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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Oct 11.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18 Greenery 15-0343

그가 앞으로 다가오는 과정은 꽤나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얼굴도 표정도 그리고 선명한 녹색을 제외하고는 각기 다른 색채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그 느낌은 확실한 것이었다. 나무 뒤에서 고개만 옆으로 내밀고 보고 있던 그가 이렇게 직접 앞으로 나오니 조금은 더 그의 존재를 분명히 할 수 있었다.


 묘사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그를 표현할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가지 부분에 대해 다시 떠올려보면 그는 확실히 사람에 가까웠다. 머리와 , 다리를 가진 그런 형태로써의 '사람'이라는 의미. 물론 성별은 여전히 지금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저 나에게는 ''라고 다가왔다.


만약 그에게 목소리 등의 음성이 있었거나 아니면 신체적으로 성별의 차이를 알 수 있도록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었다면 조금은 더 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에게는 그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그대로 '그'였다.


우리는 때로, 시각적으로 보이는 형태를 가지고 나름의 분류를 하게 된다. 좋은 방향이 되기도 하고 나쁜 방향이 되기도 하는 그런 방식이다. 형태를 통한 분류는 '여전히' 유효할까?


그는 전체적으로 녹색을 가졌다. 하지만 모두 다같은 녹색인 배경과는 다르게 무게와 재질이 가진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앞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눈으로  번에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목구비와 같은 것은 없었고 거기에는 표정 없는 얼굴이 놓여있었다. 신기하게도 그가 우리를 보고 있음은,  시선은 표정과는 별개로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가 나무를 지나, 앞으로 걸어 나올 때 팔과 다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걸로 봐서 나는 그가 사람이라고 여겼다. 아무래도 그게 아니고서는 다른 존재를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겁지겁 서두르지도 않고 또 너무 느리게 걷지도 않고 적당한 속도의 걸음이었다. 그런 걸로 보아, 그가 나와 A를 경계하거나 혹은 우리가 여기 온 것에 대해 방어를 하려는 자세가 아님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적당한 보폭과 속도를 가진 걸음 걸이었다. 자연스러웠다.


하나 특이한 것이 있었다면, 그는 옷을 입고 있었다. 조금 통이 있는 팬츠와 구두 (아마도 구두일 것이다) 그리고 조금 오버된 사이즈의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걸을 때 옷이 펄럭거리거나 하는 것을 본 것은 아니고 그가 지닌 실루엣이 알몸의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곡선을 지닌 어깨가 아니라 재킷을 입을 때 드러나는 각진 모양이 보였고, 딱 달라붙는 청바지 같은 것이 아닌 전체적으로 똑같이 떨어지는 그런 팬츠였다. 그리고 그는 맨발이 아닌 팬츠의 밑단에 딱 떨어지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 외에는 다른 액세서리나 특이한 뭔가를 보지는 못했다. 어찌 됐든 그는 애매할 수도 있는 알몸의 형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이 옷을 입고 있었다는 점에서 나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이상한 감정이라는 걸 알지만 그때는 뭔가 더 사람 같아 보여서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정도가 그를 봤을 때 내가 느꼈던 몇 가지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A는 어떻게 느꼈을까? 아니면 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그를 보았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 형태로서, 그는 우리에게 다가왔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찰나와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꽤 긴 시간으로 다가왔다. 표정이 없는 얼굴과 표정이 있는 얼굴들은 서로의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그 시간을 통과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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