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진다. 매일 밤 9시, 10시는 예사고 늦을 땐 밤 12시까지 일하는 남편을 보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많이는 아니어도 조금이라도 벌자.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내가 얼마 전 의뢰가 들어온 검토 작업을 거절했다. 프리랜서 출판 번역가가 돈을 버는 수단은 딱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일반적으로 ‘번역가’라고 생각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일인 ‘책 번역’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검토 작업이다.
검토 작업은 번역가가 아직 국내에 출간 전인 외국 도서를 먼저 읽고 나서 이 책이 한국에 출간된다면 잘 팔릴지 어떨지를 검토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검토 작업은 품은 많이 드는데 단가가 그리 높지 않아서 경험이 많은 번역가보다는 나처럼 경험이 적은 초보 번역가들이 많이 하게 된다(고 나도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작업한 검토서들은 보통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10일 정도의 기간 안에 원서 한 권을 다 읽고 검토서 작성까지 마쳐야 했다.
책 1권 후루룩 읽는 거야 1주일, 아니 3일이면 다 읽을 수도 있지만 (혹은 그보다 더 짧게도 가능하지만) 문제는 한글이 아닌 외국어로 적힌 책을 읽을 땐 시간도 배로 들고 그렇게 다 읽고 나서 내용 요약과 발췌 번역은 물론 책의 장단점 파악 및 출간 시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지, 유사도서는 어떤 게 있는지 등을 파악하다 보면 늘 마감 시한에 쫓겨 허덕이게 된다.
물론 내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더 시간이 걸리는 것일 테다. 이것도 익숙해지면 지금보다는 더 빨리 할 수 있겠지. 다만 검토 작업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 대비 효율이 매우 안 좋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검토 작업의 1건당 단가는 약 10만 원 내외. 에이전시를 거치지 않고 출판사와 직접 거래할 경우 이보다 조금 더 받을 순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검토 작업을 처음 했을 때 나는 타이머를 켜고 일을 해봤다. 실제로 내가 작업에 할애한 시간을 그 당시 받은 금액으로 나눠봤더니 최저시급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걸 보고 기함을 토했던 기억이….(이하 생략)
이처럼 들이는 품에 비해 단가가 높다고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언제 책 번역을 하게 될지 모르는 초보 번역가에게는 이조차도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거늘.
그런 귀한 기회를 제 발로 뻥! 차버리다니.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는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일이든 다 마찬가지이지만 돈을 받고 하는 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한 안에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나처럼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그때그때 일감을 받아 일하는 프리랜서라면 더더욱.
프리랜서는 내가 한 일의 퀄리티가 앞으로의 내 밥줄과 명성(이라고 쓰고 뭔가 조금 쑥스럽지만)에 직결되기에 맡게 되는 일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의뢰받지 않고 그저 혼자 공부하는 용도로 검토 작업을 했다면 ‘하면 좋고, 아님 말고’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돈을 받고 일을 하는 프로가 된 이상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서는 안 된다. 그건 나를 믿고 일을 맡겨준 사람들을 배신하는 일이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코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을 테니.
그렇기에 나는 아무리 당장의 돈이 아쉬워도 기한 내에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일들은 거의 거절하고 있다.
돌도 안 지난 아기를 키우며 집안일은 물론 내 글까지 쓰고 있는 내가 맡을 수 있는 일은 검토 작업은 물론이거니와 책 번역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하겠다고 덜컥 맡았다가 마지막에 가서 못하는 것보다 못할 것 같으면 처음부터 거절하는 편이 내가 프리랜서 출판 번역가로 롱런할 수 있는 길이란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프리랜서에게 필요한 것은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며 갖은 의욕을 내세우는 것보다 그 일은 이러저러해서 제가 할 수 없겠다며 완곡히 거절하는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저러니 말은 했지만 좋은 책이 있다면 (그리고 마감 시한이 좀 넉넉하다면) 검토 작업이든 책 번역이든 다 해보고 싶은 초보 일한 출판 번역가 나부랭이의 넋두리를 이상 마치겠습니다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