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봉수 Sep 07.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09 Greenery 15-0343

공터에 도착을 했을 때, 태양은 정가운데를 비추며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사막에 서있는 선인장을 생각하면 항상 수직에 가까운 태양을 맞이하며 그림자도 없이 묵묵히 그 모든 열기를 받아내는데, 그런 분위기와 비슷한 장소였다. 그만큼 태양은 정가운데를 비추고 있었다.


이제 A가 그렇게 말하던 공터에도 도착을 했으니 다음이 궁금해졌다. 뭔가를 정말 훔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아이러니컬하게 '이제는 뭘 해야 하는 건가?'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아마도 이왕 이렇게 공터에 까지 왔으니 뭔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다음을 재촉하며 나는 A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A는 한동안 눈을 감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냄새?라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묘한 코의 움직임이 은연중에 들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아니면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그런 냄새를 찾고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나는 그런 A를 방해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멍하니 바라보아도 좋으니 그저 그런대로 두고 싶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들여 A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처음이었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니 나는 A를 하나하나 보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시간을 들여 천천히, 보고 싶었다. 어디까지나 A의 모습을 정확히 그리고 제대로 보고 싶었다.   


A의 코는 참 예뻤다. 바람을 타고 움직이던 코 끝이 꽤 귀엽기도 했다. 날카롭고 뾰족한 그런 느낌보다는 전체적으로 하나의 곡선으로 이마와 입술의 가장 윗부분을 매끄럽게 연결했다. 의사의 관점이나 영화배우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미적으로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참 자연스러운 연결을 가진 그런 코였다.


나는, '곡선은 자연의 선'이고 '직선은 사람의 선'이라고 믿었다. 아무리 완벽한 직선이어도 현미경을 가지고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결국 어디선가 어긋나게 되어있다. 그 선과 선의 사이에 적어도 몇 만 분의 1 정도 오차는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완벽한 직선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도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완벽한 직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무언가(아마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나 기술 정도가 되지 않을까?)를 부단히 넣어야 한다.


하지만, 곡선은 모든 곳에 존재를 한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곳에 곡선이 놓여있다. 인위적인 무언가를 넣지 않아도 그 상태 그대로 곡선은 태어난다. 이상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곡선이 더 좋았다.


코에서 입술로, 입술에서 다시 눈으로 이어지며 그 시간을 하나하나 담았다. '나는 A의 얼굴을 봤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담아나갔다.        


(지금 와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그때 A의 얼굴에서 어긋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계속 바라본 그녀의 얼굴에서 나도 모르게 그런 '부재'를 찾았다. 물론 그런 게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알 것 같았다. 그녀가 가진 그 부재의 깊이를. 아마도 영원히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이미 알지도 모른다.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전혀, 상관이 없다.)


가끔, 얼굴을 본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기도 한다.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묵묵히 통과를 시켜 나에게 담아내는 그 행위(노력)에는 아무래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A와 눈이 마주치면서 그 시간은 끝이 났다.


얼마나 많은 것을 담아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적어도 A의 코는 자연의 선이었으니까, 그건 그 나름대로 꽤 아름다운 곡선이었다. 그 사실 하나면 나는 A를 봤다고 말할 수 있다.


공백에 가까웠던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굳이 A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고 있다는 듯이 매끄럽게 내 눈을 바라보았다. 마치 공터에서 할 일을 알려주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공터에 도착을 하면서 내가 궁금해하던 '이제 무엇을 하면 되는 건가?'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 뭘 하는 되는 거지?" 나는 A에게 물어보았다. 꽤나 적절한 타이밍에 던진, 아주 적절한 질문이었다.


그때까지도 그렇게 생각을 했다. A의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표류하는 바람에게도 그 나름의 냄새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그 이후였다.


이전 08화 한적한, 오후의 그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