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오늘 같이 커다란 달이 가게 위로 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실 정도로 눈부신 빛을 뿜으면서.
대성은 브레이크 타임때 먹은 음식의 그릇들을 치우고 테이블 위를 행주로 닦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출입문에 달아둔 풍경이 '딸랑'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어서 오세-"
"........"
마치 비라도 맞은 것처럼 정수리부터 어깨까지 이어지는 긴 머리카락이 쫄딱 젖어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사람이 대성의 인사에 서서히 바닥으로 향해있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습관처럼 활짝 웃고 있던 대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 없었다. 눈이.
지우개로 쓱쓱 지워버린 것처럼 안구가 있어야 할 자리엔 그저 새까만 어둠만 자리하고 있었다. 그나마 코와 입술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보통의 사람이라고 보기엔 혈색이 하나도 없고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편하신 자리에 앉으시죠."
너무 놀라 딱딱하게 굳어있는 대성의 앞으로 사장이 쓱 나오며 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잠자코 서 있던 손님이 비로소 조금씩 자리를 옮겼다. 물론 다리는 없었다. 상체만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그 존재는 자신이 지나간 자리마다 투둑투둑, 물처럼 보이는 액체를 떨어트렸다.
'저게.... 뭐지????'
너무 놀란 대성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손님을 쳐다보고 있자 사장이 대성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주문 안 받아?"
"주... 주문이요?"
"그래. 손님이 오셨는데 뭘 멍하니 얼빠져 있어?"
대성은 저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존재도 손님이라고 할 수 있는 거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커다란 눈을 부랴리며 얼른 주문받으라고 턱짓을 하는 사장의 행동에 또다시 꿀꺽 목구멍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사장이 '손님'이라고 지칭한 존재가 지나가며 흘린 액체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손님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간 대성은 작게 심호흡을 내쉬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주.... 주문하시겠어요?"
"..... 여긴 뭘 팔죠?"
"라.... 라멘을 팝니다."
거의 까만색으로 보일 정도로 새파랗게 질려있던 손님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 그럼 라멘 하나 주세요...... 안 맵게 해서...."
"안 맵게 해서.... 알겠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손바닥만 한 메모장에 손님의 주문을 받아 적은 대성은 손님이 지나간 자리마다 생긴 물자국들을 밟지 않도록 펄쩍펄쩍 점프를 하며 사장과 미와상이 있는 카운터 바 안쪽 주방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이... 일단 이렇게 주문하셨는데.... 가능할까요?"
대성의 말에 사장은 대꾸도 없이 도마 위로 야채들을 꺼내며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장의 행동에 머쓱해진 대성에게 미와상이 잠자코 지켜보라는 듯 작게 코를 찡끗하며 씩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자, 가져다 드려."
카운터 바 위로 완성된 라멘 한 그릇이 턱, 올려졌다. 평소보다 국물이 좀 덜 진하다는 것 빼고는 이전에 사장이 만든 라멘과 크게 다른 점은 없어 보였다. 대성은 트레이에 라멘 그릇을 담고 다시 한번 짧게 심호흡을 하며 손님으로 불리는 한 존재를 향해 서서히 발걸음을 떼었다.
"음식.... 나왔습니다, 손님..."
"........."
"그... 그럼 맛있게 드세요...!"
아무런 대꾸도 없이 테이블 쪽으로 살짝 몸을 기울여 가만히 라면을 바라보는 듯하던 존재는 드디어 테이블 위에 놓인 젓가락 통 쪽으로 팔을 뻗었다. 언제 잘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다랗고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손 하나가 젓가락 통을 휘휘 저으며 젓가락을 꺼내는 모습을 보며 대성은 작게 숨을 삼켰다.
"후후-, 후루룩,... 쩝쩝"
묘한 적막감이 가득한 가게 안으로 손님이 라멘을 씹고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파랗게 질려있는 입술 속으로 면발이며 야채며 고기가 끊임없이 들어가고 사라지는 모습을 카운터 바 밑에서 눈만 들어 올려 슬쩍슬쩍 쳐다보고 있던 대성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라멘의 그릇이 비워져 갈수록 파랗게 질려있던 손님의 입술에 서서히 혈색이 돌아오고 축축하게 젖어 얼굴에 아무렇게나 달라붙어 있던 머리카락이 뽀송하게 말라갔다.
이윽고 지우개로 지워놓은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던 안구가 마치 펜으로 슥슥 그려 넣는 것처럼 하나 둘 생기는 것을 보며 대성은 입을 틀어막고 카운터 바 밑으로 주르륵 몸을 미끄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예요?????'
대성은 누구라도 답을 해달라는 듯 찢어질 듯 커다래진 눈으로 사장과 미와상을 번갈아 쳐다봤지만 사장은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방금 사용한 조리도구들을 싱크대 안에 넣고 평소처럼 조리대 위를 행주로 쓱쓱 닦고 있고 미와상 역시 냉장고 안을 살펴보며 재료들을 체크하고 있었다. 오직 대성만이 이 상황이 뭔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대성의 머리 위로 손님의 말이 들려왔다.
"...... 잘 먹었습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면 잘 듣지 못했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왠지 모를 온기와 여유가 느껴지는 그 음성에 대성은 쭈그려 앉아 있던 몸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크게 놀라고 말았다.
잘 정돈된 장발의 머리. 뽀송하게 말라있는 옷과 무엇보다도 진하게 쌍꺼풀 진 커다란 두 눈이 대성을 향해 반달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좀 전과는 전혀 다른 손님의 모습에 대성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딸랑-"
작게 허리를 숙이며 가게를 나서는 손님의 모습을 얼빠진 채로 보고 있던 대성은 어서 가서 테이블 치우지 않고 뭐 하냐는 사장의 핀잔에 다급히 정신을 차리며 천천히 손님이 있었던 테이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는 5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깨끗하게 비워진 라면 그릇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사.... 사장님.....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거.... 에요?"
대성은 머릿속으로는 손님이 사용한 테이블을 얼른 치워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눈앞에서 일어난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좀처럼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대성을 향해 사장이 말했다.
"우리 가게에서 일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규칙 2가지. 기억하고 있어?"
".... 네. 어떤 손님이 와도 놀라지 않는다.... 그리고 첫 번째 규칙을 절대로 잊지 않는다.."
"처음 그 규칙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소... 솔직히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런데...."
대성은 사장이 말하는 '어떤 손님' 중에는 바로 '이런 손님'까지 포함한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손님'이 어떤 손님인지 도저히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장은 대성이 하고 싶은 말이 어떤 건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곤 천천히 대성의 눈에 시선을 맞췄다.
"우리 가게는 보름달이 뜨는 날 자정이 넘으면 저런 손님이 가끔 찾아와. 네가 보기에 방금 저 손님은 어떤 존재인 것 같아?"
대성은 평소와 달리 왠지 한층 부드럽게 들리는 사장의 말이 조금 낯설에 느껴졌지만 일단 그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귀신이나... 유령...... 같은 건... 가요?"
뒤늦게 그게 그건가 싶은 생각에 급 민망함이 몰려왔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사장은 대성의 말에 전혀 웃지 않았다. 마치 대성이 한 말이 너무도 당연해서 달리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뭐, 완전히 그렇다고 볼 수 없긴 하지만, 아예 틀린 말도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돼."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이 재차 답을 요구하는 양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보는 대성을 향해 사장은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저들이 무슨 존재인지 아닌지가 아니니까."
"그..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잠자코 사장의 말을 듣던 대성이 이번엔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그러자 지금껏 사장의 뒤에서 조용히 주방을 정리하고 있던 미와상이 사장의 옆에 나란히 서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손님이 와도 평소처럼 대할 것. 평상시의 대성 군처럼 밝게, 활짝 웃으면서 손님을 맞이하면 돼. 그게 가장 중요하거든.“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대성은 오늘처럼 저렇게 눈도 없고 입술은 막 시퍼렇고 온몸은 쫄딱 젖은 채 공중에 둥둥 떠다디는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자신이 없었다.
미와상은 눈을 내리깔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대성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누구나 따뜻한 라멘 한 그릇 정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장소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 그게 사람이든, 귀신이든 말이야."
언제 들어도 항상 온기가 넘치는 미와상의 말에 대성은 문득 예전에 살던 자신의 자취방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두 평이 겨우 넘는 손바닥만 한 집은 간판에 가려 최악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 외에도 방음이 취약하여 방 안에서는 마음대로 통화는커녕 라면 하나 끓여 먹는 것도 괜히 눈치가 보였다.
조금이라도 제 방에서 소리가 날라치면 곧바로 옆 방에서 "큼큼!" 하며 눈치를 주는 통에 대성은 집 안에 있는 내내 뭔가 소리라도 낼까 싶어 늘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내 집에서도 마음 편히 뭘 먹기는커녕 잠만 겨우 자는 생활을 2년 간 이어왔던 대성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열망이 항상 마음 한 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미와상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대성은 너무나 잘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자신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조금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대성은 보름달이 뜨는 날 찾아오는 특별한 손님의 존재가 서서히 무섭게 느껴지지 않았다. 양쪽 팔이 없고 피칠갑을 한 채 온 손님도, 입이 귀에까지 찢어져서 침인지 피인지 모를 무언가를 질질 흘리던 손님도. 복부가 크게 다쳐 장기가 밖으로 튀어나온 손님도 마냥 무섭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심지어 그렇게 무시무시한 몰골로 가게에 들어온 손님들이 라면을 먹으며 서서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대성은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특별한 손님에 대해 놀라거나 무서워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어갈 때쯤, 대성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사장님. 보름달이 뜨는 날 밤 자정이 넘으면 항상 이런 분들만 오시나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
"그럼요?"
"평범한 사람이 오기도 해."
"정말요?"
"어. 마침 저기 오시네."
사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게의 출입문에 달린 풍경이 '딸랑' 소리를 냈다.
"아직.... 영업하시나요?"
열린 문 틈 사이로 들어가도 될지 말지 고민하는 것처럼 멀뚱히 서서 가게 안을 슬쩍 쳐다보는 손님을 향해 대성은 총총 거리며 다가가 반쯤 열려있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럼요! 어서 오세요 손님!"
대성의 말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숨을 작게 내쉰 손님이 천천히 가게 안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서서히 닫히는 가게의 출입문 너머로 귀 밑까지 똑 자른 손님의 단발머리가 살짝 날리는 모습이 비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