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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n 11. 2024

행복의 본질

6월 11일 모닝 페이지

아침잠이 많은 남편이 그날따라 새벽같이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아기방에서도 울음 소리가 새어나온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5시. 일어나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시간이었다.


남편은 전날 신경쓰이던 주식이 있다며 일어나 무언가를 찾아보는 듯 했고 나는 아기가 다시 자기를 기다렸지만 내 바램과 달리 아기의 울음소리는 점차 커져만 갔다. 나는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지난주 주말 아침의 일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지 몇일 되지 않았지만 나는 지난 주말동안 결국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다. 스스로의 다짐을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뜨리게 되면 (그것도 타의에 의해서) 그러고 싶지 않아도 다소 기운이 빠지는건 사실이다.


고백하자면 결혼 후 나는 한동안 우울감에 빠져 살았다. 결혼 전까지 자취 한 번 해본적 없던 나는 결혼 후 본격적으로 맡게된 집안 살림과 요리가 버거웠다. 취직이 안되는 것 역시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해외에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그것도 경력이 단절된 30대 여자가 취업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매우 어려웠다.


취업이 안 된다면 다른 일을 해보자며 호기롭게 도전한 글쓰기와 유튜브, 네이버 오디오 클립 등도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꾸준히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단언컨데 그 당시 나는 글쓰기에 '미쳐 있었다'고 할 정도로 하루에 한 개 내지 두 개 이상의 글을 꾸준히 썼고 유튜브 역시 1주일에 3개 이상의 영상을 만들었으며 오디오 클립 또한 유튜브와 비슷한 주기로 매주 업로드를 했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렇게 얻어낸 성과들은 미미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얻게 된 성과가 적자 그렇게 좋아하던 글쓰기도 싫고 내 삶도 싫어졌다. 이렇게 살아서 무얼하느냐는 생각을 하루에도 여러번 하면서도 눈앞에 있는 '해야하는 일'을 꾸역꾸역 해나가며 겨우겨우 삶을 이어왔다.


그랬던 내가 삶에서 우울감을 밀어내고 그럭저럭 행복한 인생을 살게된건 그 당시 느꼈던 불행과 우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으면서부터였다.


취직도 못하고 하는 일도 잘 풀리지 않는 지금의 내 상황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에 앞서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 지금 내 삶은 이렇구나. 그래서 내가 많이 힘든거구나.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자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부정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만 하던 나의 나쁜 습관들이 하나둘 내 삶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요즘도 때때로 어쩔 수 없는 무력감과 우울감이 나를 덮쳐올 때가 있다. 아기를 낳아 키우며 전보다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때에 할 수 없는 순간이 늘어나면서부터 더 심해진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또 그 순간들을 무던히 넘길 수 있는건 이제는 그 또한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삶이 늘 마음 먹은대로, 생각한대로만 펼쳐진다면 그러한 삶에서 어떤 재미와 행복을 발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을 테니까.


"고기 구워 먹고 싶다."


지난 주 토요일 밤. 문득 고기가 먹고 싶다던 남편과 함께 밤 늦은 시간에 고깃집을 찾았다. 새로운 동네에 이사오고 나서는 처음하는 밤 데이트였다.


뭘 먹을까 하다가 오늘 한정 세일을 한다는 최상급 와규 등심과 갈빗살을 1인분씩 주문하고 무알콜 맥주도 한잔 시켰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날은 왠지 꼭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실제 도수가 있는 맥주를 마시고 싶었지만 모유수유 중이기에 무알콜 맥주로 참기로 했다.


불판 위에 구워지는 고기를 남편 한 점, 나 한 점 집어 먹으며 맥주도 한모금 시원하게 들이켜자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밀도 높은 행복감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은 하루종일 이유식을 만드느라 발이 퉁퉁 부울 정도로 계속 부엌에서 서 있던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지, 하루종일 이유식을 만드느라 종종거렸기 때문에 그때의 그 순간이 더 달콤하게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아기가 잠에서 깼다. 시간은 오전 6시.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 빨리 잠에서 깼다. 이제는 작가가 아닌 엄마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럼에도 괜찮은건 그렇게 시작한 하루가 늘 지치고 고되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행복은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의외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지난 주 주말, 무알콜 맥주와 함께 등장한 최고급 와규 구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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