 방금 쓴 문장들을 낭독하는 투로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주인이 바뀐 건 좀 아쉽지만 장소가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죠. 제주도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만 있는 상황에서.”

 “예전에도 오신 적이 있으신가 봐요.”

 나는 차마 그의 눈을 계속 바라볼 수만은 없어 몰스킨 노트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네임 스티커가 붙은 표지가 왜인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마지막 여행이에요, 이번 제주.”

 그는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를 기다렸다는 듯 내게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제주에 함께 오기로 약속했던 사람이 있었고, 결국 혼자 올 수밖에 없었고,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번 여행은 그 사람의 소원이 보존되고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다음 달 독일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가.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질문뿐이었다. 그 사람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는지, 소원이 무엇인지, 왜 독일로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인지, 수많은 질문이 쏟아졌고 내가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슬프신가요?”

 우는 듯 웃는 듯,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혹은 웃음을 참는 듯한, 울렁이는 눈과 일렁이는 입과 갈 곳 잃은 손가락과, 인간이 물이라면 그는 당장이라도 카페 바닥에 쏟아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눈, 그 표정이 내 안으로 들어왔고 그가 나를 바라보던 눈이 커피 열 잔의 카페인보다 더 강렬하게 내 심장을 찔렀다. 

 표정을 수습한 그는 내게 예의바른 웃음을 답으로 건네고 노트를 챙겨 카페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를 따라 나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30분 간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소원을 지키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라, 거기에 신경을 쓰기엔 내 일부터가 가야 할 길이 구만 리다. 실물 책을 보기는커녕 책에 대한 증언조차 얻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의 말대로 바다는 영원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가 이번 여행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가장 기대되는 곳이다. 회인이 방문했던 유일한 숙소이자, 현재까지 장소도 주인도 변함없는 곳, 산방산이 눈에 들어오면서 나는 흩어졌던 의식을 다시 현재로 불러들었다.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사계리, 이곳에 배우인 공과 개그맨 무, 가수 원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딴 ‘공무원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방송에 나오기 전 원래 이름은 그냥 ‘공’이었다. 제주도 특유의 현무암 돌담 위로 이층짜리 건물이 새하얗게 빛난다. 볼 때마다 거대한 두부 같은 네모난 건물은 산방산을 등지고 서서 ‘공’을 거꾸로 엎어 놓은 모양으로 무심하게 자리를 지켰다. 얼룩 하나 없는 흰 벽 앞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공이 누워서 책을 보던 자리에 누군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는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잔디밭 옆 편석이 깔린 주차공간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가부좌를 튼 사람이 눈을 떴다.

 “진짜 손님?”

 “안녕하세요.”

 내가 꾸벅 인사하자 그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일찍 올 줄도 모르고 청소도 아직 못 했는데.”

 “저녁 먹고 들어올 걸 그랬을까요?”

 “같이 청소할까?”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냉장고 바지에 그려진 코끼리들이 춤을 추었다. 흰 면 티에 코끼리가 그려진 냉장고 바지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는 노란 고무줄로 묶은 사장의 성은 예상과 달리 목이다. 방송에서 목 사장은 공과 무와 원에게 게스트하우스를 맡기고 툭하면 다이빙하러 바다에 가거나 오름 트레킹을 하러 자리를 자주 비웠다. 특유의 웃음소리로 깔깔마녀 사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목 사장의 정체를 다들 궁금해 했다. 배우 공이 사라지고 수많은 기자와 팬과 안티와 유튜버들과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 공무원에 밀려들었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금의 공무원은 겉에서 보기에 지극히 고요했다.

 “오늘 손님이 자기랑 단 둘이라 조용히 보낼 수 있을 걸, 몇 박 예약했지?”

 “6박 7일입니다.”

 출장비 명목으로 좋은 호텔에 묵을 수도 있었지만 자료를 다 읽은 내 머리가 공무원으로 가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곳에 가면 이번 일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사장은 회인과 공을 동시에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회인을 직접 만나 책을 받은 사람이고, 공과 함께 방송을 했으며, 그 책이 방송에 나올 수 있도록 판을 짠 게 사장이 아닐까 나는 추측했다. 공이 거실 책장에 꽂힌 그 많은 책 중에서 우연히 회인의 책을 골라 보여줬다고 설명하기엔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예능에서 공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준 건 잔디밭에서의 그 장면이 유일했고, 회인의 책을 설명하는 말은 지나치게 장황하고 튀어 보였다. 

 왜 공은 그 책을 방송에 내보냈을까. 

 당장이라도 질문이 튀어나올 것 같은 입을 단속하며 목 사장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긴 복도를 따라 걸으니 층고가 높은 거실이 나타났다. 게스트하우스 앞 잔디밭이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통유리 창을 중심으로 원목 테이블과 원색의 빈백들이 적절한 자리에 배치되어 있었다. 거실 가운데 테이블 대신 놓인 넙데데한 살굿빛 항아리는 몸 안에 과자와 초콜릿과 귤을 가득 품고 있었다. 방송에도 나온 항아리는 손님들이 안에 든 것을 빼먹고 또 그만큼 채워 넣는 일종의 방명록과 같은 역할을 했다.

 “깨끗한데요?”

 “정말 그러네? 자기가 혼자 다 치운 거야?”

 다른 자기로 호명된 손님이 거실 한쪽 벽면에 놓인 책장을 닦다 뒤를 돌아보았다. 호일 펌에 동그란 안경을 쓴 그는 안경 쓴 브로콜리처럼 생겼다. 안경 브로콜리는 손을 들어 까만 때가 묻은 물티슈를 내게 보여주었다. 

 “먼지가 많죠? 청소 안 한 지가 한참 된 것 같죠?”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멈칫한 내 옆에서 목 사장이 박수를 쳤다. 

 “역시 우리 자기가 대단해.”

 “제가 올 때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숙박업에서 청결은 기본 아닌가요? 제가 일하는 곳은 매일 세 번 청소를 해요. 손님들 체크아웃 후, 새로운 손님들 체크인 전, 11시 소등 직전.”

 그는 애월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 년 가까이 여행자 스텝으로 머물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스텝 브로콜리가 사장님을 향해 청결의 철학을 전파하는 사이 내 눈은 재빠르게 책장을 훑었다. 검은색 책이 몇 권 눈에 들어왔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맞죠, 제 말이?”

 “네...네?”

 방심한 내가 고개를 돌리자 브로콜리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저 사진이 이 공간의 차분한 분위기를 크게 저해한다고 생각하시죠? 사진은 내리고 그림만 남겨두는 게 좋겠죠?”

 그가 가리킨 것은 공과 무와 원이 목 사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대형 아크릴 액자에 인화된 사진 속 네 사람이 활짝 웃는 얼굴로 공무원과 산방산을 등진 채 잔디밭에 서 있었다. 그 옆에 피카소풍의 여자 그림이 왼쪽 눈으로 앞을, 오른쪽 눈으로 옆을 동시에 바라보며 톱인지 칼인지 모를 공구를 들고 서 있었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세히 보니 좀 그렇긴 하네요.”

 나는 재빨리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의 말에 반박하면 반박의 반박이 더해지며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았다. 내 동조에 힘을 얻는 브로콜리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게스트하우스의 인테리어 철학 강의를 시작했고 나는 최대한 그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빈백으로 퇴각했다. 목 사장은 진작 빠져나가 잔디밭에 다시 앉아 있었다. 

 빈백에 기대어 안경 브로콜리의 말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창밖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제주도 고유의 검은 돌담에 둘러싸인 정원은 나무 하나 꽃 한 송이 없이 오직 잔디만 깔려 있었다. 건물 현관까지 이어진 작은 돌길을 제외하고 잔디밭에 놓인 물건은 커다란 나무 벤치와 생뚱맞은 장승 하나가 전부였다. 저 벤치에서 출연진들이 투숙객들과 나란히 앉아 고민 상담을 자주 주고받아 ‘걱정벤치’라는 별명이 붙었다. 장승은 가족 손님이 오면 어린 아이가 장승을 보고 울음을 터뜨려 공무원의 숨겨진 웃음 포인트였다. 

 어느새 브로콜리가 내 맞은편 빈백에 앉아 나와 같이 창밖을 보고 있었다. 

 “여기는 그때랑 변한 게 없어요.”   

 “방송 보셨나 봐요.”

 “공이 나왔으니까, 공은 제 인생을 바꾼 사람이니까.”

 처음으로 나는 그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그가 공의 열렬한 팬이라는 이야기를 꺼내고부터 빈백을 그와 가까운 곳으로 살짝 당기기까지 했다. <공무원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제대로 공을 본 브로콜리는 곧바로 공에게 빠져들었다. 공의 모든 드라마와 영화, 방송을 찾아보았고, 공의 대사를 달달 외웠다. 공이 감독까지 한다는 소식에 박수를 쳤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박수를 쳤어요.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알았다면 내 귀한 박수를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에요.”

 브로콜리도 직원 1과 비슷한 관점으로 공의 은퇴를 해석하고 있었다. <화장실 전쟁>이 문제였고, 그 소설이 실린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가 저주였으며, 그걸 쓴 회인이 재앙을 몰고 왔다. 공이 기습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은퇴를 선언한 날 브로콜리는 휴학계를 제출했다. 놀란 브로콜리의 지도교수와 부모가 잡는 손을 뿌리치고 밤비행기로 제주도에 왔다. 그게 1년 전이었다. 

 “여기는 스텝을 안 뽑았나 봐요?”

 “제가 왔을 땐 임시 휴업 상태였어요.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렸기도 하고, 금방 문을 다시 열긴 했지만 스텝은 받지 않는다고 거절하더군요.” 

 그 뒤로 애월에 자리 잡은 브로콜리는 한 달에 한 번 공무원에 머물며 청소를 하거나 잔디를 깎았다. 이번엔 세 달 만에 방문이었다. 

 나는 무심한 투로 브로콜리에게 회인의 책을 찾아본 적 있는지 물었다. 무심함을 넘어 소리가 너무 작았는지 브로콜리는 내 질문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제가 입덕하고 처음 봤던 드라마가 <그럼에도 가족입니다>, 공이 5형제 막내아들로 나온 주말극이었어요. 매일 사고치는 아빠를 보고 ‘아빠는 언제 나이를 먹어?’ 말하던 그 표정, 걔가 커서 <청춘은 영원하다>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뿌듯해지고, 무슨 일이 생겨도 태연한 얼굴로 ‘결국엔 다 잘 될 거야’ 이 대사로 맥주 광고까지 찍었죠. 그 맥주 맛은 없었지만 얼마나 열심히 먹고 다녔는데. <재벌 2세는 불치병>의 하늘공원에서 비를 맞으며 여자주인공을 응시하는 마지막 장면은 최고였어요.” 

 공의 필모그래피를 줄줄 읊는 브로콜리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내 시선은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해가 지고 노을이 내리며 밤이 잔디밭에 발을 디딜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공의 뒷모습만 보고도 어떤 감정인지 다 보일 정도로 등으로도 연기하는 사람이니까, 목 사장이 앉아 있는 뒷모습에 브로콜리의 말이 겹쳤다. 어둑한 빛 아래 목 사장은 사람이라기보다 그림자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렇게 상대 배우들과 스캔들 한 번 없이 깨끗한 사람인데, 누가 오네요?”

 정말로 정면 정문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정문이라고 부르기엔 문이 아예 없는 쪽이지만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입구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어스름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어?”

 바깥의 목 사장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지금 막 등장한 그를, 위미리의 보티첼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목 사장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뭔가를 항의하러 온 것 같은 그 표정은 분노보다 투정에 가까워 보였다. 사장의 뒷모습에선 어떤 것도 읽히지 않았다.

 보티첼리의 눈이 이쪽으로 향하고 눈이 마주쳤다. 구겨진 표정이 순식간에 활짝 펴졌다. 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자 목 사장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저 분은 연예인이실까요?”

 얼룩진 물티슈를 들어 올리며 청결에 대해 말할 때와 같은 투로 브로콜리가 말했다. 

 “잘생겼다고 다 연예인 하는 건 아니겠죠.”

 “그건 그렇죠, 공 배우님이 세기의 미남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공 외모학개론이 본격적으로 나를 옭아매려는 것을 피해 재빨리 정원으로 나갔다. 커다란 백팩을 맨 보티첼리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름이 우연은 아니시겠죠?”

 “어쩌다 보니 다시 만났네요.”

 “아는 사이?” 목 사장이 우리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오늘 바다앞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쳤거든.” 

 나는 한눈에 그와 목 사장이 단순한 지인 이상의 어떤 끈으로 묶여 있음을 알아보았다. 두껍고 선명한 그 끈이 어떤 종류일지는 알기 어려웠다. 내 혼란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불쑥 자기소개를 했다.

 “오후엔 이름도 안 밝히고 헤어졌죠? 강해원이에요.”

 “김장원입니다.”

 “저녁은 먹었니?”

 “배고파 죽어. 안에 뭐가 좀 있나?”

 해원은 거침없이 앞장서서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를 지나 거실과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부엌으로 직행해 자기 집 냉장고처럼 안을 뒤졌다. 새빨간 빛깔의 백팩이 등껍질처럼 해원의 뒤를 지키고 있었다.

 “프라이탁이네요.”

 소리 없이 다가온 브로콜리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에 해원이 뒤돌아보았다. 

 “혹시 이 치킨 박스 주인이 누구죠?”

 나와 브로콜리 둘 다 고개를 흔들자 해원이 환하게 웃었다. 냉장고는 음식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먹다 남은 치킨, 피자, 검은 비닐봉지 속에서 숙성되어가는 회, 반 정도 남은 술과 음료수 병으로 어지러웠다. 해원은 백팩을 내려놓고 냉장고에 남은 음식들을 꺼내 접시에 옮겨 담았다. 

 각자 마실 한라산 소주와 막걸리를 챙기는 사이, 2L짜리 삼다수 병을 통째로 챙기며 나는 취기 없이 맑은 정신으로 자연스럽게 회인과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이야기를 꺼낼 분위기를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신중한 내 계획은 브로콜리의 급발진 발언에 산산조각이 났다. 평범하게 이어지던 대화 도중 갑자기 그는 회인의 책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소문도 추측도 다 걷어내고 책 그 자체만 보면 특별할 거 하나 없어요. 문체는 평범하고 소재도 특별할 것 없고, 제목이 좀 튀긴 하죠. 사실 일기도 소설도 백 프로 진실만으로 쓸 수 없잖아요?”

 내 옆자리에서 먹다 남은 한라산 소주병을 비워가며 브로콜리는 열변을 토했다. 맞은편에 앉은 해원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브로콜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목 사장은 멀찍이 떨어진 빈백에 기대어 머그잔에 막걸리를 따라 마시며 우리를 관찰했다.

 “사실 소설이 일기 쓰기보다 훨씬 어렵지 않나요.” 내가 말했다. 제목을 알게 된 순간부터 떠오른 의문이었다. 일기도 소설도 뭐든 쓴다는 행위 자체가 어렵지만 온전히 상상 속에서 지어내야 하는 소설보다 내게 있었던 일, 내가 한 생각을 옮겨 적은 일기가 좀 더 쓰기 쉽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난 일기 쓰기가 더 어려운 걸? 의외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글쓰기가 꽤 까다로워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

 목 사장의 나른한 목소리에 해원이 미소 지었다.

 “오늘만큼은 사장님 발언에 동의할게요. 저도 일기 쓰기가 더 어려워요. 소설은 거짓되게 솔직할 수 있으니까요.”

 브로콜리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다 좋아요, 다 좋아. 해석은 자유고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근데 왜 하필이면 공입니까? 왜 그 책 때문에 공이 은퇴해야만 하죠?”

 “왜 책 때문이라고 생각하시죠?” 해원이 질문하며 브로콜리가 마시던 소주병을 끌어당겼다. 브로콜리도 해원도 서로의 잔을 채워주지 않았다.

 “영화 때문이잖아요. <화장실 전쟁>, 그리고 계획했던 나머지 여섯 편의 영화들.” 

 브로콜리의 시선이 목 사장에게로 향했다.

 “사장님이죠? 배우님께 책 추천한 사람이.”

 “방송에 나오지 않나? 공이 손수 골랐어, 저 책장에서.”

 엄지손가락으로 뒤를 가리키며 사장은 말했다. 

 “그 책을 읽고 소개하는 장면은 분명히 연기였어요. 나는 알아봐요, 뭔가를 외워서 말할 때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짓는 특유의 눈 표정이 있어요. 내가 그 장면만 몇 번을 돌려봤는지 알아요?”

 “자기가 여기서 그 얘기 하는 건 몇 번째인지 알아?”

 “사장님이 답을 안 주시니까.”

 나는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을 마셨다. 브로콜리와 나의 관점이 일치할 줄은 몰랐지만, 저렇게 구체적인 증거가 뒷받침되는 추론일 줄도 몰랐지만, 답을 아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고 나는 옆에서 조용히 결과물만 수거하면 될 일이었다. 

 생수가 담긴 종이컵에 입을 댄 채 시선을 돌린 나는 해원과 눈이 마주쳤다. 

 해원은 줄곧 나를 보고 있었다. 미소를 띤 채로.

 들켰다. 

 시선이 맞닿은 순간 나는 깨달았다. 해원이 말없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아. 네가 무엇을 찾아 여기에 왔는지 내가 알아. 네가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알아.

 들켰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들켜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를 알아봐줘서 고마워, 나를 찾아줘서 고마워, 해원의 시선은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모든 걸 다 안다는 눈빛은 허세가 되기 쉽다. 내 전남편처럼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 아는 척, 세상사에 통달한 척하는 태도를 나는 자주 동정했다. 얼마나 힘들었어? 이제 나한테 다 말해, 내가 다 해결해 줄게. 나는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싶다. 이 사람 앞이라면. 

 해원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단숨에 소주잔을 비웠다. 잠시 말없이 대치중이던 브로콜리와 목 사장의 주의가 해원 쪽으로 집중되었다. 

 “본 것만으로 다 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요? 나는 내가 보여주기 나름인 걸.”

 “척 보면 척이죠.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비언어적 표현들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흘리고 다니는데요?” 

 “저는 어때요?”

 “무슨 말이죠?”

 “저는 그쪽이 오늘 처음 본 사람이니까,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해원의 기습에 브로콜리는 당황한 것 같았다. 소주병을 들었다가 빈 것을 보고 다시 내려놓았다. 

 “프라이탁 가방을 매고 오셨잖아요?”

 브로콜리는 가방을 해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고가의 리사이클 가방을 매고 평일에 제주도에 방문할 수 있다는 건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직종이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고 그 여유가 다소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인상을 중화시키는데 외모지적은 아니지만 다가서기 쉽진 않은 얼굴이시고, 나는 저렇게 말을 길게 하는 것도 능력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조금씩 흩어지는 집중력을 모아 보려 애썼다. 

 해원은 녹아버린 치즈처럼 한없이 늘어나는 브로콜리의 말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경청했다. 프라이탁 가방 이론이 머리 길이에 따른 거주지 맞추기까지 다다른 여정에 감탄하는 듯 했다. 뒤에서 목 사장은 박수까지 쳤다.

 “역시 자기는 인물이야.”

 “칭찬이라면 감사합니다. 비꼬는 말이어도 괜찮습니다. 제가 본 그대로 말했을 뿐이니까요. 제 해석이 본모습과 다르더라도, 저는 소설을 쓴 것이고 제가 뭐라고 쓰든 해원 씨는 해원 씨 아니겠습니까?”

 내가 뭐라 말하기 전에 해원이 잔을 들어 브로콜리를 향해 살짝 흔들었다. 

 “칭찬이라면 감사합니다.”

 “그 책을 긍정하고 싶진 않지만, 확실히 소설 쓰기가 더 쉬운 것처럼 느껴지네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소설적인 것이다, 이렇게 말했었죠.”

 “마틴 스콜세이지?”

 “회인.”

 “네?”

 “회인의 말이에요.”

 빈 막걸리 병이 창가를 향해 데굴데굴 굴러갔다. 불빛 하나 없는 바깥은 온통 어둠이었다. 환하게 불을 밝힌 거실 풍경이 고스란히 창에 거울처럼 반사되었다. 놀란 내 얼굴과 당황한 브로콜리의 곱슬곱슬한 머리와 처음으로 웃지 않는 표정의 목 사장이 해원을 바라보는 풍경. 그 속에서 해원은 미소를 잃지 않고 말했다.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아는 표정으로.

 “회인의 책. 그건 우리가 썼어요.”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의 내용 일부를 공개합니다     

책장 넘기는 소리 대신 사진 셔터 소리가 내 공간을 침범합니다.

책에 대한 예의를 갖추십시오. 

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당신의 지성이 높아질 일은 절대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하지만 네가 그럴 일은 없겠지.     


<인정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k의 인스타그램 멘트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이 집의 몽블랑 케이크는 맛있는 부분인 것입니다.

핑크뮬리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부분인 것입니다.

폐방수천으로 만들어진 리사이클 가방, 과연 지구를 인정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K가 자신의 일부를 인스타그램에 전시하면 사람들은 그 취향 한 조각을 받아먹는다. 미식가적 취미, 미적 감각, 환경을 생각하고 동물을 사랑하며 지적인 책 목록을 보유한, 100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k. 나 역시 k의 조각들을 열심히 주워 모아 몽블랑 케이크를 먹기 위해 지하철을 한 시간 넘게 타고 제주도 핑크뮬리로 유명한 카페를 방문하고 리사이클 가방을 구매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다. 

만날 때마다 스마트폰에 정신 팔린 내게 남자친구는 이별을 통보했고 그렇게 3년 간의 연애는 허무하게 끝났다. 나는 남자친구와 관련된 사진을 모조리 삭제하며 이별을 받아들였다.     

내가 k와 실제로 만나게 된 건 순수한 우연이었다.

그날은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카페의 한국 1호점이 오픈한 날이었다. 버스 첫 차를 타고 줄을 서서 선착순 300명만 구입이 가능한 텀블러를 샀다. 카페는 나처럼 한 손에 스마트폰, 다른 한 손에 텀블러를 든 사람들로 가득해 어느 각도로 찍어도 완벽한 인증샷 각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텀블러를 챙겨 카페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 아래 사진을 찍는다면 특별한 한 장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거기서 나는 k를 발견했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k는 공원 벤치에 다리를 꼰 채 무릎 위로 종이컵을 든 한 손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마치 점심시간에 급히 밥을 먹고 후식으로 제공되는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공원에서 해바라기하는 직장인 같았다. k의 얼굴은 텅 비어 있었다. 인스타그램 속 100만 팔로워를 명확히 응시하던 k의 또렷한 시선과 확실히 달랐다. 

나는 k를 한 번에 알아보았고 알아본 나 자신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 감정이 나를 움직여 k의 옆에 앉게 이끌었다.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k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k는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을 과하게 보정하지 않는 쪽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그대로의 눈부신 외모가 평일 오전 공원 가득한 햇빛을 여과 없이 반사하고 있었다. 희미한 떡볶이 냄새를 제외하면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눈앞에서 시청하는 기분이었다.

“국물 떡볶이 먹을래요?”

k는 보온병을 꺼내 내 텀블러에 떡볶이 국물을 덜어주었다.

“떡볶이 안 먹잖아요.”

“내가? 죽기 전까지 딱 하나의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난 무조건 떡볶이인데.”

k는 커피를 마시는 우아한 동작으로 종이컵을 들어 떡볶이 국물을 마셨다. 인스타그램 속 k는 한 번도 떡볶이 사진을 올린 적 없었다. 그 사실이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전 지금 당신에게 항의하러 왔어요.”

내 말에 k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나는 k의 왼쪽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이야기했다. 

“당신이 추천한 몽블랑 케이크는 너무 달고 느끼했어요. 핑크뮬리로 유명한 카페는 1인 1음료 주문인데 아메리카노 한 잔이 7천 원이었구요. 그날 같이 간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크게 싸웠어요. 당신이 자주 언급한 리사이클 가방은 아직까지도 비닐 냄새가 빠지질 않는데 비싸기는 왜 그렇게 비싸요?”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작은 산 모양의 몽블랑 케이크는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내 사진을 찍어주던 남자친구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쳐다볼 정도로 크게 화를 냈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안 보이게 어떻게 찍으라는 거야? 내가 인간 포토샵이냐? 카페를 배경으로 리사이클 가방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했다.

그때 찍은 사진은 아깝지만 아직까지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못했다. 

“당신은 당신의 선택에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니까.”

k는 종이컵에 떡볶이 국물을 덜었다. 손짓 하나까지 무심하면서 완벽했다. 

“밤 좋아해요?”

“별로예요.”

“몽블랑 케이크에 밤 들어가는 건 알고 있었어요?”

“글에 설명 안 하셨잖아요.”

“나는 알고 먹은 거니까. 떡볶이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밤이거든.”

k는 나를 바라보았다.

“핑크뮬리는 내가 사는 집 근처 공원에서 찍었던 건데. 그때 사귀던 애인이랑 첫키스 한 장소라서요. 사진 볼 때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거든.”

“.....”

“그 리사이클 가방은 나도 무겁고 해서 잘 안 쓰게 되긴 하더라. 아빠가 그 브랜드를 참 좋아했어요. 퇴근한 아빠보다 그 가방 냄새가 먼저 도착했어요. 냄새 맡을 때마다 아빠 생각이 나.”

k의 어조는 담담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왜 이 사람은 인스타그램 밖에서도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을 가졌는가. 난데없이 나타나 허락도 없이 옆에 앉아 항의한다니 책임지라니 떼를 쓰는 나 같은 사람을 대하는 k의 목소리는 내가 결코 따라 할 수 없는 일부분이었다. 

같은 사람이라도 k처럼 밀도 높은 인간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이 성글게 만들어진 미완성품 같은 인간이 존재한다. 

어설픈 나는 이 말만 간신히 꺼낼 수 있었다.

“죄송해요.”

“뭐가요?”

“함부로 당신을 판단한 것.”

“그건 미안할 부분이 아닌데.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나요. 보여진 것만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지금 내가 한 밤 이야기, 애인 이야기, 아빠 이야기가 진짜인지 그쪽이 어떻게 알아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k는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보여주기 나름인 걸.”     

K는 이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키가 작은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k의 전신이 나온 사진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사람의 얼굴이나 상체, 팔이나 다리 등 신체 일부만 볼 수 있었고 그 모든 조각이 합쳐진 실제 모습은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처럼 묘하게 비현실적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K의 계정은 2주 전 창문을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업로드가 멈춘 상태였다. 푸른 하늘 아래 흰 구름이 반 걸친 창문은 그림 액자 같기도 했다. 수백 개의 댓글들은 K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대부분 K와 직접 만나본 적 없었을 사람들.

비현실적인 현실의 인간이 공원 저 너머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배경으로 텀블러를 손에 들고 인증샷을 찍었다. 흰색 텀블러에 붉은 떡볶이 국물이 점점이 튄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발상의 전환, 텀블러에 국물 떡볶이를 담는 습관, 일상을 조금은 행복하게 만드는 부분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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