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문구 여행 이후 떠오른 단상들
왜 문구였을까?
6년 만에 혼자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주제가 '문구 여행' 이었다. 급식 먹고 다닌 시절 학교 앞 문구점을 제 집 드나들듯 다니면서 스티커와 펜과 온갖 종류의 노트와 수첩을 사 모았으니 그때 형성된 취향 때문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급식이가 자라 급식 먹는 교사로 성장한 지금도 만년필 카페에 올라오는 글을 정독하고 언제 어디서나 다이어리를 항상 들고 다니는 습관에 길들여진 나다.
그렇기에 이번 도쿄 문구 여행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여행자의 공장ㅋㅋ 나리타공항점-도쿄역점-나카메구로 본점)
글쓰기의 수많은 조언 중 가장 많이 반복되는 내용이 있다. 구체적으로 쓸 것. 김영하 작가는 <알쓸신잡>에서 학생들에게 창작을 가르칠 때 '짜증난다'라는 표현을 금지한 일화를 이야기한다. 짜증난다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리지 말고 본인의 현재 감정을 정확히 서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인천공항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려 짜증났다, 보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한다는 초조함으로 인해 조바심이 났다, 고 쓴다. 가려던 식당이 하필 휴무일이라 문이 닫혀 있어 짜증났다, 가 아닌 여행 일정이 꼬여 망칠 까봐 두려웠다, 고 서술한다. 구체적인 서술 속에서 내 감정은 명확해지고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여행 중 내가 느꼈던 감정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기나긴 일본 입국심사를 통과한 뒤, 위탁 수하물 없이 여행을 떠나왔기에 짐 찾는 곳을 빛의 속도로 빠져나와 나리타 공항 1층에서 4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출국장 한가운데 자리한 쇼핑 코너에서 맥도날드 앞에 자리한 트래블러스 컴퍼니 나리타 공항점을 발견한 순간 느꼈던 감정을 정확하게 쓸 수 있을까?
이번 문구 여행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12층짜리 건물 전체가 문구점인 이토야 문구점 앞에서 오픈 시간을 기다리는 순간의 나는 어떤 감정이었나?
여행 준비 중엔 일기예보 상으로 내내 맑음이라 포기하고 있었던 긴자 앙코라의 아메후리 잉크를, 오직 비 오는 날에만 살 수 있는 그 잉크를 딱 하루 반나절 비가 내려준 덕분에 살 수 있었던 순간의 마음을 뭐라고 서술해야 할까?
하루에 3만 보씩 걸어다니며 온갖 문구점을 돌아다닌 뒤 산 것들을 풀어보며 느꼈던 감정을 구체적으로 쓴다면 어떻게 묘사해야 알까.
그 감정은 10년 전 폐허가 된 사원을 보고 싶다는 목적 하나로 혼자 캄보디아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다음 날 아침 툭툭을 타고 입장한 앙코르와트와 처음 마주했던 순간 느낀 것과 비슷하다.
그 마음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읽고 너무 깊이 몰입한 나머지 페소아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어 무작정 포르투갈 리스본에 가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헤매다 노란색 트램과 마주쳤던 순간 느꼈던 것과 같은 종류다.
그건 잔잔한 줄 알았던 발목 높이까지 오는 강물에 발을 담가 건너가던 중 예상치 못한 순간 큰 파도가 일어 온 몸이 완전히 젖어드는 것과 같다. 내가 닫고 서 있는 곳이 강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끝없는 바다임을 깨닫고 느끼는 해방감과 같다. 이제 이 바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속박감, 이 파도가 나를 세차게 흔들어 깨워주리라는 생동감, 온 몸의 세포가 순식간에 깨어나는 순간의 환희, 이전에 나라면 '꽂히다'라는 단어로 썼을 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최근에 발견했다.
'벅차오르다'의 사전적 정의는 '큰 감격이나 기쁨으로 가슴이 몹시 뿌듯하여 오다'는 뜻이다. 그건 초등학교 2학년의 내가 분당 서현문고 매대에서 집어든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처음 읽은 순간 나를 관통한 감정의 정확한 서술어다. 문구점에서 6공 다이어리를 처음 보았을 때, 텔레비전에서 <세일러문>의 첫 1화를 다 본 뒤에,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읽었을 때, 크로스핏 히어로 박스의 문을 열고 들어선 첫 순간, <싱어게인>에서 이승윤이 첫 무대를 끝마친 순간, 그가 복도에서 나의 이름을 처음 불렀을 때, 방금 내 몸에서 빠져나온 아기가 눈을 뜨고 처음 나를 본 순간, 문구인 인플루언서의 포스팅으로 트래블러스 노트를 처음 알게 된 순간, 나는 벅차올랐다. 쉬지 않고 벅차올랐다.
돌이켜보면 나의 모든 삶이 벅차오름의 연속이었다. 자주 감격하고 많이 기뻐했으며 뿌듯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이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친구를 붙잡고 '너 그거 봤어? 제발 그 노래 좀 들어봐봐.'로 떠들고 다녔던 날들이었다. 아마 나는 벅차오르는 습관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아마'를 '확실히'로 바꿔 쓴다.
확실히 나는 평생 벅차오르며 살아갈 운명이다.
임종의 순간에도 '이제야 비로소 죽음을 경험하는구나...!'하며 벅차오를 것이다. 나라는 인간이 어떤 마음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이제 정확히 서술할 수 있겠다.
온 마음을 다해 기뻐하며 좋아할 수 있는 대상과 만나 내 마음을 다 줄 수 있다면, 삶이란 왜 사는지 이유를 생각하고 살기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는 지혜의 말이 있지만, 내가 그 이유를 만들어가면 되지 않나, 벅차오르며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