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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20. 2016

마음을 읽는 제과제빵(2)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파티시에 이나무라 쇼우조(稲村省三)를 인터뷰한 글로, 네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이나무라 쇼우조는 도쿄 힐튼호텔에서 일하다가 1979년에 유럽으로 건너가 스위스, 프랑스의 유명 과자점에서 일하면서 제과제빵 학교를 다녔다. 귀국 후 호텔 세이요 긴자의 케이크 부문 톱으로 취임. 2000년에는 【파티시에 이나무라 쇼우조】,2008년에 【쇼코라티에 이나무라 쇼우조】를 오픈한 유명한 파티시에이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이나무라 쇼우조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가게 이름을 정할 때에 꽤 고민을 했어요. 그냥 멋져 보이는 이름은 붙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다만 파티시에라는 건 넣고 싶었어요. 만드는 사람이 나라는 것도요.
이름을 넣자, 그것도 풀네임으로! 싶었죠.
쇼우조 이나무라라고 하든지 이나무라 쇼우조라고 하든지.
일본인인 이나무라 쇼우조가 일본인을 위해서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고.

그래서 결국 [파티시에 이나무라 쇼우조]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이 바로 나였으니까요."


이나무라가 태어난 건 1952년.


사이타마의 쿠마가야시(埼玉熊谷市)

경찰관에서 농부로 직업을 바꾼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림을 좋아했고

무언가 만드는 것이 특기라서

콩쿠르에 출품하기만 하면 상을 받았다.


호기심이 강해

흥미가 생기면 바로 빠져 들어갔다.


감성이 풍부한 소년이었지만

착실하게 공부하는 건 서툴렀다.


"어머니가 교육자니까 공부를 강요하려고 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죠.
남동생은 엄청 우수했지만 말이에요.

중학교 때부터 빗나가기 시작해서 싸움질만 했어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농업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철쭉을 모종부터 키워봤는데 태풍으로 하룻밤 사이에 다 죽어 버렸죠.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걸 순수히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의지가 통하지 않는 세계가 내겐 맞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죠. 하지만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몰라서 더 빗나가기만 했죠."


이대로라면 인생 전체가 빗나갈 것 같으면서도

거칠어진 마음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싸움 때문에 가정 재판소에 불려 갔다가


더 이상 대화가 안 되는 아들에게 지쳐버린 아버지와

같이 걷고 싶어 하지 않은 아들이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늦더위가 극심한 9월이었어요.
뜨거운 석양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는 데
먼저 걸어가던 아버지의 등이 작아져 가는 게 보였어요.

얼굴이 마주치기만 해도 짜증 난다고 싸움을 걸었는데
등을 보니 왠지 짠해져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마음을 바꿔 먹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대학에 가라고 했다.


삼류라도 뭐라도 괜찮으니 대학에 가서 졸업만 하라고.

그러면 월급 자체가 다르다고.


그것도 부모 마음이라고 느끼면서도

끝까지 반항했다.


도대체 뭐가 되고 싶냐?라고 해서

요리사,라고 대답했다.


"고등학교 때 라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바로 옆 가게에서 함박 스테이크나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만드는, 하얀 옷에 모자를 쓴 요리사가 멋져 보였거든요.

그때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제국호텔의 무라카미 노부오 씨가 나온 걸 보고 프랑스 요리라면 더 멋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목표는 프랑스 요리사!


어머니는 엄청 반대를 했지만

조리사 학교에 다닌다는 것으로 눈감아 줬다.


쿠마가야(熊谷)에서 타카다 노바 바(高田馬場)에 있던 조리사 학교에 다니면서

제국 호텔이든지 호텔 오쿠라에 들어가기만 하면 해외로 나갈 수 있다고 꿈꾸고 있었다.


꿈이 있으면

마음이 거칠어질 일이 없다.


그러나

졸업하고 바로


꿈꾸던 취직 자리가 사라졌다.



처음 맡은 일은 산노한텐(山王飯店)의 웨이터.


일 년 후에 어떻게 해서든

꿈꾸던 호텔에 들어가자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뭐든 시작하면 끝을 보자고 덤비는 타입이에요."


그 진지한 모습과

접객에 있어서의 섬세한 배려에 감동한 지배인이

동경 힐튼 호텔에 취직 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꿈꾸던 호텔은 아니었지만

외자계(外資系) 호텔이었으니까 해외에 나갈 찬스는 많다는 말에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했다.


"사람이 남아돌던 시절로 요리사 견습생까지 서른여섯 명이 대기하고 있었어요. 설거지 하는 제일 밑 위치에 갈 때까지 5년 정도 걸린다고 했지만, 거기밖에 없었으니 해보겠습니다, 고 대답했습니다."


처음엔 바의 짐꾼.


천 명이상의 파티가 있으면 맥주를 60 케이스나 운반한다.

주방까지의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턱대고 오로지 운반만 했다.


그 모습에 지배인이,

베이커리에 빈자리가 났는데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뒤뜰에서 계속 빵만 만드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뭐든 배우고 싶고 흡수하고 싶었다.


"내가 만든 빵이 어떻게 손님들에게 제공되는지, 손님들이 어떤 식으로 먹고 있는지 알고 싶었어요. 그게 안 보이는 채로 그냥 빵만 만드는 것은, 단순 작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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