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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Oct 18.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20 Greenery 15-0343

때로는 마음을 먹는 그 한순간이 아주 중요하다. 사각형의 창을 벗어나, 밖으로 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가려진 부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색도 풍경도 그리고 바람도 다른 밖을.


강하게 부여잡고자 나름 의지를 다졌던 내 마음과는 다르게, A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표정의 변화랄지 아니면 행동의 변화랄지 이런 부분으로의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일종의 과정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진짜는 이제 곧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길게만 느껴졌던, 오랜 침묵을 뒤로하고 그는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되었던, 자네들이 왜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 이제 알겠네. 자, 이제 무엇을 할 생각인가?"

"우리는 시간을 훔칠 거야. 일그러짐이 일어나기 전의 시간을." A가 대답했다.

"그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건가. 자네?"

"응, 그 정도는 알아. 성립할 수 없다는 것도."

"음, 이해는 할 수 있네.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도. 하지만 말일세..."


그는 대화의 끝에 말을 흐렸다. 그와 A의 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세세하게 귀담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말이 흐려졌음은 느낄 수 있었다. A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나와 만났던 순간부터 잊지 않고 말을 해줬다. '누군가의 시간을 훔치러 가야 한다'고 그 목적을 이야기했다.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가 끝에 말하려고 했던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도'라는 문장이 나에게 있어 너무나 마음에 걸렸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시간을 훔치는 행위가 간단한 것이 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문장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표현을 하자면, 성립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여기로 찾아온 이유를 알겠다는 것을 그는, 말한 거였다.


쉽고, 간단하지만은 않은 일임이 확실했다. 이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마음에 꽤나 부담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지금만큼은 나는 그녀가 더 걱정되었다. 그녀는 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공터에 온 것인지, 나와는 전혀 다른 부담감을 온 것은 아닌지 잡다한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잃어버린 음표를 찾고, 그녀는 휘어져버린 물건을 원래대로 되돌려놓고. 이 두 가지가 일그러진 세계로 들어온 우리의 목적이 아니었나?'


'그게 아니라면... 뭐가 더 있는 거지?' 나는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그가 내뱉은 흐려진 끝의 말을 다시 듣고 싶었다. 조금은 더 분명하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저기, 시간을 훔치는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거죠? 그런 거죠?" 나는 물었다.   

"아니야, 걱정하지 마. 아주 간단한 거니까." A가 말했다.

"나도 적어도 분위기 정도는 알 수 있어, 쉬운 게 아닌 거잖아."

"아주 쉬워. 아까처럼 나를 따라오면 되는 거야."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표정도 얼굴도 없는 그에게서 나는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A가 나 모르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아니면 A의 말처럼 정말 아주 간단한 일인지도 모르는 이 상황이 너무나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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