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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Sep 13.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11 Greenery 15-0343

"그러니까, 이게 원래는 직선의 모양을 가졌는데 어떠한 이유로 인해 세계가 일그러지면서 지금처럼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는 거지? 그리고 그게 너에게 남겨진 거고. 맞아?" 나는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싶었다.


"응, 정확해. 그런 일이 생긴 거야." A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을 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이 물건이 원래는 직선이었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이상한 일이 나에게서 음표를 가져간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세계가 일그러진 것과도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모든 게 의문 투성이었다.


나는 우선 하나하나 풀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세계가 일그러진 것은 내 문제가 아니야, 그렇지? 아니 이제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나에게서는 음표를 가져갔고 너에게서는 초승달 모양의 물건을 남겼잖아."


"맞아, 일그러짐이 가져온 결과는 다르지만 우리 둘 모두에게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똑같아. 다만, 너에게는 뭔가가 사라졌고 나에게는 뭔가가 남겨졌어. 적어도 완전하게 같은 건 아니야." A는 내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차이를 강조했다.


A가 말한 것은 상당히 단순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꽤나 큰 차이를 내포한 것이었다. 심플하게는 '잃었다'와 '얻었다'로 보이는 그런 단순함으로 인해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있게 된 것이다.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잃는 건 아무래도 동등하지가 않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정확히 50:50의 무게로 교환이 되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건 거짓일 테지.


"근데 말이야, 그게 세계가 일그러져서 그런 건지는 어떻게 알았어? 나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기억이 안나는 것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말이야. 너는 바로 알았어?"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기다릴 틈이 없었다.


"아니, 바로 알지는 못했어." A는 말했다.


"몰랐다고? 그러면 어떻게 안거야?" 나는 A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A의 대답이 다소 놀라웠다.


"나도 이게 이렇게 초승달 모양으로 변한지는 훨씬 뒤에야 알았어. 그러니 나도 몰랐던 것 같아. 다만, 너에게서 음표를 가져간 그 일그러짐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꼈어." 그리고 A는 뒤이어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너와 나의 일그러짐은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일어난 거라는 말이야.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거지. 그건 확실해."


잠시, 정리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A에게도 역시 일그러짐이 일어났고 편의상 그게 1차라고 한다면 나에게 일어난 일그러짐은 2차 정도가 되는 것이었다. A도 1차의 일그러짐에서는 그 변화를 몰랐고 2차의 일그러짐에서는 그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우리에게 세계의 일그러짐은 동시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느정도의 간격을 두고 순차적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과연 우리는 동등한 일그러짐을 받은 것일까?


아주  시간이 흐르고, 이때의 일을 자연스럽게 까먹어 가고 있을 때가 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나에게 생긴 '잃었다' A에게 생긴 ‘얻었다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을. 그건 동등하지가 않았다는 것을.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나 늦어버린 뒤였다.


왜 그때는 그걸 알지 못했을까... 정확히 반반으로 동등하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짓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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