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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베카>,
범죄를 없애는 피해자의 승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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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주

개인적으로 영화 <레베카>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위대한 개츠비>가 떠올랐다. 두 영화는 장르가 다르고 배우도 다르지만 비슷한 시기(위대한 개츠비는 1922년 경이고, 레베카는 명확하지 않지만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대저택을 소유한 부유한 남성과 그가 사랑한 여성 사이에 얽힌 이야기라는 점에서다.


여주인공역을 맡은 릴리 제임스가 이 영화에서는 확실히 매력적으로 나오는데 여주인공의 매력이 이 영화를 살려준 팔 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주인공은 레베카에 비하면 외모가 보잘것없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서 '레베카'는 대체 어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을까 궁금증이 생기지만 끝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외모는 확인이 불가하다. 하지만 우리는 레베카의 외모는 알 수 없어도 그녀의 성격은 추측해 볼 수 있겠다.


* 이하 스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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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베카>의 줄거리는 여주인공이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대저택을 소유한 남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남주인공이 소유하는 잉글랜드의 대저택 맨덜리로 가게 되면서 남주인공의 죽은 전처인 레베카와 관련된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남자 주인공 맥심은 작년에 아내 레베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은 뒤 실의에 빠져 유럽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여자 주인공을 만나 결혼을 한다. 맥심과 결혼해서 드 윈터 부인이 된 여자 주인공은 맨덜리로 가는데, 대저택에 남아있는 레베카의 흔적들과 레베카 이야기만 나오면 과민반응을 보이는 맥심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레베카를 아는 사람들은 누가 됐든 레베카의 미모를 칭송하는 것을 보고 여주인공은 점차 레베카한테 집착하게 되고 레베카 죽음의 경위를 파헤치려고 한다.


처음에는 레베카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익사한 것으로 알았으나 그 후 1년 만에 난파선에서 레베카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숨겨졌던 진실이 하나씩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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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는 맥심과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맥심한테 충격적인 말을 한다. 즉, 런던에 집을 한 채 두고 레베카는 계속 남자들과 자유로운 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중에는 사촌 파벨도 있었다. 레베카는 맥심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할까 봐 자신이 이중생활을 해도 맥심은 절대 이혼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가식적인 상황을 즐겼던 것이다.


어느 날 레베카는 런던에서 돌아오면서 파벨과 맨덜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를 알게 된 맥심도 맨덜리에 왔다. 맨덜리에서 맥심을 만난 레베카는 런던의 병원을 다녀왔다면서 창백한 얼굴로 맥심한테 충격적인 말을 한다.

만약 자신이 임신을 했다면 어떻게 할 거냐. 누구 아빠인지 알 수 없다.


레베카의 말을 들은 맥심은 충격을 받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을지도 모르는 아내 때문에 괴로워하는 맥심한테 레베카는 권총을 쥐어 주면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맥심을 종용했다.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런던의 병원에 다녀온 레베카는 임신이 아니라 자궁암이었고 몇 주 밖에 살 수 없는 상태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즉, 레베카는 몇 주 밖에 남지 않은 말기암 환자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 고통을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맥심한테는 시한부라는 진실은 숨긴 채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것처럼 말하면서 끝까지 맥심을 우롱하였고 심지어 권총을 쥐어주며 자신을 쏘라고 자극하였던 것이다.


레베카는 자신의 살인을 맥심한테 승낙한 것일까?


형법에는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지만 위법성을 조각시켜서 범죄가 성립되지 않게 하는 몇 가지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의 승낙'이란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자의 법익을 훼손하는 행위는 처벌할 수 없게 하는 위법성조각사유의 하나이다. 레베카가 맥심한테 직접 권총까지 쥐어주면서 자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라고 하고 이에 따라 레베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맥심의 행위는 얼핏 피해자인 레베카의 승낙에 의한 것이므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승낙'에 의하여 위법성을 조각시키고 적법한 행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승낙'의 대상이 피해자가 처분할 수 있는 법익이어야 한다. 생명은 아무리 자신의 생명일지라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법익이 아니기 때문에, 설령 피해자가 자신을 살해하는 것을 승낙했어도 피해자를 살해하면 당연히 살인죄로 처벌받게 된다. 살인죄에는 피해자의 승낙이 적용될 여지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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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레베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행위가
레베카의 자살을 방조한 것으로는 볼 수 없을까?


영화에서 레베카는 몇 주 밖에 안 남은 말기암 시한부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자살까지 하려던 것이었는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레베카가 자살을 계획한 것으로 보이는 객관적 정황은 인정될 수 있는데, 만약 레베카가 자살을 계획하고 맥심한테 총을 쏘라고 종용한 것이라면 맥심은 살인죄보다는 처벌이 가벼운 자살방조죄라고 주장해 볼 수는 없을까.


일단 맥심은 레베카가 말기암 환자로 시한부였다는 사실을 몰랐고 오히려 파벨의 아이를 임신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므로 레베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길 때 레베카에 대한 살인의 고의가 있었지 레베카의 자살을 방조한다는 고의는 없었다. 즉, 살인의 고의로 방아쇠를 당겼으나 자살방조의 객관적 정황이 있는 경우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학설이 대립하고 명확한 판례의 입장은 없다고 보인다.


현실에서 이런 상황을 상정하는 것은 어렵다. 자살을 계획하면서 나를 살해하라는 상황은 지극히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 이런 상황이 있다면 발생한 결과만을 두고 맥심한테 살인죄가 인정되는지 여부만 심리될 가능성이 높다.


<레베카> & 살인죄와 피해자의 승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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