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2 Marsala 18-1438
순서와 방향을 가진 이야기를 들으며 나름 인과관계에 대해 정리를 해보았다.
핵심은 내가 가진 ‘능력(혹은 재능)’을 그의 ‘딸에 관한 무언가'에 적절하게 대입하여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 모든 만남의 시작이자 목적이었다. 그가 선택한 한 명의 ‘적격자’로서 나는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만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회장님, 실례가 안된다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딸에 관한 것에 대해서요. 그게 무엇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게 제일 중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라서 절대적인 비밀을 부탁하네. 모든 내용은 자네와 나, 우리만 아는 것일세.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때는 나도 더 이상은 어쩔 수가 없네…”
어떻게 들으면 협박과도 같은 말투였지만 그의 대답 속에서 무언가를 강요하려는 ‘일방적인 감정’보다는 절박함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우선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졌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 존재하는지와는 관계없이 순수히 그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 졌다.
“네, 약속하죠. 이 곳에서 들은 모든 이야기는 꼭 비밀로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솔직한 감정이었다. 이렇게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았어도 나는 말하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에게는 하나뿐인 딸이 있네. 늦게 얻은 딸아이라 그런지 몰라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 그리고 무엇보다 딸은 아주 평범하게 잘 자라주었다네.”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나누며 그리고 나름의 행복을 찾아서 꽤 잘 지냈다네. 특히 딸아이와 가끔 나누던 대화는 정말 너무나 행복했고, 그 아이의 하루를 나에게 공유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좋았지.”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 조금씩 달라졌던 것 같네… 달라졌다고 표현을 했지만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했다던가 혹은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이상한 행동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아닐세, 말 그대로 달라졌다네.”
“다시 말하면, 딸의 모습 속에서 그리고 딸아이와의 대화 속에서 뭔가 달라졌음을 느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군...”
여기까지 말을 한 뒤에, 그는 멍하니 밖을 바라보았다. 본인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는 감정에 뭔가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딸의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한 명의 관찰자로서 그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네… 딸아이가 가진 '색채'가 사라져 간다는 생각이. 너무나 무섭더군, 투명인간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네. 뭔가 공기처럼 갑자기 사라져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 색채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정신적인 상담도 받아보고 약물을 병행한 치료도 수차례 받아보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었네. 오히려 투명인간이 되어가는 그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네.”
나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급하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저 혹시, 달라지는 '그 모습'이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예를 들어 ‘몸이 야위어 간다던가 혹은 우울증과 같이 한없이 무기력해진다던가’ 하는 그런 종류의 것인가요?”
“그런 것은 확실히 아닐세, 딸아이의 모습은 평소와 다름이 없네. 상당히 활동적이지는 않았어도 나름의 사생활도 있고 또 무엇보다 건강하다네.”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회장님의 ‘주관적인 느낌’인가요?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색채를 잃어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요."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을 했네, 혹시 지나치게 예민한 나의 주관적인 느낌은 아닌지…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네." 라고 말하며 그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다시 한번 말을 했다.
"실제적으로 딸은 확실히 그 색채를 잃어가고 있네. 그 아이의 마음속에 결여된 무언가가 현실로써 그 색채를 사라지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