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리듬
어렸을 적 가족들이 다 같이 외출을 나갈 때 나는 항상 맨 마지막에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뭉그적거리지 말고 빨리 준비하라고 다그치는 엄마의 잔소리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그냥 그런 아이일 뿐이었다. 특유의 느긋함은 학창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4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우르르 식당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나는 복잡스러운 친구들 사이에서 앞다투어 달리는 게 싫었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때때로 그런 내게 답답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저마다 얼굴이 다르고 성격이 다른 것처럼 모두 자기의 리듬대로 살아갈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입장이 달라졌다. 복잡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에서 나의 리듬대로 살아가는 일이란 보통 눈치가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빠른 업무처리는 일 잘하는 사람의 필수 조건처럼 여겨졌으며, 정해진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회사의 구조는 어쩌면 당연했다. 문제는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였다. 부장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의 반찬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급히 먹어치워야 했다. 눈앞에 신호등이 깜빡거리기라도 하면 지금 당장 건너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은 조금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본능적으로 뛰었다. 제아무리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이라 한들 나만큼은 내 리듬에 맞춰 '조금 느리게' 살아가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나보다 늘 한 템포 먼저 흘러가는 세상을 부랴부랴 따라가다가 지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난 엇갈린 박자를 바로잡기라도 하듯 마음껏, 그리고 열렬히 늘어졌다. 사무실을 연상케 하는 눈부신 형광등을 끄고 노란빛이 감도는 간접등을 켰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책을 골라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마음으로 소파에 앉았다. 느린 재즈풍의 음악을 배경으로 내가 사랑한 문장들을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곱씹다 보면 삶의 시간은 이내 원래의 리듬대로 돌아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공기, 소리, 무형의 기운들은 모두 안단테의 속도로 '느리게' 흘러갔다.
가끔은 회사나 친구들 사이에서 빠릿빠릿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조금은 멍청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세상은 실로 그런 사람을 답답하다고 여기기도 했으니까. 허나 내게 맞지 않는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조금 느린 게 잘못은 아니잖아?' 그럴 때마다 난 속으로 되내곤 했다. 소파 위에 늘어져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리듬에 확신이 생겼다.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일 뿐이라고. 나만의 리듬대로 살아갈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