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봉수 Sep 19.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12 Greenery 15-0343

달은 시간을 두고 달라진다. 초승달과 상현 그리고 보름달, 모양의 달라짐은 꽤 규칙적이다. 하지만 오랜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건 '달라짐'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로 찾아온다.


초승달 모양의 유리 조각품이 '일그러짐'으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이라니, 새삼 다르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A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지어낼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일어난 일은 분명 사실이었다. 이전에 너무나도 익숙하게 듣던 모든 음악, 정확히는 음표 하나하나 기억을 할 수 없다. 그건 확실하다. 무엇보다 내가 알고 있다.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일어난  개의 일그러짐이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 또한 역시나 모르겠다. 하지만 A 확실하게 말을 했다. '나에게서 일어난  일그러짐은 자연스럽게 느낄  있었다'라고 어떻게 느낄  있었을까?


이것도 역시 의문이다. (모든 의문을 해결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의문을 뒤로하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천천히 이해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신기한 일이지?" A가 다시 말을 꺼냈다.


신기한 일... 이라기보다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일에 가까웠다.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하나하나 다 물어보면 여기서 밤을 보내야 할지도 몰라. 아무튼, 신기하고도 이상한 일이야."라고 나는 대답을 했다.     


"신기한 건 모르겠고, 이상한 일은 시간이 해결을 해줄 거야. 그러기 위해 여기에 온 거고."

"그럼, 딱 하나만 물어볼게."

"그래 좋아, 아직 시간은 조금 있으니까 하나만, 딱 하나만 물어봐."

"두 번째 일그러짐을 자연스럽게 느꼈다고 했잖아? 근데 그게 나인건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결과로써 나에게서 음표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나도 모르게 딱 하나라는 조건을 어기고 연달아 두 개의 질문을 해버렸다. 나름, 연관성을 가진 두 개의 질문에 아주 간단하고 명쾌한 대답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면서 A를 바라보았다.


"음,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건 나도 정확히 몰라. 그저 느꼈을 뿐이야,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그냥? 그냥 지나가다가?" 너무나 심플한 이유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거기에는 분명히, 그럴듯한 이유가 존재해야 할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믿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연히', '그냥'이라는 단어들만으로는 모든 것이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건 알아." A는 짧게 말을 한 뒤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꺼냈다.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서서히 새어 나온 게 녹색이라는 것, 아주 선명한 그린(Green)이라는 걸, 그건 확실히 알아. 그 녹색을 따라 이렇게 너에게 온 거고. 이건 직선이 곡선이 된 것과는 아주 달라."


A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생각을 했다. '신기한 일과 이상한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라고, 직선이 곡선으로 변하고 음표가 사라지고 무엇보다 녹색이 새어 나온 그런 일그러짐이 생기고 있다고.  


이전 11화 한적한, 오후의 그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