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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Oct 10.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17 Greenery 15-0343

두 개의 시선이 만나다는 것은 참, 낭만적이기도 하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쓰니, 조금은 감정적으로 느껴지지만 그건 꽤나 멋진 일이기도 하다. 무언가가 닿았다는 거니까.


"알고 있었어?"

"응, 어느 정도는. 나한테도 찾아왔던 존재니까." A는 무심하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이번에는 좀 다를 거야. 그때는 나에게 휘어져버린 물건을 주고만 떠났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돼." A가 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 멀리 나무 뒤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그를 주시했다.


"그러면, 그러니까 너에게 일그러짐이 생겼을 때도 저 사람이 있었다는 거야?"

"응,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 맞다면 그대로인 것 같아."

"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네."

"맞아, 특히 오늘은 더더욱. 우리는 저 사람을 만나러 가야 돼."

"그 누군가의 시간을 훔친다는 게, 저 사람인 거고?"

"이제야 이해가 좀 되나 보네, 다행이야. 맞아."


가만히 그리고 멀리서 우리를 보고만 있는 저 사람 (그인지 그녀인지는 아직도 애매모호하다. 아무렴, 뭐 상관은 없지만)에게서 시간을 훔치러 가야 한다. 이제야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조금은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더 정확히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존재에게서 나는 시간을 훔쳐야 한다.


그는 아무런 미동도 없다. 아까 처음 그대로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이와 동시에 흐트러짐 없는 시선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무 뒤로 다시 숨지도 혹은 도망가지도 않았다. 나와 A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가볼까?"

"그래, 좋아."


우리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아예 처음이고, A도 그를 보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찾아가서 말을 거는 건 처음일 테니 조심스러운 것도 같았다. 어떤 일이 생길지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가 사라졌다. 상상은 아니면 호기심은 더 이상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이건, 직접 겪어야만 하는 일이니까.


"근데, 무섭지 않아?" 걸어가는 길에 나는 A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했는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도 모르게 지금의 내 감정을 투영하여 말한 것이 아닐까.


"무섭냐고? 안 무섭다고 하면 거짓말이겠고, 근데 아주 조금. 너도 알듯이 세상에는 무서운 일 한 두 개쯤은 널려있잖아. 그거에 비하면 이건 스릴러에 끼지도 못하지."

", 어찌 됐든 너도 무섭긴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날  같으면 나에게 말해줘. 조금은 도움이  테니까. 스릴러에는 끼지 못해도 우린 2인조잖아."

"흐음, 의지가 되는걸."


A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정말로 의지가 될지아닐지는 그녀가 직접 판단하겠지만 나는 적어도, 2인조의  명으로서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무섭기는  똑같으니까.   


짧은 대화를 마치고 우리는 그에게 거의 도착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다만 우리와 거리가 가까워짐으로 인해 그의 시선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마치 우리와의 거리를 재고 있는 것처럼.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니면 일단은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 아님, 악수를 하자고 손을 건네야 할까? 대체 무엇을 해야 하지...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정도 더 가까이 왔을 때 그는 나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선명한 녹색으로 변해있는 공간에서 또 다른 깊이와 무게를 지닌 선명한 녹색이 다른 흐름을 가지며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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