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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봉수 Sep 26. 2021

한적한, 오후의 그린.

13 Greenery 15-0343

일그러진 공간에서 새어 나온 '선명한 녹색'을 따라 A는 나에게 온 것이다. 이 사실, 이 하나의 설명만이 순차적으로 일어난 두 개의 일그러짐을 연결할 수 있었다. '왜 녹색이지?'따위의 궁금함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세상은 쌍방향으로 흐르지 않으니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뭐가 뭔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만나게 되었는지 말이야. 자, 그러면 본론으로 넘어갈까?"


약간의 체념과 함께 나는 A에게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결과론적으로 나와 A는 여기 공터에 도착을 했고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세상은 너무 일방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일방적으로 생긴 이곳에서 각자의 개인들이 나름의 연결을 만들어가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연결을 가지며.


"좋아, 환상의 2인조가 되는 거야." A가 말했다.


'환상의 2인조', 우리는 여기서 일어났던 누군가의 시간을 훔치러 왔다. 아주 빠르게 그리고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환상의 2인조가 되어야 한다.


"근데, 이제 뭘 하면 되지? 아무리 봐도 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황량한 공터에서 뭘 어떻게 훔친다는 건지 A에게 물어보았다.


A는 나와 똑같이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을 했다.


"선명한 녹색을 기다리면 돼,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거 하나야."

"기다린다고?"

"응, 그저 기다리면 돼. 곧 알게 될 거야."

"..."


나는 더 이상의 궁금함은 뒤로하고, 선명한 녹색을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으로써는 이게 최선의 방법이니까, 무엇보다 A의 말을 따르기로 했으니까.


멀리서 바람이 불어왔다.


여름의 뜨거운 온도를 가득하게 품은 그런 바람이 아주 멀리서 불어오는  같았다. 지표면의 한가운데를 뜨겁게 달구며, 커피의 얼음조각을 아주 가볍게 녹이는 온도가  바람에는 오롯이 담겨있었다.


나무와 나뭇잎들이 흔들렸다.


정확히는 나뭇잎이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자, 나뭇잎 하나가 줄기에서 떨어져 나왔다.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서 떨어져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흔들리지 않았다. 유유히,  공간에  흔적과 궤도를 남기며 땅으로 내려왔다. 이제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리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가 사라진 나무와 다른 나뭇잎뿐이리라.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눈앞의 세상은 전부 녹색으로 바뀌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선명한 녹색'으로 변해있었다. A와 눈을 마주쳤다. A는 소리를 내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제 선명한 녹색이 온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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