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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wooRan Oct 26. 2022

책방 에티카

이래서 다들 섬을 그리워하는군, 김의 감탄사는 그런 식이었다. 이래서 다들 떡볶이를 좋아하는군, 이래서 롱패딩이 유행이군, 이래서 다들 연애를 하는군. 신혼여행으로 온 몰디브는 바다 한가운데 리조트가 있었고 문만 열면 바로 바다였다. 커다란 홍학 모양의 튜브를 타고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김에게 이래서 다들 바다를 좋아하나봐, 말했고 김은 큰 소리로 웃었다. 섬 속의 섬인 바다 위 숙소에서 김은 왜 섬이 이상향으로 그려지는지 설명해 주었다. 유토피아, 아틀란티스, 홍길동전의 율도국 모두 섬으로 구체화되는데 육지와 고립된 지역적 이점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신혼여행지로 섬이 인기인 이유도 있겠지, 이제 우리는 새로운 가정을 이룩한 거니까. 나는 튜브 위에 드러누워 둥실둥실 떠다니며 김의 말을 흘려들었다. 바다 위에서 듣는 김의 말은 육지에서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들렸고 나는 쉽게 수긍해 버렸다. 몰디브의 바다는 맑다 못해 바닥의 모래알을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투명했다. 내 미래도 저 바닥처럼 훤히 들여다보인다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이래서 다들 섬으로 오는군, 개소리도 명언처럼 들리잖아.

 이래서 다들 결혼을 하는군.

 이래서 다들 여행을 오는군.

 이래서 다들 잠에서 깨는군.


 “장원 씨.”

 퍼뜩 눈을 뜬 나는 침대 옆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해원과 눈이 마주쳤다. 

 “제가 너무 오래 잤나요?”

 “그건 아닌데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셔서 한 번 들여다봤어요.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오전 9시였다. 길쭉한 세로 모양 창이 6인실 바닥에 굵은 선을 그리고 있었다. 선 끝에 자리한 해원의 얼굴과 머리카락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지금 커피를 내리려고 하는데, 드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씻고 나오세요.” 해원이 웃으며 거실로 나갔다. 나는 발을 질질 끌며 방 안에 딸린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 내 얼굴은 밤새 술 마시다 뻗은 사람마냥 숙취가 배어 있었다. 정작 새벽까지 냉장고 속 소주를 모조리 해치워 버린 사람은 해원이었다. 브로콜리와 해원이 주거니 받거니 술을 비우는 동안 소주 한 방울 입에도 대지 않은 나는 꾸벅꾸벅 졸았다. 아무리 커피를 많이 마셔도 자정이면 잠에 드는 내 습관이 어젯밤처럼 중요한 순간에도 어김없이 나를 침대로 등 떠밀었다. 테이블에 코를 박기 직전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둘은 현재 제주도에 운영 중인 책방들을 종이 지도까지 펼쳐 하나씩 짚어가고 있었다. 

 거실 테이블은 깨끗이 치워져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부엌 식탁에서 해원은 드리퍼에 손수 간 원두 위로 주둥이가 긴 드립 포트를 기울였다.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이 함께 춤을 추었다. 

 해원은 내 맞은편에 앉아 내가 커피와 토스트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제가 술 다 마신 줄 알겠어요.”

 퉁퉁 부은 두 눈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며 내가 말했다. 해원은 웃으며 머그잔을 들어올렸다. 

 “사실 이거 술인데.”

 “거짓말이죠?”

 “냄새 한 번 맡아 보실래요?”

 “제가 개 코는 아니지만 너무나 커피인 걸 알겠는데요.”

 우리는 잠시 함께 웃었다. 목 사장도, 브로콜리도 없이 단 둘이 마주보고 커피를 마시는 아침은 확실히 기분이 좋았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제주도에 온 것만 같았다.

 해원은 오늘 내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오늘 가 볼 데가 있는데,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정이 있었는데요, 없네요.”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내 일정은 회인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짜인 것이고, 어제의 대화가 소설이 아니라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은 회인과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회인과 함께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를 썼다는 해원의 말에 브로콜리도 목 사장도 가만히 앉아만 있어 자리에서 튀어나오려는 내 몸을 최대한 억눌러야 했다. 브로콜리는 해원의 폭탄 발언이 중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목 사장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 것 같았다. 해원도 그 말을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듯이 평온한 말투로 꺼냈다. 태연한 세 사람 사이에 낀 나는 이 놀람을 표현해도 되는지 눈치를 봤다.

 그 자리에서 나는 바로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까발렸다. 의외로 브로콜리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이며 내게 이것저것 자세히 캐물었다.

 “그러니까 장원 씨 회사에서 그 책을 쓰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근데 그 의뢰인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모르고.”

 “그게 삼촌이 일하는 방식이긴 했거든요. 얼굴 없는 의뢰인들이 더 신뢰가 간다나. 우리 사장님이 스릴러 영화에 심취하신 분이기는 하죠.”

 “<밤은 기억하고 낮은 잊는다>보셨죠?”

 나도 해원도 목 사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자 브로콜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황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작품을 안 보셨다니, 800만 관객이 든 작품을....!”

 공의 첫 영화 주연 작이자 최고 흥행작인 그 영화는 사설탐정인 주인공이 실종된 배우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으며 시작된다. 단 한 편의 영화 ‘밤은 기억하고 낮은 잊는다’만 남기고 사라진 배우를 찾아 나서며 서서히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영화 스토리가 지금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며 브로콜리는 열심히 설명했다. 

 “그 영화에서 정체를 숨기고 있던 의뢰인이 배우 본인이라는 반전이 드러나는데, 앗, 제가 예의 없이 스포일러를 해 버렸네요? 알고 봐도 너무나 훌륭한 작품이지만...”

 그는 무표정한 해원과 노골적으로 무심한 목 사장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나만 바라보며 자신의 추리를 신명나게 펼쳤다. 

 “...장원 씨가 받은 의뢰도 비슷한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죠. 책은 핑계고 사실 그 제안은 회인을 찾아달라는 의뢰고 그건 또 의뢰인 본인이...”

 “회인 본인이다?”

 슬쩍 해원을 살폈지만 해원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새 소주병을 까고 있었다.

 “공이 의뢰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

 그때 위층에서 무슨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거운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크고 둔한 소리였다. 턱을 괴고 앉아 있던 목 사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말고 손님이 또 있어요?”

 “내 조카. 다들 놀다가 알아서 치우고 들어가.”

 목 사장이 성큼성큼 두 계단씩 올라 2층으로 사라졌다. 문득 나는 숙박 안내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실 한구석에 처박힌 내 캐리어와 에코백이 해원의 프라이탁 백팩과 함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브로콜리가 직원인 양 앞장서서 우리에게 6인실 두 개와 4인실 하나, 2인실을 차례대로 보여주었다. 내가 예약한 건 2인실이었지만 해원이 주저 없이 6인실에 짐을 푸는 것을 보고 따라 들어갔다. 

 어젯밤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나는 해원에게 내 의뢰인의 정체가 정말 공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해원은 내가 방금 한라산이 폭발했다는 소리를 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제가 왜 그렇게 생각해야 하죠?”

 “그 책을 함께 썼다고.....”

 당황한 나는 횡설수설했다. 숨겨진 공동 집필자...뜻밖의 인기.....공의 존재.....저작권...같은 말들이 제주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마냥 마구 엉켰다. 

 2차 창작의 사례들을 두서없이 나열하며 테이블을 두드리는 내 오른손을 해원이 잡았다. 세상의 모든 말이 다 사라졌다.

 “장원 씨, 미안해요.”

 “.....네?”

 “제가 지나치게 큰 혼란을 드린 것 같아서...”

 나를 바라보는 해원의 표정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워 보였다. 

 “아뇨, 혼란은 뭐. 제가 말을 멍청하게 하는 데 소질이 있는데...”

 “제가 제주도에 온 두 가지 목적이 있어요.”

 해원은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저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리에 장원 씨가 함께 해 주길 바라요.”

 그때 4인실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무엇인가가 기어 나왔다. 소주에 잔뜩 데쳐진 브로콜리가 술 냄새를 풍기며 떨리는 손으로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냈다.

 “저희는 지금 나갈 건데, 뭐 좀 사다드릴까요?”

 브로콜리는 아무 말 없이 우리에게 손만 흔들었다.      


 나는 해원이 지도 앱에 찍어 준 주소를 향해 차를 몰았다. 이 책방은 인터넷에 거의 언급되지 않은 곳으로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딱 세 시간만 열린다고 했다.

 “그렇게 짧게 열면 운영이 될까요?”

 “다른 의미가 있는 거죠.”

 그게 어떤 의미인지 해원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책방의 이름인 ‘에티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에티카란 철학자 스피노자의 대표 저서의 이름이고 ‘윤리학’이라는 뜻이다. 해원은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었고 잘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윤리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사실 스피노자보다 신형철 평론가가 쓴 『몰락의 에티카』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그걸 더 좋아해요. 거기에 도덕과 윤리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선과 악이라는 초월적 규준에 근거하는 강제적 규율이 도덕이고, 좋음과 나쁨이라는 내재적 규준에 근거하는 임의적 규율이 윤리’라고, 내가 스스로 만들고 기꺼이 따르는 규칙이 윤리라고 이해했거든요.”

 에티카는 공무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해원의 설명이 끝날 때쯤 지도에서 안내하는 공용주차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책방은 마을 깊숙한 곳에 있어 마을 입구에 차를 대고 걸어가야 했다. 바다와 떨어진 중산간의 개발의 손길이 무자비하게 휘젓기 전의 마을은 고요했다. 허리가 굽은 노인 몇몇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다 우리를 보고 멈춰 섰다. 해원이 앞장서서 지도 앱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나아갔다. 어디선가 사탕을 솥에 가득 넣고 오랫동안 녹이는 것 같은 달콤한 냄새가 끈덕지게 느껴졌다. 

 “찾았다.”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내 몸이 멈춰 선 해원의 등과 부딪혔다.

 흰 입간판에 검은 페인트로 ‘에티카’라 적힌 투박한 글씨가 검은 돌담 입구 앞에 서 있었다. 안거리와 밖거리 두 채가 기역자로 맞닿은 건물은 제주 특유의 건물 형태를 그대로 살린 것으로 낮은 지붕에 검은 돌로 된 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대문 없는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자 한쪽 구석에 귤나무가 서 있고 아직 꽃이 피려면 더 기다려야 하는 수국나무가 꽃 대신 커다란 잎을 달고 돌담 아래 빙 둘러앉았다. 안거리 출입문은 불투명한 유리로 앞에 ‘OPEN’팻말이 달랑거리고 처마에 새 모양 풍경이 바람이 딸랑거렸다. 밖거리 출입문은 쇠문으로 되어 있는데 주먹만 한 크기의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다.

 길에서 맡은 달콤한 냄새가 한층 더 강렬해졌다.

 “귤꽃이 피었네요.”

 해원의 말에 깜짝 놀란 나는 귤나무에 가까이 갔다. 정말로 흰 꽃이 피어 있었다. 활짝 펼친 아기 손 같은 흰 꽃잎 사이로 태아의 주먹만큼 자그마한 노란 술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귤꽃 향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가게 이름은 무서운데 이 꽃들은...”

 “귀엽죠?”

 잠시 꽃을 감상한 뒤 우리는 유리문을 열고 책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아담했다. 출입문을 가운데 두고 한쪽은 미닫이문으로 닫힌 방이 있었고 나머지 공간은 기둥만 남기고 모두 트여 있었다. 책방 이곳저곳에 배치된 책장 속 책들은 눈대중으로 대충 헤아려도 그리 많아 보이진 않았다. 벽엔 사진과 그림엽서가 무심히 붙어 있었다. 책방이라기보다 책방의 이미지를 모방한 곳 같았다. 자그마한 책장들, 동그란 모양의 탁자, 안락의자, 뚜껑을 덮을 수 있는 책상 하나가 이상적인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출입문 맞은편의 책장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 해원이 말했던 책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말해 주신 책이 이거 맞나요?” 

『몰락의 에티카』를 손에 들고 고개를 돌렸다. 

 해원은 뚜껑 달린 책상이 놓인 벽에 붙은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질녘의 바다를 배경으로 누군가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과, 만개한 목련꽃이 길 양쪽으로 늘어선 풍경사진이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진 속 인물이 바라보는 바다는 막 해가 넘어간 하늘과 뒤엉켜 피로 물들어 있었다. 피의 세상 속 바다 너머로 섬 하나가 검은 무덤처럼 솟아 있는 광경을 그는 영원히 바라보아야 한다. 

 “안녕하세요?”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해원은 천천히 몸을 돌려 미닫이문에서 나온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와 꽃무늬 카디건 아래로 술이 주렁주렁 달린 발목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땋아 오른쪽 어깨 위로 늘어뜨린 그는 인간 드림 캐처 같았다. 실제로 미닫이문 옆에 커다란 드림 캐처가 깃털을 흐느적대며 걸려 있었다. 

 그는 나른한 목소리로 느리게 말했다.

 “천천히 둘러보세요. 보리차 한 잔씩 드릴까요?”

 그가 다시 미닫이문 안으로 들어가려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와 해원을 바라보았다. 해원은 당장이라도 레이스로 된 소매를 잡을 것처럼 한 손을 앞으로 향한 채 에티카의 주인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혹시...”

 “네?”

 “...아닙니다.” 해원의 손이 아래로 떨어지고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미소와 함께 방 안으로 향했다. 

 “아는 사람인가요?”

 해원은 내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마치 사라진 친동생의 행방을 찾아 방을 뒤지는 맏이와 같이 증거를 찾는 사람처럼 기둥의 못 하나까지 뜯어보는 눈빛이었다. 당장은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 같아 나는 방해되지 않게 테이블 옆 작은 의자에 앉았다. 동그란 테이블 위에 책 몇 권이 쌓여 있고 가장 위에 있는 책은 무지갯빛 천으로 된 북 커버를 입고 있었다. 

 미닫이문이 다시 열리고 보리차가 든 유리잔 두 개를 쟁반에 받쳐 든 드림 캐처가 웃는 얼굴로 나왔다. 분홍색 토끼 모양의 털 슬리퍼가 이국적인 무늬의 바닥 타일을 쓸고 다녔다. 

 보리차를 받아 드는 해원의 표정은 아까보다 침착해 보였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을까요?”

 그는 자기를 주인이라 불러 달라며 소개한 뒤 우리에게 이곳을 방문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나는 해원을 바라보았고 해원은 주인을 바라보았다.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왔습니다.”

 “정말? 여기가 올라왔어요?”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태그 따라 들어왔어요.”

 하마터면 보리차를 쏟을 뻔한 나는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았다. 주인은 마당에 핀 귤꽃보다 더 크고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와아, 그럼 한 달 전에 오셨던 그 손님이 올리셨나 보구나, 사진은 잘 나왔을까요? 이만한 렌즈가 달린 카메라였는데.” 

 그는 테이블 위 책 더미 뒤에 숨겨져 있던 텀블러를 들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저는 SNS를 하지 않는답니다. 네, 보통 이렇게 작은 책방을 운영하면 온라인 계정 만들기가 필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는 꿈을 꾸는 것 같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이곳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지요. 아주아주 특별한, 유일한, 유지하는, 영원히...그래서 가능한 널리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전혀 사장의 마인드는 아니죠?”

 그는 나를 보며 말했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에티카의 사장이 아닌 주인이라 칭했고 그렇게 불러 달라 요청했다.

 “주인이라는 단어는 참 아름답지요. 도장을 찍는 인주처럼 확실한 흔적이 남고 기둥처럼 굳건한 사람이 연상되는, 주인이라 불리고 부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정말 좋아요. 그건 마치...”

 그는 깨지기 쉬운 희귀한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아이처럼 신중하게 회인의 이름을 발음했다. 목이 멘 듯 텀블러 뚜껑을 열어 안에 든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보리차를 마시며 주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는 우연히 회인의 낭독회를 가게 되었다. 회인이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공 게스트하우스에서 낭독회가 열렸고 그곳에서 주인은 회인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핀 조명이 비추는 잔디밭 가운데 회인이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를 낭독하는 순간 그곳은 다른 세계가 되었다. 모든 걸 다 버리고 기꺼이 제주도로 날아오게 할 힘이 그를 끌어당겼다. 

 해원은 내 앞에 선 채로 운명의 그날 밤 어둑한 조명 아래 잔디밭을 거닐던 회인의 모습을 눈썹 털 하나까지 묘사하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책을 읽다 책 속 세계로 빨려 들어가 눈앞에서 등장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걸 목도한 책 빙의물 주인공 같은 표정이었다.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 에티카는 오직 회인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세계였다. 그날 밤 해가 뜰 때까지 단 둘이 깊은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회인이라는 인간을 최대한 구현하기 위해 주인은 애썼다. 책방의 모든 책들은 회인이 언급했던 저자의 것들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카프카, 박완서, 칼 세이건, 미르치아 엘리아데, 유르스나르, 버지니아 울프...통일성 있는 계보가 존재하지 않는 이름과 제목들이 무작위로 배치되어 이곳이 책방이라는 이미지를 지키고 있었다. 

 퍼뜩 떠오른 물음표 하나가 주인의 연극으로부터 한 발 뗄 수 있게 했다. 내가 받았던 자료들 중 어떤 것도 에티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다. 회인이 방문했거나 책을 남기고 간 책방 목록에 이곳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저 뚜껑 달린 책상에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가 한 권 비치되어 있다고 했다. 정확히는 주인이 손수 옮겨 쓴 필사본이.

 “비밀주의로 감싸인 이곳까지 회인의 책을 찾으려는 수상한 방문객들이 스며들어왔죠. 그 영화 때문에...” 그는 공의 이름을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라도 되는 것처럼 내뱉었다.

 “그런 오물이 튀어버린 사실을 회인은 얼마나 낙담했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아무튼 제주도의 책방이란 책방은 다 찾아다니는 수집가들이 이곳까지 찾아왔고 도난 사고가 세 번 벌어지고 난 뒤 사본을 만들었어요.”

 “잠깐 봐도 될까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뚜껑을 열자 검은색 몰스킨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어제 카페에서 해원을 처음 마주쳤을 때 그가 쓰고 있던 것과 같은 제품이었다. 

 노트 첫 페이지에 손으로 쓴 목차가 있었다.     


일기보다 쉬운 소설 쓰기     

당신만의 드라마 

인정하는 부분인 것입니다

화장실 전쟁

노이어의 공주

자궁과 무덤

나는 너의 아이

기다리는 택배는 오지 않는다     


 “순서가 틀렸네요.”

 어느새 내 옆에 서서 목차를 살핀 해원이 말했다. 

 “「인정하는 부분인 것입니다」가 제일 먼저 왔어요. 「노이어의 공주」가 가장 마지막에 오고.”

 “지금 무슨 말씀이신지?” 나른함이 싸악 걷힌 목소리가 날카롭게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안락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파묻혀 있던 주인이 상체를 꼿꼿이 세운 자세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작품의 배치 순서에도 작가의 의도가 깃들었으니 중요하죠. 필사하셨다니 자신만의 순서를 만들 수도 있지만.”

 “낭독회에서 하루에 한 작품씩 순서대로 읽었어요. 마지막 날 내가 들었던 작품이 7번이에요. 택배.”

 나는 페이지를 넘겨 가장 마지막 작품을 훑었다. 크고 각진 주인의 글씨가 눈에 잘 들어왔다.      




<기다리는 택배는 오지 않는다>     


 인생이란 택배의 연속이고 내 택배보다 남의 택배가 먼저 도착하는 법이다. 초인종이 울리고 나는 화장실에서 제대로 뒤처리도 못하고 뛰쳐나갔다. 

배달기사가 든 택배 상자를 보자마자 내 택배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옆집이 부재중이라 대신 부탁드립니다.”

 내게 고양이 안기듯 상자를 맡기고 잽싸게 계단으로 향하는 배달기사를 붙잡았다.

 “저기요, 제 건 언제 와요?”

 질문과 동시에 옆집 택배사와 내 택배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늘 깨닫는 사실도 많다. 

 “오늘 이 아파트 배달은 저 집 하나뿐인데요.”

 “죄송합니다. 수고하세요.”

 나는 내 것이 아닌 택배 상자를 품에 안고 퇴각했다. 엉덩이에 달라붙은 휴지가 거슬렸다. 상자는 크기에 비해 제법 가벼웠고 옆 집 주소와 ‘정**’라는 이름과 ‘부재 시 옆집에 맡겨 주세요’라는 부탁의 말이 적힌 송장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내가 거주 중인 아파트는 한 층에 두 세대씩 마주 보는 형태인지라 정 씨와 나는 서로의 옆집인 셈이다. 

 4층을 공유하는 정 씨와 나는 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사이다.

 정 씨는 얼굴도 모르는 내게 자신의 택배를 맡겼다.

 상자를 거실에 내려놓고 화장실로 향했다. 꼼꼼하게 샤워를 한 뒤 검은색 민소매 원피스로 갈아입고 머리를 빗었다. 벨소리가 나면 언제든 나갈 수 있게 거실 소파에 앉았다. 상자와 마주 앉아 있으니 보면 볼수록 큰 상자다. 세 살 된 내 조카도 들어가 누울 수도 있을 법한 크기의 택배 상자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나. 상자 속에 정 씨가 몸을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는 오래 상자를 노려보았다. 

 집에 웅크리고 있다 보면 가끔 맞은편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곤 했다. 택배를 받아줄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나와 같이 혼자 사는 사람일 것이다. 나와 달리 출근이나 등교, 목적지가 있는 외출을 정기적으로 하는 듯했다. 내 집은 이웃과 달리 오직 들어오기만 하는 문이다. 각종 택배가 들어오고, 가끔 아파트 반장 아주머니가 들어오고, 조카의 손을 잡은 여동생이 들어오는 문. 조카는 내가 쌓아둔 택배 상자로 성을 쌓아 전쟁놀이를 하고 여동생은 그런 조카와 내게 화를 내며 상자들을 내버린다. 잔소리할 때 표정이 엄마와 똑같다고 놀리면 동생은 더 크게 화를 낸다.

 언니가 아빠 닮고 난 엄마 닮았다고 할머니가 나만 식혜를 안 주셨다고.

 그 식혜 먹고 충치 열 개 생겼다.

 적어도 난 할머니나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언니 인생은 언니가 알아서 살아.

 그렇게 큰소리친 동생은 내게 택배 상자가 얼마나 더럽고 위험한 물건인지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다. 바퀴벌레가 상자에 알을 까서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과장하지 말라 했고 동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 잘라 말했다. 이런 식으로 그날의 잔소리를 전부 소비한 동생은 냉장고를 꽉 채워 놓고 떠나곤 했다. 그게 한 달 전이었다. 

 지금 내가 애타게 기다리는 택배는 동생의 방문 이후 처음으로 주문한 것이다. 고심 끝에 결정한 나의 택배는 왜 나를 기다리게 하는가.

 내 것이 아닌 저 택배가 자꾸만 신경 쓰여 눈을 뗄 수가 없다.

 예민해진 감각이 발소리와 비닐 소리를 감지했다. 오늘 두 번째로 초인종이 울렸다. 문 앞엔 택배가 아닌 검은 비닐봉지를 든 반장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조카네가 포도를 세 박스나 보냈지를 뭐야. 좋은 건 나눠야겠지 뭐야.”

 나는 감사 인사를 전하며 바로 문을 닫으려 했다. 반장 아주머니는 순순히 포도를 넘기지 않았다. 사과는 핑계일 뿐, 이 아파트에서 이 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만큼 한가한 사람 중 한 명이 나라는 사실을 반장 아주머니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별 일 없고?”

 “항상 그렇죠.”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까 여자 혼자 사는 집만 노리고 흉한 마음먹는 사람이 많다지 뭐야. 우리 아파트가 워낙 오래되어가지고 번호 누르면 열리는 문이라도 싹 다 바꿔야 할 일인데 뭐야. 근데 그 소식은 들었나?”

 봉지를 낚아챌 틈만 노리던 내 시선이 아주머니의 얼굴로 향했다.

 “내가 항상 말하고 다니잖아, 가는 데 순서 없다, 젊은 사람들이 일 안 하고 결혼 안 하고 허송세월 하다 허무하게 가 버린다, 이 말이야. 사람 명줄이라는 게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도 모르시지 뭐야.”

 예전엔 하나님까지만 호명되던 성인의 이름을 길게 거론하며 아주머니는 오늘의 소식을 알릴 극적인 순간을 노렸다. 

 “즉사라잖아.”

 “누가요?”

 “아가씨 앞집 총각,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져서 깔렸다잖아.”

 이야기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자신의 말에 도취된 반장 아주머니의 빈틈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사과 잘 먹겠습니다.”

 한순간에 사과와 이야기 상대를 탈취당한 아주머니 앞에서 문이 닫히고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작동했다.

 이제 주인을 잃은 택배 상자 앞에서 나는 사고 뉴스를 검색했다. 아파트 근처 오래된 ‘태양’주택을 헐고 새로 ‘궁전’빌라를 짓던 현장의 안전 지지대가 오늘 아침 무너져 그 아래로 지나가던 남성 한 명과 초등학생 두 명을 덮친 사고였다. 사고 현장 맞은편에 주차된 차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이 뉴스에 보도되었는데 붕괴의 순간 앞서 가던 두 아이를 남자가 감싸 안고 엎드리는 장면이었다. 부상당한 아이들은 곧 의식을 되찾았지만 남자는 사망했다. 남자는 어머니가 입원 중인 요양 병원에 가던 길이었으며, 매일 아침 어머니를 찾아오는 효자였다는 병원 관계자의 인터뷰가 실시간 뉴스로 이어졌다. 댓글은 영웅적인 나의 이웃을 추모하는 물결로 가득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정 씨의 택배를 뜯었다. 왜인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칼로 테이프를 갈라 상자를 열었다. 상자 속에 든 것을 확인한 뒤 상자를 닫았다.

 화장실로 뛰어가 비누로 손을 씻고, 한 번 더 씻고, 몇 번을 씻었다.

 이건 바퀴벌레보다 더 심한, 차원이 다른 문제다. 감히 이런 것을 내게 대신 받아 달라 청하다니. 얼굴도 모르는 나의 이웃이여. 당신은 누구십니까?

 최대한 상자를 피해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에 앉아 뉴스 인터뷰에 응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좋은 이웃까진 아니어도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사고가 난 그날, 그 사람의 택배를 대신 받아주기 전까지는. 아뇨,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고 대화도 나눠본 적 없어요. 그래서 택배를 대신 받아달라는 메시지가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이 택배는 유족 분들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상자가 배송 중에 손상되어 우연히 제가 열어보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묻혔겠지요. 

 그 사람은 절대 들키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어디서 가졌던 걸까요?

 이딴 걸 택배로 받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요? 

 나는 머릿속 영상을 껐다. 목장갑을 끼고 칼로 송장을 말끔히 뜯어낸 뒤 상자를 닫아 테이프로 밀봉했다. 내 지문이 묻지 않게 조심하면서 두 번 세 번 몇 번이고 테이프를 감고 또 감았다. 상자는 이제 열리지 않을 현관문 앞에 놓일 것이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반장 아주머니에게 나의 이웃이 온라인에서 영웅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음을 흘리면 아주머니는 신이 나서 바로 그 영웅이 이 아파트에 살고 있었음을 자발적으로 널리 알릴 것이다. 

 그렇게 이웃의 상자는 호기심 어린 사람들의 손 안에서 활짝 열리리라. 

 상자 속 내 이웃의 진실이 해방되어 알을 까고 공포와 악취를 퍼뜨리리라.     

 그전에 나의 택배가 먼저 도착하면 좋으련만.           




 눈으로 단편을 속독하면서 귀로는 해원과 주인이 주고받는 말들을 주워 담았다. 주인의 주장에 따르면 회인은 마지막 날 이 단편을 낭독했고 그만큼 『일기』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주인공 ‘나’는 자신의 택배 대신 얼굴도 모르는 이웃의 택배를 받게 되는데 여기서 택배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나’는 타인의 욕망을 대신 배달받게 되면서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다. 그렇게 나의 욕망은 영원히 내게 배달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을 낭독한 뒤 나와 회인의 눈이 마주쳤어요. 자신의 책을 전부 떠나보낸 그는 몹시 불안해 보였어요. 안정을 원하는 그의 욕망을 나는 단박에 알아챘어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상징이었어요.”

 “접근법이 나쁘지 않네요.” 해원의 목소리에 흥미로움이 묻어나왔다. 

 “그건 내게 보낸 메시지였어요.” 네 의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주인은 말했다. 그는 회인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회인은 그가 잠든 사이 공 게스트하우스를 떠났다. 홀로 남겨진 주인은 생각했다. 회인이 발송한 택배를 수령할 의무가 있다고. 

 그렇게 에티카가 탄생했다. 

 고개를 들자 책방 한가운데 서서 두 손을 펼친 주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그 일을 구현한 공간에 대한 확신이 활짝 펼친 두 손 안에 잡힐 것처럼 보였다. 옷에 달린 레이스가 주인과 같은 자신감 속에서 힘차게 펄럭였다. 

 해원의 표정을 확인한 나는 노트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점 내부는 아담하여 한 동작으로 명함을 꺼내 주인의 펼친 손 위에 재빠르게 올려놓을 수 있었다. 에티카의 주인은 잠에서 깬 것 같은 얼굴로 ‘한국문화컨텐츠부흥엔터네이너코퍼레이션 과장 김장원’을 바라보았다.

 “한국문화컨텐츠어쩌구...아무튼 저희 회사에서 이번에 회인 씨와 그의 책 『일기』를 주제로 한 책 집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서점에 들어선 뒤로 듣고 보고 알게 된 정보들이 뒤엉켜 산만한 내 발언은 드림 캐처의 깃털만큼 지나치게 비대했지만 요점은 전달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 

 “인터뷰를 해 주시면 좋겠어요. 회인을 직접 만나서 오래 대화도 나누셨다면서요. 그 분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증언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림자에게 빛을 비춰주시는 역할이겠죠. 사장, 아니 주인 분께서.”

 책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작가와 관련된 소문들이 여름 장마철의 잔디처럼 무성해졌다. 회인은 공 정도는 뺨 후려칠 만큼 수려한 외모로 사람들을 홀리고 다녔다, 사실 공개하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얼굴이다, 목소리가 동굴처럼 깊고 낮다, 날카롭고 높아 쇠를 삼킨 것 같다, 키가 크고 작다, 피부가 희고 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다, 남자다, 여자다. 

 공무원의 사장은 인터뷰에서 한 번 크게 안아 주고 싶은 사람이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회인이 방문했던 카페 중 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사람이 그는 요가 수행자 같은 차림새로 현세에 초탈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고 말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회인과 같은 6인실을 이용했다 주장하는 사람은 그가 어찌나 말이 많은지 밤새 수다를 떨었고 헤어지면서 그 책을 한 권 선물하려 했는데 내가 거절했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 밑에 회인은 과묵하고 아무에게나 자신의 책을 나눠주지 않았다며 어그로 끌지 말라는 댓글이 달렸다. 

 모두가 회인을 잘 안다고 주장했다. 공무원 사장도, 배우 공도, 회인을 실제로 만났다고 증언하는 사람들 모두가 회인과 가까웠다고, 그와 통하는 게 있었다고 말했다. 

 잘 모르니까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추측과 상상을 덧붙여 막힘없이 말할 수 있으니까. 나는 어느새 회인의 제목에 납득했다. 일기를 쓰는 것보다 소설을 쓰는 일이 훨씬 쉽다. 

 에티카의 주인 역시 자신만의 소설을 쓰고 있었다. 


 “여기가 당신의 소설이군요.” 


 내 생각을 읽은 듯 해원이 말했다. 책방에 들어섰을 때 느껴졌던 긴장감이 누그러지고 이제 그는 책을 다 읽고 결말까지 알게 된 완독자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면서 궁금해 한 장소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이다. 제주에 와야만 했던 두 가지 목적 중 하나인 이곳. 해원은 인스타그램에서 에티카에 대해 알게 되었고 회인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을 접했으리라. 회인과 함께 『일기』를 썼다는 해원은 책이 배포된 50개의 장소에 대해 자세히 알 것이고 그 중에 에티카는 없다는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했다. 

 나는 주인이 해원의 정체를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자신보다 회인을 훨씬 더 잘 알 수밖에 없는 인물이 눈앞에 있다면? 해원이 진실을 밝힐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번갈아 주인과 해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사진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해원은 손으로 바다 사진 옆의 목련꽃 사진을 가리켰다. 도심 한가운데 시멘트로 정비된 개천은 얼핏 평범해 보이면서도 양 옆의 터질 것처럼 만개한 목련나무 덕에 잊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냥 사진이에요.”

 “그냥 어디서 찍으셨나구요.”

 “그게 중요한가요?”

 “아주 중요하죠. 회인이 살았던 곳인데.”

 주인은 텀블러 뚜껑을 열어 안에 든 것을 천천히 들이켰다. 의식적으로 느긋해 보이고픈 마음을 채 감추지 못한 몸짓으로. 음료와 함께 말을 삼킨 주인의 표정은 밀봉된 텀블러처럼 완고해 보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내가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어딘데요?”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중요한 말 같았지만 귀를 기울이면 도망가 버리는, 알고 싶지만 결코 알 수 없는 진실을 향해 조금이나마 가까워지고 싶었다. 내 간절한 시선 안에서 해원의 미소가 어른거렸다.

 “여기는...”

 “...한 번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웅성거림이 명확한 말소리로 바뀌더니 출입문이 열렸다. 셀카봉을 손에 든 사람이 먼저 들어오고 소형 카메라로 앞선 이를 찍는 다른 사람이 연이어 책방에 입장했다. 인사에 앞서 셀카봉에 달린 휴대폰 카메라가 책방 내부를 찍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안이 널찍합니다. 보시다시피 책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

 무기처럼 휘둘러지는 카메라의 칼끝이 공간을 난도질하기 전 이곳의 주인이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주인은 양 손으로 두 대의 카메라를 가로막으며 경고했다. 

 “함부로 촬영하시면 안 됩니다.”

 “아, 죄송합니다. 저희는 구독자 수가 5만 되는 여행 채널을 운영 중인데요...”

 뒤에 들어온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내 자기들이 운영한다는 유튜브 계정을 보여주며 제주도 책방 여행 콘텐츠에 대해 길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인은 자신 이외의 사람들이 길게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가 주세요.”

 “조회 수와 비례하는 인지도에 따라...네?”

 “두 분도 나가 주세요. 오늘 영업 끝났어요.”

 당황한 두 유튜버가 문 앞에서 쫓겨나고 우리도 뒤이어 책방을 나섰다. 해원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보리차 잔을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나는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필사 노트를 책상 위에 돌려놓았다. 에티카로부터 추방된 네 사람은 유리문에 걸린 팻말이 종소리와 함께  ‘CLOSE’로 바뀌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셀카봉은 닫힌 문에서부터 촬영을 재개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문전박대를 당한 우리는...”

 카메라를 든 다른 사람이 바깥채의 자물쇠 달린 문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나에게 해원이 일단 나가자고 속삭였다. 

 “장원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귤나무를 지나 돌담을 빠져나가 공용주차장으로 걸어가면서 해원은 오늘 새롭게 얻은 수십 개의 물음표들 중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내게 던졌다. 

 “만약 당신에게 죽은 이웃의 택배가 도착한다면?”

 내 생각보다 말이 한 발 빨랐다. 

 “남의 택배를 왜 함부로 뜯어요.”

 장마가 일주일 째 이어지던 날이었다. 장마만큼이나 끈질긴 야근 끝에 간신히 퇴근한 나는 내 앞으로 온 택배가 이미 개봉되어 식탁에 펼쳐진 광경을 목도했다. 김은 내가 왜 화를 내는지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택배 상자를 분리수거함에 깨끗이 정리해두고 칭찬만을 기다리던 김은 비에 젖은 외투도 벗지 않고 거실에 빗물을 뚝뚝 흘린 것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한 내 앞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남의 물건엔 함부로 손을 대는 게 아니에요. 그 주인공도 마지막에 부정을 탔다고 생각해요. 왜 얼굴도 모르는 사람 택배를 열어봐요.”

 해원의 웃음소리는 담 너머 개가 놀라 짖을 정도로 컸다. 눈물까지 흘리며 웃는 해원의 모습은 온 몸으로 터뜨리는 폭죽 같았다. 숨을 고르는 해원 옆에서 당황한 나는 우두커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해원은 내 답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비웃는 거 아니에요. 이건 진심이에요. 처음 카페에서 장원 씨와 만났을 때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심에서 터져 나온 웃음이에요. 믿어 주세요.”

 “어느 부분이 웃긴 지라도 설명해 주실 수 있겠어요?”

 “「택배」는 내가 쓴 단편이거든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쓴 소설. 그걸 처음으로 읽은 사람이 회인이었어요. 지금의 장원 씨와 같은 반응이었죠. ‘남에 물건 손대면 부정탄다.’”

 해원이 회인을 언급하는 방식은 주인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오래 아껴 온 귀한 수집품과 같은, 그러나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했기에 친숙한 울림이 더해졌다. 그들은 에티카에 걸려 있던 사진 속 목련나무 아래 펼쳐진 개천길을 함께 걸었고 앞으로 쓸 글에 대해 이야기했다. 둘은 서로의 택배를 대신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빤히 아는 사이였으니까.

 나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가 어딘가요?”

 그렇게 해원은 나를 목천으로, 목련꽃이 휘황하게 피어오르던 그때 그 봄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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