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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테이블>
웨딩 알바와 사기결혼

법률로 영화보기

by 고봉주

영화 <더 테이블>은 네 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되어 있는 영화다. 나는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혼자서 조용히 보고 있으면 영화는 참 현실을 잘 담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네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3번째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웨딩 알바가 주제인데, 현실에서는 이런 경우 결혼 전에 진실을 알게 되면 손해배상청구를 고민한다.


* 이하 스포 있음




영화 <더 테이블>의 세 번째 이야기.


1층에 위치한 카페에 젊은 여성과 중년 여성이 마주 보고 앉아있다. 젊은 여성 은희(한예리)는 중년 여셩(숙자)한테 곧 있을 자신의 상견례와 결혼식에서 숙자가 해야 할 자신의 모친 역할을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숙자의 역할은, 상견례 1회, 식장 1회로 행사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총 2회다. 그리고 숙자는 가족 정보를 모두 숙지해서 실수하면 안 된다. 숙자는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서 숙자의 아들, 즉 은희의 오빠와 11년 동안 같이 살고 있는데 은희의 결혼식 때문에 한국에 귀국한 것이다. 그리고 오빠의 가족관계는 10살 딸과 2살 아들이 있고, 직업은 산부인과 개업의인데 오빠의 아내가 아파서 은희의 결혼식엔 불참한다.


화면 캡처 2021-03-31 183003.png


가장 중요한 정보는 은희에 대한 내용인데, 은희는 배현대학교 섬유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왔다. 그리고 숙자의 이름은 은희의 친모 이름인 ‘김희남’이다. 마지막으로 상견례와 식장에서 은희의 모친 역할을 맡을 숙자의 아르바이트 비용은 상견례 50만 원, 식 100만 원이다.


은희가 숙자한테 요청한 웨딩알바에는 하객 알바도 포함되어 있지만 주된 요청 사항은 부모역할을 대행하는 것이다. 역할대행 알바와 달리 하객 알바만 이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하객 알바를 이용한 것을 상대 배우자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설령 몰랐다고 해도 하객 중 일부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사실을 속인 것이 혼인을 결심하게 만드는 중대한 요소를 속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희처럼 부모, 가족관계, 출신학교, 유학 여부 등을 모두 속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화면 캡처 2021-03-31 183020.png


민법에는 혼인취소라는 것이 있다. 혼인한 후에 혼인관계를 해소한다는 점에서는 이혼과 같은데 혼인 전 사유라면 혼인취소를 하고, 혼인 중의 문제가 원인이라면 이혼으로 정리한다. 둘 다 혼인무효와 달리 소급효가 없기 때문에 기왕 발생한 혼인의 효력이 사라지지 않고 양육비, 위자료, 재산분할 등이 문제 되는 것은 동일하다.


민법상 혼인취소 사유는 상대방한테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거나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악질 등의 사유로 인한 경우에는 악질이 있다는 것을 안 날로부터 6월,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경우에는 3월 내에 취소청구를 해야 하고 그 기간이 경과하면 더 이상 혼인취소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간이 굉장히 짧다.


판례는 혼인취소를 엄격하게 인정한다.


판례가 혼인취소를 인정한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에는 알코올 중독, 양성애자 성향을 숨긴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염색체 이상, 무정자증, 성기능 장애, 임신 가능 여부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는 약물치료나 전문가의 도움으로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에 취소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결국 구체적인 사안마다 다르기 때문에 위 예시를 보고 나의 경우에는 혼인취소가 되는지 여부를 가늠해볼 수밖에 없다.


판례가 혼인취소를 인정한 사기 또는 강박에 의한 사유에는 범죄 전과, 이혼, 출산 사실 등을 숨긴 경우 등이다. 즉 배우자의 학력, 경력, 직업, 결혼 전력, 범죄전력, 출산유무, 자녀 유무는 혼인할 때 상대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만약 상대가 미리 사실을 알았다면 결혼을 하였을지를 기준으로 하여 혼인취소가 되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영화에서 은희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총 3번 결혼을 했는데, 2번은 상견례만 했고 1번은 식까지 올렸다고 숙자한테 말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인신고까지 할 생각인데, 알고 보니 은희는 스포츠용품점 사장한테 작업을 하려다가 그 가게 막내 사원한테 감정이 생겨 진짜 결혼을 하는 것이다. 좋아서 하는 결혼을 왜 이런 식으로 하냐는 숙자의 질문에, 은희는 이런 식으로 살다 보면 처음부터 일이 꼬여서 솔직할 기회가 없고 주변에 친구들조차 좋은 사람이 없어서 하객도 모르는 사람인 허수아비가 낫다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결국 은희는 현재 결혼을 하려는 예비신랑한테 학력, 직업, 가족, 부모를 모두 속인 것이다. 결혼 후 언젠가는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될 텐데, 남편은 사실을 안 날로부터 3월 내에 혼인취소 청구를 할 수 있다. 만약 취소청구를 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더라도 혼인관계가 은희의 거짓말로 인하여 파탄 나고 이혼사유가 발생하면 이혼청구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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