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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와 글 Apr 23. 2016

마음을 읽는 제과제빵 (4)

[글] 요시나가 미치코 吉永みち子 [번역] 소리와 글

이 글은 파티시에 이나무라 쇼우조(稲村省三)를 인터뷰한 글로, 네 부분으로 나눠 번역하였다.

이나무라 쇼우조는 도쿄 힐튼호텔에서 일하다가 1979년에 유럽으로 건너가 스위스, 프랑스의 유명 과자점에서 일하면서 제과제빵 학교를 다녔다. 귀국 후 호텔 세이요 긴자의 케이크 부문 톱으로 취임. 2000년에는 【파티시에 이나무라 쇼우조】,2008년에 【쇼코라티에 이나무라 쇼우조】를 오픈한 유명한 파티시에이다. 사진, 부연설명(*)은 번역자가 덧붙였으며 이나무라 쇼우조의 말은 사각형으로 구분했다.




"설탕이 뜨거워서 손에 물집이 생기고 살이 떨어져 나가는 게 일상이다보니 손이 딱딱해져 갔어요. 막 녹여진 설탕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뜨거워서, 정수리까지 파고듭니다. 그래도 완성된 슈가크래프트를 보면 다 잊어버리고 말아요."


콩쿠르에서 입상이 목표라고 해도

오븐도 냉장고도 냉동고도 없었다.


일이 끝난 후에 머리를 숙이고

관리인의 냉장고를 빌렸다.

복도, 그리고 창고에서

콩쿠르용 작품을 만들고 있는 이나무라의 등 뒤로

매서운 비난이 쏟아졌다.


"눈물이 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조금씩 만들어 왔던 장미 슈가크래프트를 보여 줬더니 모두 입을 다물었어요. 그 뒤로 괴롭힘도 없어졌죠."


샤를르 프루스트 대회(Trophee Charles Proust)에서 은상,아르파죵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획득하고 다음 목표는 쿠푸드 프랑스로 정했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매일 매일 맹연습을 하고 있었던 이나무라는 결국 고열로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겨우 도착한 병원에서

부풀어 오른 편두선을 수술.


6인실 침대 위에서 꼼짝없이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줄곧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은 처음이었어요.

누워서,
병문안하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과 또 누군가의 죽음을,
그냥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프라이드보다 더 중요한 건
한 인간으로서의 마음가짐이라는 걸요.

마침 동생이 결혼한다는 편지가 왔어요.

처음으로 진지하게 동생을,
또 가족을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도요.

그리고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동생을 위해 웨딩케이크를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에 돌아가자고 정했습니다.

만약 아프지 않았다면 분명히 축하한다는 전보 한 통으로 끝냈을 거예요."


외국에 간다는 것으로 끝이 나 있었던 이나무라의 수첩에 귀국이라는 다음 페이지가 생겨났고 이 일은


사람의 희로애락을 중시하는 제과제빵이라는  현재의 이나무라의 목표로 이어졌다.


심플한 이나무라의 가게 창문에는

한 장의 흑백사진이 붙여져 있다.


삿갓을 깊숙이 쓰고 먼 곳을 응시하는 한 농가 여인의 사진

키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일본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일본 근대 사진사를 개척한 전설적인 인물)의 대표작 <아키타>에 수록된 한 장


"20대 때 텔레비전에서 본 이 사진에 첫눈에 반했어요. 그러곤 잊고 살았는데 이곳에 가게를 내고 나서 이상하게 자꾸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찾아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줄곧 찾고 있었던 이미지 같아서요.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요."


쑥스러운 듯이 이나무라가 사진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움.

따뜻함.

풍요로움......


무엇보다 여인의 단아한 아름다움이 흑백사진 듬뿍  배어 나오고 있었다.


형태가 없던 재료가

이나무라의 손끝에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흑백 사진과

가게에 진열된 색색의 과자, 그리고

이나무라 쇼우조.


이 세 개가 원래 하나이었던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다.


여인의 시선 끝에 머무르는 것은,

눈을 돌려서는 안 되는 이나무라의 원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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