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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Oct 26. 2022

목천은 나무가 없다

해원의 이야기

목천木天은 나무가 없고 나는 부모가 없고, 물론 나무가 아예 없는 도시는 아니고 나도 알에서 태어난 건 아니고, 목천에 온 뒤로 해원은 습관적으로 중얼거렸다. 이름만 들으면 거대한 숲이 있을 것 같은 목천은 버젓한 산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중소도시다. 경기 남부 인구 백만에 유네스코 문화 유적지까지 보유한 대형 도시 옆구리에 낀 지방 같은 이곳이 유일하게 자랑할 만한 것은 목련이었다. 길 어디에나 목련나무가 있었고 특히 목천천 목련길이 가장 유명했다. 

 그곳에서 해원은 회인을 처음 만났다.

 하루하루 바다 밑바닥을 걷는 것처럼 지루하고 느릿한 삶이었다. 파도에 떠밀린 페트병 쓰레기처럼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이 친척에서 저 친척으로, 친척의 친척으로, 친척의 친척의 지인으로 떠밀리는 일에 익숙했다. 그렇게 목천에 왔고 목천에서 목련 다음으로 유명하다는 소 목수에게 입양되었다. 목천천과 시내 사이 한적한 도시의 틈새 속에 공방이 있고 공방 바로 옆에 살림집이 붙어 있었다. 밑이 터진 책가방 하나 달랑 맨 열 살의 해원이 학교에서 보육원으로 돌아온 어느 날 커다란 그림자가 흰머리를 휘날리며 해원을 바라보았다. 해원의 얼굴 크기만 한 손이 머리를 쓰다듬자 바니시 냄새가 훅 들어왔다. 

 흰 페인트를 끼얹은 듯한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고 톱밥과 페인트로 얼룩진 작업복을 피부처럼 입고 다니는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공방에서 보냈다. 해원이 온 뒤로도 그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식탁에 수저 한 벌이 더 올라오고 공방 입구에 해원 전용 의자가 생겼다. 해원은 학교에 다녀오면 공방에서 자투리 나무토막을 주워다 의자에 앉아 조각칼로 나무를 깎으며 시간을 보냈다. 숙제도 의자에서 했다. 무릎에 교과서를 올려놓고 문제를 푸는 해원을 본 소 목수는 의자에 딱 맞는 작은 테이블을 만들어 주었다. 먼지 때문에 에어컨이 없는 공방 내부는 후덥지근했지만 해원이 앉은 곳은 어디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몰라도 시원했다. 처마 아래 앉아 책이나 잡지를 보고 있으면 소 목수의 고객들이 찾아왔다가 기특하다며 주스나 간식을 주고 갔다. 방문객이 많은 날엔 해원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넌 누구니? 이름이 뭐니? 몇 학년이니? 여기서 뭐하니? 

 그때까지 해원이 질문에 답한 적은 없었다. 

 소 목수는 해원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목공 기술을 전수하지 않았다. 그는 해원을 그가 만든 책상이나 의자처럼 대했고 해원은 그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복잡한 법적 절차를 밟아가며 딸을 데리고 온 사람치고 크게 다정하거나 친절하지 않았다. 입양으로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소 목수는 자신의 일에 몰두했고 해원은 자신의 의자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해원을 맡았던 이들처럼 욕하거나 때리거나 굶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해원은 그에게서 나무의 침묵을 배웠다.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책걸상처럼 입을 다물었다. 몇몇 호기심 많은 이들이 다가왔다가 두터운 침묵에 움츠러들고 도망쳤다. 그렇게 발설되지 못한 이야기들은 혓바닥 아래 고여 끈끈하게 엉겼다. 혀가 무거워질수록 침묵은 벽이 되었고 담이 되었고 거대한 국경이 되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자란 고등학생 해원이 시멘트로 다져진 개천 둑길을 홀로 걷고 있었다. 입에선 말이 굳어가고 가슴에선 마음이 말라가던 날들. 학교를 무단 조퇴하고 나온 날이었다. 담임은 생리통이 심하다는 해원의 말을 무시했고 해원은 교실로 돌아가라는 말을 무시했다. 학교에서 공방까지 마을버스를 타면 금방이지만 그날은 무작정 걸었다. 학교를 숲처럼 둘러싼 아파트 단지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면 난데없는 장승 하나가 멀뚱히 서 있는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서 길게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목천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때만 해도 목천천은 장마 때나 4월 한 달 목련축제기간을 제외하면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냈다. 서울의 청계천을 따라 산책로를 만들고 아치형 다리를 세우는 등 애를 쓴 흔적들이 목천천의 비루함을 더욱 강조했다. 봄이 지나 꽃이 다 진 나무들은 푸른 잎사귀를 바짝 세운 채 땡볕 아래서 땀을 흘리고 질퍽한 개천 바닥은 쓰레기들과 함께 비린내를 풍겼다. 천변 산책로 양 옆으로 급조한 빌라들은 텅 빈 1층 상가 자리를 이가 다 빠진 입처럼 헤 벌리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어리석다는 생각과 함께 산책로를 걷던 해원의 발이 멈춰 섰다.

 개천 바닥을 누군가 걷고 있었다. 

 찐득거리는 진흙과 누군가 버린 페트병 따위가 뒤섞인 쓰레기 바닥을 그는 레드 카펫이라도 되는 듯 가볍게 걸었다. 두 팔을 날개처럼 양 옆으로 펼친 모습은 당장 날아올라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무언가를 그려내고 그게 무엇이든 이곳의 악취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사뿐사뿐 걷던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존재 자체로 시공간의 흐름을 바꿔버리는 사람이 있다. 세상의 채도를 한 단계 떨어뜨리고 오롯이 홀로 선명해지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예술가들이 전부 모여 회인을 애써 묘사한들, 인간의 빈곤한 도구들로는 그의 존재감을 망치기만 할 뿐이다. 훗날 해원이 회인과의 첫인상에 대해 쓴 표현들은 이 정도였다. 가볍게 흔들리는 그의 검은 머리카락과 멀리서도 날카롭게 그려지는 이목구비와 슬퍼 보이는 긴 목 아래로 넓게 펼쳐지는 어깨선과 입술의 미소, 그의 존재를 완성시키는 유일무이한 미소.

 그가 웃었다.

 심장의 야단법석을 자각하며 해원은 소리쳤다.

 “거기서 뭐해?”

 “천국을 걷는 중이지.”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한 해원은 둑 아래로 천천히 내려갔다. 운동화 바닥에 진흙이 엉겨 붙었다.

 “천국 냄새 한 번 지독하네.”

 가까이 다가간 그는 흰 티에 낡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커다란 두 눈이 잠시 해원의 교복을 바라보았고 해원이 선수를 쳤다.

 “넌 학교 안 가?”

 “땡땡인가 보네.” 그렇게 말한 그는 또 웃었다. 웃을 때마다 눈이 달처럼 휘었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아. 인간이 아니라서.”

 “그럴 거 같았어.”

 해원의 대답에 그는 놀란 것 같았다. 해원은 뻔뻔해지기로 했다.

 “천국을 걷는 존재라면 천사밖에 더 있겠어.”

 “어떻게 알았지?” 그는 해원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옆에 나란히 섰다. 악취는 이미 사라지고 어디선가 포근한 느낌의 향기가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함께 개천 바닥을 걸었다. 

 “내가 천사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비현실적이니까.” 자기 입으로 본인이 천사라고 말하는 천연덕스러움조차 자연스럽게 설득되는 외모 앞에서 해원의 굳어 있던 입은 저절로 열렸다. 정오의 태양 아래 돌멩이 하나까지 세상 모든 사물은 그림자를 잃었고 색을 잃었고 현실감을 잃었다. 하얗게 타오르는 개천 바닥에서 오직 그만이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시는 그를 만나기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왔고 해원은 왜인지 모르게 슬펐고 그 슬픔이 혀 밑에 봉인된 언어를 끄집어냈다. 

 “널 본 순간 이게 꿈이라는 걸 알아 버렸으니까.”

 “슬퍼?”

 “곧 잠에서 깨야만 할 순간이 슬퍼.”

 “그럼 계속 꿔.”

 해원이 돌아보자 그는 해원을 보며 웃고 있었다. 조금 전의 웃음이 사회적인 의미의 인사였다면 지금의 웃음은 개인적인 호감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가 웃으면 해원은 어쩔 줄을 몰랐고 그는 첫 만남부터 그렇게 자주 웃어 주었다.

 “네가 나오는 꿈이라면 영원히 꿔도 될 것 같아.”

 “영광이야.”

 그렇게 해원은 회인과 만났다. 아무도 없는 정오의 목천천에서. 단 둘만의 비밀스러운 산책이라는 환상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그날 바로 알게 되었지만 해원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공방 입구 의자에 앉아 운동화 바닥을 닦고 있던 해원에게 소 목수가 말을 걸었다. 

 “오늘, 누구, 만났어.”

 물음표를 마침표처럼 쓰며 단어와 단어 사이를 프레스처럼 누르는 것이 소 목수의 버릇이었다.

 “친구.”

 “친구 누구.”

 “나한테 궁금한 게 다 생겼네?”

 진흙으로 더러워진 걸레를 한쪽으로 치우며 해원은 소 목수를 바라보았고 그대로 굳었다. 해원이 소 목수와 함께한 5년 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여긴 눈이, 많다.”

 표정에 숨겨진 수많은 말들 중 그 한 마디만 꺼내놓고 소 목수는 공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경고인지 선언인지 애매한 소 목수의 말에도 해원은 매일 목천천을 드나들었다. 점심시간에 외출증을 얻어내 나오고 수업을 빼먹고 등교와 하교를 모두 개천을 통해 왕래했다. 무단결과와 조퇴가 지나치게 쌓여 소 목수까지 학교로 호출당한 뒤, 회인은 자신이 사는 곳을 알려 주었다. 목천천을 따라 걷다 왼쪽으로 빠져나와 반쯤 짓다 만 건물 옆으로 회인과 해원의 나이를 합친 것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연립 주택이 회인의 집이었다. 빛바랜 붉은 벽돌 외벽에 ‘궁전빌라’ 글자가 이응 받침을 잃어버린 채 위태롭게 붙어 있었다. 

 회인이 사는 402호를 제외한 나머지 집들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았다. 녹슨 현관문과 한 번도 청소한 적 없는 것 같은 계단이 오싹한 공기를 내뿜었다. 회인의 집 안도 보통의 집과 거리가 멀어 보였다. 거실 하나에 방 하나, 부엌과 화장실이 있는 집 안엔 매트리스 하나와 옷장으로 쓰고 있다는 캐리어 하나, 뜬금없이 거대한 책상 하나가 가구의 전부였다. 부엌엔 고시원이나 오래된 모텔 방에 쓰이는 미니 냉장고와 냄비 하나가 당장이라도 이 괴괴한 집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듯이 놓여 있었다. 

 작은 태풍이라도 온 것 같은 소리를 내지르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주며 회인은 웃었다. 

 “이상하지?”

 해원은 할 말을 찾아 거실을 온통 차지한 책상과 그 위에 쌓인 책들의 제목을 헤아렸다. 두꺼운 책등의 제목부터 눈에 들어왔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같은 책들. 해원이 밀란 쿤데라의 책을 집어 들자 회인은 그 책을 읽었냐고 물었다. 

 “처음 들어보는 제목인데...”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야. 기쁘게 빌려줄게.”

 그때까지 해원은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고 싫은 감정을 떠나 관심이 없었다. 해원이 가진 문제만으로 머릿속은 어수선했고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을 여유로움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소 목수의 집에도 책은 많지 않았다. 소 목수는 해원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번도 한 적 없었다. 그런 그가 만든 책상은 ‘서울대 가는 책상’으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소 목수의 책상에 앉아 공부해 서울대 합격한 최초의 누군가가 입소문을 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책상은 예약해도 1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해원이 책을 살펴보는 동안 회인은 책상을 마주보는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벽에 안긴 것처럼 편안한 표정이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하나 봐.”

 해원의 말에 그가 눈을 뜨고 나긋하게 말했다.

 “방의 아이들은 생각이 많아 책으로 눌러줘야 해. 누름돌처럼.”

 “방?”

 해원의 물음에 회인은 손짓했다. 자기처럼 벽에 귀를 대고 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했다. 자장가처럼 다정하고 은하수처럼 무한하며 바다처럼 깊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고.

 오른쪽 귀를 벽에 바짝 붙인 자세로 해원은 회인을 바라보았다. 

 “바다보다 바람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눈을 감고 집중해 봐.”

 눈꺼풀이 창을 닫고 긴장한 숨소리와 평온한 숨소리가 함께 물결처럼 밀려들고 물러나며 박자를 이루고 서서히 심장 박동이 동화되어 살짝 열린 창밖으로 불어드는 오후의 바람이 부드럽게 목덜미를 스치며 어떤 소리가 들렸다. 바람 소리? 그것보다 무게 있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종이가 바스락대는? 개미가 기어가는? 희미한 소곤거림이 무한의 바다를 헤엄치다 해원의 귀를 발견하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깜짝 놀라 눈을 뜬 해원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회인의 얼굴에 더 놀랐다.

 “들려?”

 긴 속눈썹이 눈동자 위로 그려내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너는 나와 같은 존재구나.”

 그의 말이 해원의 입술에 닿았다. 해원은 입을 벌려 회인의 입에서 나온 말을 삼켰다. 혀 아래 굳어 있던 말들이 녹아내리고 가슴 아래 말라가던 마음이 싹을 틔워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회인이 곧 숲이었다. 이야기의 숲, 거실의 책상은 책과 함께 이야기를 가득 품고 있었다. 회인은 책상에 달린 네 개의 서랍 중 가장 깊은 서랍을 열어 지금까지 쓴 이야기를 해원에게 보여 주었다. 회인이 말한 ‘방의 아이들’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너의 아이>     


 나를 품어 기른 것은 방(房)이다. 원형의 자궁이 아닌 육각면체의 방. 물론 인간의 형태를 갖춰 나를 낳은 생물학적 어머니는 존재한다. 생물학적 어머니는 나를 임신한 채로 이 방에, 내 진짜 어머니의 품 안으로 숨어들었다. 

 방 두 칸에 화장실과 부엌이 갖춰진 이 이 빌라는 생물학적 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어머니의 어머니, 내게 생물학적 외할머니가 되는 여자는 집이 너무 낡고 더럽다며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 팔자라느니 박복하다느니 발음도 거친 단어들을 남발했다. 나는 뱃속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인간 여자가 하는 말을 주워 담았다. 미친년이란 단어의 뾰족함에 깜짝 놀란 나는 몸부림쳤고 나를 감싼 양수가 비명 소리로 인해 요동쳤다.

 생물학적 어머니, 줄여서 생어머니가 산후조리원에 갈 돈도 없을 만큼 궁핍한 상황이라는 사실이 진짜 어머니, 방어머니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갓 태어난 아기의 부드러운 피부와 좁은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 말랑말랑한 머리뼈, 양수에 퉁퉁 불어 아직 단단한 방어체계를 갖추지 못한 작은 몸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방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속싸개에 감싸인 채 앙앙 우는 나를 향해 자신의 씨앗을 뿌렸다.      

 한 가지 상식, 꽃이 번식을 위해 꽃가루를 뿌리듯 방은 먼지를 가장한 방의 씨앗을 공기 중에 퍼뜨린다. 연륜 있는 방들은 노련하게 제 씨앗을 방사하지만, 갓 지어진 신참내기들은 독성이 가시지 않은 씨앗을 지나치게 퍼뜨리는 실수를 한다. 그 씨앗들이 제대로 안착되지 못해 아기들 피부에 붉은 반점을 남기고 가려움을 유발하는 증상이 아토피다. 나는 태열 한 번 오르지 않고 알레르기 반응 하나 없이 순결한 피부를 유지했다. 이미 나의 모공과 호흡기를 통해 방어머니의 씨앗이 들어와 폐와 심장, 뇌와 같은 주요 장기에 안정적으로 융합되었기 때문이다. 

 생어머니는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방 청소에도 관심이 없었다. 내가 배고프다고 울면 젖을 물리고 똥오줌을 싸면 기저귀를 갈아준 뒤 내 옆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생어머니 역시 방의 아이들 출신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 옆에서 허공에 가득한 방어머니의 씨앗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방의 일부를 향해 손을 뻗어 움켜쥐려 애쓰며 웃었다. 그 빛은 나의 어머니가 보내는 소리 없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모유처럼 듬뿍 받아 마시며 나는 한 명의 자랑스러운 방의 아이로 컸다.     

 방이란 벽처럼 단단하며 천장처럼 침묵할 줄 알고 바닥과 같이 진득하게 뿌리내릴 줄 아는 존재다. 나는 당당한 방의 후손으로 방에 가만히 누워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그건 침묵으로 이루어진 방의 대화였다. 인간의 언어로는 번역 불가능한. 

 방과의 대화에 몰두하는 나를 생어머니는 얌전하다 했고 외할머니는 저능아라 평했다. 외할머니만 아니었어도 유치원이니 학교니 방 밖으로 끌려 나갈 일은 없었을 텐데. 

 다섯 살이 된 나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는 외할머니의 말에 나는 소리를 질렀다.

 싫어, 안 나가!

 내 비명소리에 방어머니는 급히 형광등 불을 껐다. 나의 고통을 달래 주려는 어머니만의 방식이었다. 외할머니는 이것 보라며, 집에 남자가 없으니 불이 나간다며 생어머니를 몰아붙이고 방어머니를 모욕했다. 매일 아침마다 몸부림치며 난동을 피우는 나의 버릇없음 역시 ‘아비 없는 자식’이어서 그렇다고 단정을 지었다. 


 나는 아버지가 필요 없어, 완벽한 어머니를 이미 갖고 있는데 왜 아버지가 필요하지?     

 아빠 같은 건 필요 없다는 내 말에 외할머니는 내 뺨을 때렸다. 

 짐승 같은 새끼 하나에 내 딸이 이렇게-

 빌라 앞 빙판이 된 오르막길을 걷다 넘어지신 뒤 영영 일어나시지 못하게 될 때까지 나의 외할머니는 나와 나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싸잡아서 짐승 새끼라 명명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외할머니가 불쌍했다. 세상의 중심이 인간, 그것도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외할머니의 편협한 세계관을 속으로 비웃었다.      

 아버지 같은 불완전한 생명에 집착하다니, 방어머니같은 완전한 무생물이야말로 영원한 존재인데.     

 나는 외할머니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인간들을 비웃었다. 진짜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인간들을 동정했다. 억지로 끌려간 학교에서 나는 교실과 대화를 시도했다. 교실도 어엿한 방의 하나지만 그 안에 인간이 지나치게 많았다. 나는 주눅이 든 교실을 달래며 어젯밤 어머니의 품속에서 꾼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생들은 교실과 대화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고, 손바닥을 때리고, 뒤로 가서 벽을 보고 서 있게 했다. 나는 몇 시간이고 벽을 향해 침묵의 대화를 주도할 수 있었다. 같은 반 아이들은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나를 없는 존재 취급했다. 선생들도 한결같은 내 모습에 하나 둘 나를 포기했다.  

 단 한 명, 나를 둘러싼 벽을 뚫고 대화를 시도한 선생이 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빗질이란 걸 해 본 적 없을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흔들며 과학을 가르치던 선생으로 별명이 B고 아인슈타인이었다. 그는 세상일에 관심 없다는 한결같은 표정과 말투로 수업을 했는데 이상하게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수업 중에 그는 우주에 대해 설명하며 칠판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아직까지 우주의 모양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전통적으로 묘사한 우주란 원의 형태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에 반박했다.

 우주는 육면체 모양입니다.

 반 아이들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자신과 이질적인 존재를 바라보는 경계와 혐오의 눈빛이 내게 쏟아졌다. 나는 벽을 치고 진리를 설파했다.     

 우리를 낳고 기른 존재는 원이 아닌 사각형입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따라오라 했다. 나는 진리를 발설한 대가로 가해질 억압과 박해를 각오하고 교무실로 향했다. 나를 옆에 앉힌 그는 자기 머리카락만큼이나 혼란스러운 책상에서 간신히 연필 한 자루와 종이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반성문 쓰면 됩니까?

 잘못한 게 없는데 뭘 반성해.

 그는 평소와 같은 말투로 내게 말했다.

 너 하고 싶은 말 여기에 다 써.

 그때 아인슈타인 옆에서 종례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썼던 글이 지금 이 글의 베타 버전이다. 그는 내가 글을 완성할 때까지 기다려주었고 내 글에 대해 아무 평도 덧붙이지 않았다. 오늘처럼 답답할 때면 자길 찾아오라는 말만 했다. 

 와서 뭐 하는 데요?

 일단 와 봐.

 일 년 뒤 음주운전 차에 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나의 이야기에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고등학교 졸업을 포기했을 것이다. 졸업장이 든 가방을 메고 나는 그의 장례식장에 갔다. 영안실을 향해 말을 걸었다.

 어머니가 집을 떠났습니다. 생물학적 어머니가요.

 영안실은 침묵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외할머니도 선생님도 모두 저를 떠났어요.

 인간은 아무도 내 말에 답하지 않았다.

 제게 남은 건 진짜 어머니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의 방, 나의 어머니, 글을 쓰다 허리가 아프면 바닥에 누워 벽지에 새겨진 무늬를 헤아린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어머니의 일부를 흡수한다. 이미 전기와 가스는 끊겼고 수도는 아직 나오지만 곧 끊기겠지.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이 빌라를 포함한 동네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고 시위를 하고 유리창이 깨지고 몸집이 큰 인간 남자들이 찾아오고 양복을 입은 인간들이 찾아오고 많은 사람들이 밀려왔다 빠져나갔다. 나를 때리고 협박하는 건 상관없지만 나의 어머니가 사라질 예정이라는 사실이 나를 몹시 슬프게 한다.      

 방어머니는 생어머니와 다르게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나 역시 방어머니를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다. 나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나의 우주, 나는 너의 영원한 아이로다.  




 회인의 이야기는 이런 식이었다. 그가 만든 주인공은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고 눈속임을 진리로 믿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관망하며 웃는 천사다. 우주에서 우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천사들은 예언 대신 이야기를 가졌다.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갈 수 없는 곳을 가며 느끼는 걸 허락받지 못한 감각들을 만끽하는 존재들이다. 

 해원은 회인을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친숙해졌다. 이 세계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면 다른 세계를 만들면 된다.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다면 다른 나를 창조하면 된다.

 회인과 해원은 회인과 해원을 만들었다.

 회인을 만난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목천을 떠나게 되기까지 3년의 시간이 해원의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으로 빛나던 때였다. 4월 목천목련축제 한 달을 제외한 나머지 날들의 목천천은 둘만의 공간이 되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물 없는 개천 바닥을 걸으며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이야기했다. 바닥에 떨어진 새 깃털을 주워든 순간도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이건 천사의 깃털이야.

 천사의 날개는 보통 눈처럼 희고 새벽과 같이 빛나.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어. 여덟 겹의 날개는 온통 순결한 흰색으로 무장했는데 그 속에 색이 다른 깃털이 숨어 있어. 천사의 검은 깃털은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자에겐 다시없을 행운을 가져다 줘. 

 하지만 그 깃털을 의도적으로 욕망하게 되면 지옥과 같은 불운을 몰고 오지.

 숲 속의 외딴 성에 혼자 사는 그는 천사의 황금 깃털을 간절히 원했어. 그는 아이를 너무나 갖고 싶어 했는데 병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거든. 그는 밤에만 열리는 비밀 시장에서 거액의 돈을 주고 황금 깃털을 샀어. 상인은 천사의 깃털이 불러들일 저주에 대해 설명했고 그는 개의치 않았지. 그는 아이를 가질 수만 있다면 지옥 밑바닥에라도 다녀올 수 있었거든.

 정말로 그는 열 달 뒤에 천사처럼 생긴 아이를 낳았어. 그리고 성 바깥의 도시에 여자 혼자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지. 저주는 이미 시작되었고...

 “무슨 저주가 퍼졌을까?”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 버렸다. 회인과 만나지 않는 나머지 시간엔 공방의 자기 자리에 앉아 회인이 빌려 준 책을 읽었다. 노트에 오늘 하루 만들었던 이야기를 받아 적었다. 해원의 성적은 보통이었고 회인을 만난 뒤 국어를 제외한 나머지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또다시 담임교사가 해원을 호출했고 해원은 상담실에서 담임의 말을 흘려들어가며 천사의 저주로 무엇이 있을지 골똘히 생각했다. 해원의 멍한 눈을 본 담임은 대학 입시에 대한 설명을 멈추고 노트북을 소리 나게 덮었다.

 “네가 누구랑 붙어 다니는 지 안다.”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는 저주는 어떨까, 주인공의 아이가 조금씩 사라지는.

 “걔가 왜 학교에 다니지 않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학교만이 아니라 병원도 마음대로 못 가. 자기 명의로 된 계좌 하나 휴대폰 하나 가질 수 없는 애야.”

 아이의 발가락과 손가락부터 시작된 소멸을 발견한 주인공의 절규는 아무도 들지 못한다.

 “너보다 목수님이 걱정돼서 그래. 나도 목수님도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어. 몇 년 새 도시의 부피가 커지긴 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지내는 이 바닥에서 걔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걔랑 다니면 너 뿐만이 아니라 목수님까지 망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해.”

 아무도...

 “출석일수는 채워라. 임신 조심하고. 걔는 내가 알기로 걱정할 건 없지만.”

 어느 날은 목천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라며 스스로를 소개하는 변호사가 공방으로 찾아왔다. 소 목수는 잠시 외출 중이었고 이를 알리는 해원에게 변호사는 바로 너를 찾아왔다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해원 양, 우리 시에서 가장 유명하신 분이 누구실까요? 세 개의 지역구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목천 동구 국회의원이신 목 의원님, 해원 양도 아는 분이죠? 그분이 해원 양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오셔서, 아무튼 졸업식 날이면 아무리 바쁘셔도 꼭 참석하시는 다정한 분이시지 않겠습니까? 흠결 없는 그분이 오래 전에 말도 안 되는 소문에 약간 휘말리셨는데, 악의적인 소문이 다 그렇듯이 증거 하나 없이 주장만 있으니 법적 효력이 의심스러운, 아무튼 대선 후보로까지 언급되는 이에게 혼외자식이 있다는 소문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해원 양도 이해가 가죠? 자기 자식이 아닌데 왜 출생신고를 해 달라는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지 말이 안 된다는 거지, 말이.” 이런 식으로 변호사는 한 시간 넘게 해원이 왜 회인과 가까이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평판’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한 뒤 흡족한 얼굴로 가 버렸다. 

 마지막으로 회장이 해원을 찾아왔다. 

 회장은 소 목수를 비롯해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과 장인들을 매니지먼트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 해원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회장이라 불러 달라고 했다. 사장보다는 회장이 뭔가 있어 보인다며 깔깔 웃는 회장을 해원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한 달에 두어 번씩 공방에 회장이 오면 소 목수는 마감이 코앞인 작업도 바로 내려놓고 회장이 타고 온 BMW를 타고 사라졌다. 가끔 해원까지 셋이 교외로 나갈 때도 있었다. 함박스테이크를 칼로 짓이기며 해원은 회장과 소 목수가 주고받는 눈빛을 훔쳐보았다. 해원 앞에서 그들은 작업 스케줄이나 전시 일정 같은 공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았다. 대화하는 그들을 보며 해원은 잠시나마 친구가 있었을 때 학교에서 쪽지를 주고받던 기억을 떠올렸다. 복도에서 눈도 안 마주치고 스쳐지나가면서 손에서 손으로 빠르게 비밀 쪽지를 교환하는 기술은 짜릿한 맛이 있었다. 해원은 회장과 소 목수가 해원 모르게 주고받는 쪽지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아차렸고 본능적으로 모르는 척 했다.

 회장이 찾아온 날 역시 소 목수는 서울로 출장 중이었다.

 “소 여사는 안 계시는데요.” 해원은 소 목수를 여사라고 불렀다. 

 “당연히 나도 알지. 나는 너를 보러 온 거야.”

 회장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해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해원은 순순히 조수석에 올라탔다. 목천 교외의 카페를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해원은 선수를 쳤다.

 “무슨 말 하러 왔는지 알아요.”

 슬쩍 옆 눈으로 회장의 표정을 확인하며 해원은 계속했다.

 “그 애 얘기 하려고 온 거잖아요.”

 “그 애가 누굴까?”

 시치미 떼는 회장의 느긋한 말투가 해원의 반항심을 자극했다. 

 “담임도 그렇고 자기가 자기 스스로 유명하다는 변호사도 그렇고 나보고 그 애와 친하게 지내지 말래요. 그렇게 말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변호할 수 있죠?”

 “그 사람은 목천에서 가장 오래 개업한 사람인데 재판 중에 판사까지 졸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유명하게 만든 거지. 뒤지게 말 많지?” 깔깔거리며 말하는 회장의 ‘뒤지게’라는 단어에 깜짝 놀란 해원은 고개를 돌려 회장을 바라보았다. 

 “그 빌라 소유주가 우리 회사야.”

 “네?”

 “내가 관리하는 사람이 우리 소영이 말고도 엄청나게 많지. 스트릿 댄서로 활동 중인 아티스트,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배우, 베스트셀러 세 권을 낸 에세이스트, 예능 PD, 카페 운영자, 내가 키워보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직업 불문하고 컨텍해서 매니지먼트하는 게 내 공적인 일이야. 그리고 사적으로는...”

 교외의 카페는 호수 옆에 유리로 된 성처럼 거대한 공간이었다. 어느 자리에 앉아 있든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는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해원은 회장과 세 시간 넘게 머물렀고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블루베리 쉐이크, 아이리쉬 커피, 맥주, 케이크와 스콘을 끊기지 않게 주문해 가며 먹었다. 해원은 쉬지 않고 먹고 마셨다. 입에 뭐라도 넣어야 지금 듣는 이야기들과 함께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천천에 목련이 만개한 날 궁전빌라 402호에 살게 된 여자와 여자의 뱃속에 있던 아이에 대해, 구급차가 피범벅이 된 옷차림의 여자를 데리고 나갈 때 목천에 퍼진 은밀한 소문에 대해, 목천의 국회의원 사무실에 배달된 택배와 그 안에 들어 있던 얼음 속 손가락에 대해, 이 모든 일의 뒤처리를 담당한 회장의 위치에 대해. 그는 바쁜 오빠를 대신하여 오빠와 따로 산 지 오래 된 새언니가 낳은 아이와 낳지 않은 아이들을 돌보고 관리했다. 

 그날 회장은 해원에게 회인을 만나지 말라거나 이상한 아이라는 말 따위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회인이 어떻게 태어나 지금까지 궁전빌라에서 삶을 부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연대기를 전달했을 뿐이었다. 그건 회인의 노트 바깥에 실존하는 역사였고, 회인을 만들어 낸 뒤 외면한 세계의 부조리였다. 태어났으나 존재하지 않는 아이는 해원의 담임 말대로 학교도 병원도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는 법적 투명인간이었다.

 그래도 넌 출생신고는 내가 했다.

 슈퍼에서 과자 하나만 사 달라는 다섯 살 해원의 애원에 할머니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 결혼식도 겁도 없이 애만 낳아서 수면제 먹고 죽어버린 너의 부모를 대신해서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한 것만으로도 너는 내게 더 이상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못 박으며 해원의 손을 뿌리쳤다. 해원 앞에서 멍청한 자신의 아들과 내 아들을 꼬여낸 죽일 년 욕만 하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해원을 맡은 모두가 해원의 부모를 증오했다. 먼 친척 중 한 명은 해원이 사실은 화장실에서 태어났다고, 부모가 돈이 없어 병원도 가지 못하고 똥 싸듯이 너를 낳았다고 비아냥대며 손으로 해원의 머리를 툭툭 쳤다. 똥과 다름없는 너를 거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과거를 바꿀 순 없다. 과거를 만들 수는 있다. 회인은 방 모양의 자궁을 상상했고 거기서 특별한 방의 아이가 되었다. 해원은 천사의 검은 깃털을 주워 아이를 가지게 된 엄마를 상상했고 천사의 후손이 되었다. 우리의 출생이 특별했기에 평범한 인간들은 우리를 질투했다. 해원의 노트 위에서 해원을 함부로 만지던 친척들은 손발이 잘려 땅바닥을 굴러다녔고 회인을 손가락질하던 이들은 뒷담할 대상을 찾아다니며 영원한 허기로 자신의 몸을 먹어치운 에리직톤과 같이 스스로를 뒷담하며 광기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3년 간 빠르게 불어나 회인의 책상 서랍들을 가득 채웠다. 

 무한한 이야기 속에서 해원은 회인의 진실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회장과의 단독 면담 이후로도 해원은 계속해서 회인을 찾아갔다. 회인의 부모가 누구고 궁전빌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진실하다는 이유만으로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들은 네모난 방 모양의 우주 속에서 완전했다. 

 회인의 책상 위에서, 거실 바닥에서, 매트리스에서, 부엌 싱크대 앞에서, 목천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창문 앞에서 그들은 쉼 없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네모난 우주 속 방 모양의 자궁 내부는 창조적인 에너지로 끓어올랐다. 회인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부드러웠으며 충분한 크기로 해원의 내부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해원은 최선을 다해 새로운 이야기로 회인을 안았고 그는 미소와 함께 해원을 받아들였다.

 “천사의 검은 깃털이 가진 저주가 무엇인지 깨달았어.”

 그날의 이야기 장소는 책상 아래였다. 어둡고 좁은 선반 아래 몸을 웅크린 자세로 빈틈없이 껴안은 둘은 책상 바깥에 드리워진 오후의 빛을 바라보며 끊어진 이야기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태어난 아기가 조금씩 사라지는 저주라고 생각했는데...”

 “눈으로 만들어진 사람처럼.”

 “사실 그 아이는 다른 우주에서 태어난 또 다른 그 자신이었어.”

 “천사의 깃털처럼 무한한?”

 “무한하게 늘어선 방들이 있는 거지, 홍콩의 아파트 같은 수백 수천 개의 방이 모여 있는 우주. 그 방 하나하나가 제각기 다른 우주들이고.”

 회인이 해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방들이 뿌리를 내린 곳은 거대한 바다야. 아주 깊고 투명하고 한 모금만 그 바닷물을 마시면 모든 저주에서 해방되는 태초의 바다.”

 회인은 태어나서 한 번도 목천시를 떠난 적이 없었다. 궁전빌라와 목천천 주변을 왕복하며 지금까지 살아 왔다. 죽기 전에 딱 한 곳만 갈 수 있다면 회인은 바다를, 바다가 둘러싼 섬 제주도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바다는 동해도 서해도 남해도 어디로든 걸어가면 있어.”

 “섬에 가고 싶어.”

 “섬도 제주도 말고 수많은 섬이...”

 해원은 문득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회인의 제주도는 실존하는 섬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곳은 천사의 깃털처럼, 방 모양의 우주처럼 회인의 내부에서 창조된 이상향이었다. 유토피아, 율도국, 이어도와 같이 빛과 구름으로 빚어진 세계. 

 “가자.”

 “어떻게?”

 “배 타고 가면 되지.” 해원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해원이 졸업한 뒤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기차를 타고 목포에 가서 제주행 배를 타고 바다가 잘 보이는 집을 찾아 연세로 빌리면 된다. 소 목수의 고객 중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어 해원에게 놀러오라며 제주도 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제주도에 오는 목적이 신혼여행과 수학여행이 대부분이었고 개인 여행자는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고객은 금능 바다를 액자처럼 담은 거실 뷰를 자랑하며 특히 해질녘에 붉게 물든 바다 풍경을 공들여 묘사했다. 제주에 오래 머물고 싶다면 연 단위로 세를 빌릴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거기서 글을 쓰고 책을 읽다 지치면 바로 바다에 뛰어드는 거야. 금능 해수욕장은 바다가 얕아서 수영하기 좋대. 물놀이하다 모래사장에 드러누워 컵라면 하나씩 먹고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때 세운 계획은 둘만의 붉은 바다 속으로 헤엄쳐 돌아오지 않았다. 궁전빌라도, 402호의 거대한 책상도, 책상 서랍 속 원고들도 모두 사라졌다. 이제 목천천은 1년 365일 맑은 물이 흐르고 텅 비어있던 상가들은 카페거리가 되었다. 궁전빌라를 비롯한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철거되고 영어로 된 이름을 단 아파트들이 새하얀 피부를 자랑하며 목련과 함께 피어났다. 물이 없는 하천을 산책하던 이름 없는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도시를 채웠다. 목천시의 새로운 모토는 목련의 꽃말을 딴 ‘고귀함’이었다. 고고하고 귀한 도시 목천.      

 해원이 마지막으로 목천을 방문했을 때 공방엔 해원의 의자만 남아 있었다. 곡선으로만 이루어진 원목의자는 해원의 몸에 딱 맞게 만들어져 앉으면 커다란 구름에 안기는 기분이었다. 구름에 안겨 해원은 텅 빈 공방을 둘러보았고 회장이 네가 의자에 앉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공방 안으로 들어왔다.

 회장의 얼굴은 오일을 바르지 않은 목재처럼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 목부터 발목까지 가리는 검은 롱 원피스는 흰색 꽃이 수놓아진 것으로 회장의 움직임에 맞춰 하늘거렸다. 

 “오랜만이네?” 

 “일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공적인 일은 끝났지.” 

 해원은 지금의 공방 자리에 소 목수 기념관을 짓는 일에 동의했다. 회장은 해원을 대신해 복잡한 법적인 일들을 처리해 주었다. 해원이 소 목수의 정당한 상속자임을 확인받는 과정에서 일어난 각종 잡음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다시는 목천에 발도 들이지 않겠다는 해원에게 회장은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찾아와 달라고 부탁했다. 

 “의자 하나는 더 남겨 놓을 걸 그랬나? 앉을 데가 없네.”

 “이건 왜 남겨놨어요?”

 “오늘 가져가라고. 용달 바로 올 거야.”

 “의자 때문에 부른 건 아니죠?”

 회장은 씩 웃었다. 조명이 꺼진 공방 내부는 어둑했고 회장의 치마폭에 피어난 흰 꽃이 독보적으로 희게 도드라졌다. 해원은 장례식장에서 저 원피스를 입고 조문객을 맞이하던 회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해원은 회장의 마음을 모른 척 외면했다. 이미 자신만의 슬픔이 수용 가능 영역을 넘겨 어디든 터뜨릴 곳만 찾아 헤매고 있었다. 

 회장은 해원을 바라보았다. 해원은 회장을 바라보았다. 

 “사실 나, 소영이가 너 데리고 온다는 거 반대했다?”

 회장은 손에 든 종이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해원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장례식장은 소 목수의 법적 남편에 대한 무수한 소문으로 소란스러웠다. 몇몇은 대놓고 해원에게 물었다. 너는 네 양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니? 해원은 소 목수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굳건한 침묵. 남편이란 게 장례식장에도 코 끝 하나 비치지 않는다며 뒷말하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해원은 소 목수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는 인간으로 태어난 침묵이었고 해원은 침묵에 익숙했다. 오래 전 서랍장에서 소 목수와 처음 보는 남자가 나란히 찍은 사진을 발견했을 때도, 장례식장에 사진 속 그 남자가 찾아왔을 때도 해원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회인을 잃은 뒤 해원의 세상에서 물음표가 사라졌다. 더 이상 바닥에 떨어진 새의 깃털이 궁금하지 않고 방의 목소리 따위는 무의미했고 어떤 것도 이야기가 될 수 없었다. 무너진 궁전빌라 앞에서 해원은 이야기를 잃어버렸다.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아요.”

 “그치? 이런 시시콜콜한 과거사는 재미없지. 이것만 기억해 둬. 네가 온 뒤로 소영이는 조금 더 오래 존재할 수 있었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런 일까지 해줄 수 있지.”

 회장은 발로 바닥에 둔 종이가방을 밀었다. 종이가방 안은 노트들로 묵직했다. 

 회인과 해원의 원고들이었다.

 깜짝 놀란 해원이 고개를 들자 회장이 어둠 속에서 웃고 있었다.

 “참고로, 이건 누군가를 대신해서 전달하는 거다?”

 “이걸 어떻게...?”

 “너는 나랑 같은 과야.”

 어둠은 점점 더 진해지고 해원도 회장도 누구도 불을 켜지 않았다.

 “처음 널 만났을 때부터 알아봤지. 단 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거대한 비석을 세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회장의 슬픔을 모른 척 하면서도 언제 그가 쓰러질지, 마음속 둑을 언제 어떻게 터뜨릴지 해원은 주시했다. 회장은 쓰러지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소 목수가 원하던 수목장으로 장례 절차가 문제없이 진행되도록 움직였다. 해원은 알았다. 이 사람은 나와 비슷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는 이곳에 소 목수를 위한 기념비를 세울 것이다. 기념관을 세우고 소 목수의 작품을 전시하며 그의 이름이 영원히 존재할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부을 것이다. 

 해원은 회인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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