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붱 Oct 29. 2020

안 할래요

안녕,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한다. 일상에서 얻게 되는 자잘한 성공 말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큰 성공은 그만큼의 대운이 따라줘야 가능하다는 말을 책에서든 영상에서든 심심찮게 보고 들었다.


운에 대해 맹신하는 편은 아니지만 1년에 한 번씩은 재미 삼아 온라인 사주라도 챙겨보는 내가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기회가 생겼다.


최근에 응원하고 싶은 유튜버가 한 명 생겼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20여 년간 초고도비만으로 살아온 분인데 이제부터 다이어트도 시작하고 타로카드도 공부해서 자기만의 일을 만들어보려고 한단다. 공부 삼아 1주일간 타로 상담을 무료로 해주겠다고 하기에 덜컥 신청했고,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으로 약 30여 분간의 타로 상담이 진행됐다.


솔직히 말해서 큰 기대는 없었다. 하지만 상담을 받는 동안은 답답했던 가슴이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다. 그분이 뽑는 카드마다 좋은 카드가 나왔기 때문도, 그래서 어떤 고민에건 좋은 말만 해줬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에 대한 ‘실체’를 똑똑히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타로 상담은 상대방의 ‘고민’이 있어야 시작된다. 아무런 고민도 없다면 30분이 아닌 1시간이 주어져도 제대로 된 상담이 진행되지 않는다.


나는 큰 고민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확실히 인지하고 있고 실제로 그러한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초의 내 생각과 달리 내 입에서는 쉴 새 없이 ‘고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이런 것까지 고민하고 있었나?’ 싶은 것들까지 술술 나왔다.


앞서 말했다시피 그분은 내게 좋은 말만 해줬다. 잘할 수 있다. 생각하는 대로 밀고 나가면 된다. 정신적으론 좀 힘들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등등. 그 수많은 ‘좋을 것이다’ 중에는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도 있었다.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해도 참가를 하는 것이 작가인 내게도 도움이 되고 그걸 계기로 작가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분의 얘기를 듣는 내내 생각했다. 나도 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준비된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주 전, 나는 브런치에 ‘쓰고 싶은 글이 생겼다’는 글을 써서 올렸다. 실제로 그랬다. 정말 쓰고 싶은 소재가 떠올랐었다. 그것도 여러 개가. 문제는 그 소재들을 하나씩 글로 엮어낼 때 발생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거가 부족하고 공감도 잘 되지 않는 나의 편협한 생각들만 쏟아져 나왔다.


과연 이것들로 공모전에 참가해도 될까? 엄연히 말하면 참가는 가능하다. 다만 수상을 기대할 순 없었다. 지금 다시 봐도 기똥차다 생각하는 기획과 원고를 엮은 작품(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도 대상은커녕 특별상도 받지 못한 공모전이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였다. 나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원고라니. 심사위원은커녕 브런치에 있는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타로 상담을 하고 나서 약 일주일 간 나는 최대한 원고를 써보려고 노력했다. 마음에 안 들어도 편협한 내 생각의 나열들 같다 하더라도 일단 썼다. 원래 초고는 좀 못나고 모자란 것이 당연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계속 글을 쓰고 고쳤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다. 타로카드의 점괘보다 나의 ‘감’을 믿기로 마음먹었다.


공모전 출품용 글을 쓰는 내내 내 마음속에서는 외치고 있었다. ‘이걸로는 부족해.’ ‘소재는 괜찮지만 좀 더 공부하고 보완해야 해.’ ‘아직은 이 글을 세상에 내 보일 때가 아니야.’


글은 ‘마감’이 쓴다는 말이 있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도 있다. 이 말들은 제출해야 하는 ‘기한’이 생기고 컴퓨터 앞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꾸준히만 쓰면 못 쓸 글은 없다는 뜻이다. 이 생각엔 나 역시 이견이 없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말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 글은 아직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내 마음의 소리를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제8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참가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요즘 공모전 참가용 원고 대신 내가 가장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글’을 쓴다. 그동안은 남들에게 보여줄 용도의 글을 쏟아내듯이 썼다면 이제는 ‘나만 보는 글’을 내키는 대로 쓰고 있다. 남과의 대화가 아닌 ‘나와의 대화’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작한 ‘내 맘대로 글쓰기’는 꽤 순조롭다. 대부분 아무 말 대잔치의 글이 나오는데 개중에 한 두 문장은 퍽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들은 인스타에 짤막하게 써서 올리기도 했다. 반응도 괜찮다. 그렇게 올린 글들에는 대개 50개 이상의 ‘좋아요’가 눌렸다. 


인스타에 올린 짤막한 글 몇개



어쩌면 타로카드가 말한 ‘나에게 도움이 되고, 작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이렇게 ‘내키는 대로’의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렇게 나만의 글을 이어가 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또 ‘지금이 바로 그때야!’라고 외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2020.10.29. 09:07)

매거진의 이전글 대체될 수 없는 나만의 일을 찾는 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