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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Jan 30. 2022

한적한, 오후의 그린.

21 Greenery 15-0343

시선이 없는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아무래도 모순되는 말이었다. 시선은 없지만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 참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그가 다시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나에게 있어서는 체감상으로  길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  안됐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침묵이 가졌던 시간을 무심히 가로질러 그의 시선은 우리를 향했다.


그러나 그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떠한 단어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그런대로 우리를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과연, 시선 없는 그의 얼굴에 우리가 담겨있기는 한 걸까?' 나는 다시 한번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바보 같은 생각임을 깨달았다.


'이제는 그만 생각을 하고 싶다.' 다시 한번 바보 같은 생각을 해냈다.


'그냥 이해하고 싶지 않다.' 다시, 또 한 번.


'왜 아무도, 아무런 말이 없지. 너무나 답답해. 뭐가됐든 말을 해달란 말이야.' 역시, 그대로. 바보 같은 생각.   


그녀도 그리고 그도,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 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서로 각자의 생각에 잠겨, 그 침묵에 잠겨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녀와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제발 말을 해줘. 아니면 여기서 그냥 나갔으면 좋겠어. 더 이상은.'


타자를 치는 것은 예상 가능한 일이다. 아니, 영역이다. 나는 뭘 눌러야 할지 알고 있을 때, 비로소 타자기에 손가락을 올리기 때문이다. 뭘 할지, 뭘 쓸지 예상 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 침묵이 너무나 싫었다. 나에게는 예상 가능한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묵묵히 이 시간을 버텨내기에 나는 적합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녀와 그가 말을 해주거나 또는 나를 봐주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


타자기에 내 손을 올려주기를 바랄 수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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