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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Jul 21. 2022

단서

스탠드 업 코미디에 녹아 있는 유머 코드 파헤치기

가장 먼저 할 일은 분노가 발견된 지점을 찾는 일이었다. 그가 어디서 관객을 자극하고 분노를 촉발했는지, 어떻게 동조하게 만들었는지 그 방식을 알아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사건의 개요를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기로 했다. 



그가 맨 처음 미끼로 들고 나온 것은 성악설과 성선설이었다. 그리고 그는 성악설의 편에 섰다. 데이케어를 하며 어린이들을 많이 돌보았고 아이들에 대해 꽤 잘 알게 된 결과, 솔직히 말하자면 어린애들은 원래 나쁜 새끼들(Tiny little Hitlers)이라는 것이다. 성인들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인데 아이들에게는 아직 이것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아이들이 슈퍼에서 물건을 집어던지고 발로 차며 악을 쓰고 우는 것도 아직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지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고 의도를 갖고 하는 행동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러니까 ‘애들은 원래 나쁘다’는 그의 가정을 전제로 한다면 예상되는 조크의 플롯은 이렇다. ‘아이들은 원래 착하고 순수한 존재다’라는 어른들의 보편적인 인식을 뒤집고 그에 반해 아이들이 저지르는 순수하게 극악무도한 행위를 보여주고, 그로 인해 곤경에 빠지는 어른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다. 24시간 퇴근 없이 아이를 돌보느라 피곤에 절어있는 부모의 모습과 ‘이젠 한계야’라고 생각했을 때 또 한번 한계로 몰아붙이는 상황, 바닥난 인내심을 박박 긁어모아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아이를 진정시키고 타이르려 애쓰지만 도저히 통제되지 않는 아이를 앞에 두고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양육자의 모습, 그런 부모를 한 점 악의 없이 해맑게 엿 먹이며 마지막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아이 등등. 전쟁같은 육아의 현장을 묘사하고 작은 꼬마 아이 한 명에게 끌려다니며 정신을 못 차리는 양육자를 농담의 희생양으로 삼아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것이 정석대로 그의 전제를 회수하고 웃음을 이끌어내는 전개였다. 



예상대로 난동을 피우는 아이가 나왔고 이어서 한 명의 양육자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 양육자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그는 시종일관 머리를 쓸어넘기고 눈을 깜빡거리며 돌고래 따위의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나 반복해대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여기서 사건의 전개 방향을 비튼 흔적이 엿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있는 양육자에게 어떤 필터를 덧씌운 것이다. 그는 육아에 지쳐 후줄그레한 평범한 보호자의 모습 대신 새침한 표정으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예쁜 척 하는 여자를 흉내냈고, 양육자에게 사회에서 통용되는 전형적인 여자의 묘사를 가미함으로써 사건의 초점이 특정 대상에게 맞춰지도록 유도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육아가 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당사자인 부모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이것이 시간차를 두고 성숙하는 인간들이 서로를 보살피는 방법이지만, 어쨌든 인내심을 소모하는 일은 짜증을 유발한다. 이 짜증은 사회 구성원을 길러내는 공공의 일을 공공 부문이 분담하지 않고 사적인 영역에 떠맡겼기 때문에 고스란히 개개인이 떠안게 된 부담이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 이런 배경에 대해 늘 상기하지는 않고 있고, 불쾌한 감정이나 한번 고인 짜증은 어떻게든 재빨리 풀어버리고 싶어한다. 그런 면에서 이 농담의 특히 나쁜 점은 어떤 가능성을 날려버렸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충을 느끼는 육아에 대해 관객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양육자를 묘사함으로써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느낀 부정적 감정들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도 있는 기회였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상황을 수습하고 종결시킬 생각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어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여자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특성을 더해 묘사함으로써 건전하게 승화시킬 수 있던 감정들이 방향을 틀어 특정 대상을 향하도록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의 분노는 여자인 엄마들을 겨냥하도록 조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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