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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붱 Jul 11. 2024

가끔 져요

7월 11일 모닝 페이지

어젯밤. 퇴근한 남편과 몇 마디 주고받다가 문득 마음이 상했다. 별로 중요한 말도, 그렇게 기분 나빠할 필요도 없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 한마디였다.


그게 왜 그렇게 서운했는지 나조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던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지금 좀 힘들구나.


그날은 하루종일 졸리고 피곤했다. 낮잠을 자도 눈꺼풀이 자꾸 감기고 기운이 안 났다. 아이와 놀아줄 때도 너무 힘들어서 조금 놀아주다가도 아이 놀이 매트 위에 드러눕기 일쑤였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이와 함께 할 땐 최대한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몸은 굼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늘 마음이 무거웠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꼭 진 것 같아서.


예전엔 이런 기분이 들면 더 마음이 안 좋았는데 요즘은 금방 괜찮아진다. 진 것 같은 그 기분을 그저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팬이 아이유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언니는 힘들 때 어떻게 이겨내요?' 그러자 아이유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가끔 져요.'


그렇구나. 그냥 져도 되는 거구나. 마음이 힘들고 몸이 힘들 때마다 늘 이겨내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너무 버겁고 힘들면 가끔 져도 괜찮은 거구나. 단 몇 글자의 짧은 저 답변을 처음 본 순간의 기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이후부터 나는 가끔 진다. 이유 없이 기분이 다운되고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찾아올 때마다 다급히 기분을 전환해 보려고 뭔가를 시도하기보다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혹은 누워서 지금의 이 진 것 같은 기분을 그저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잠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면 신기하게도 다시 움직일 힘이 났다. 어제도 번이고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고 호흡을 골랐다. 몸을 타고 오르며 혼자 노는 아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하며 가만히 숨을 골랐다. 그러자 이번에도 다시 일어나 움직일 힘이 생기더라.


어쩌면 우리에겐 이렇게 가끔 지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힘든 마음과 몸을 알아차리고 기꺼이 바닥에 드러누워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만이 주는 힘도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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