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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Jul 29. 2022

공범

스탠드 업 코미디, 관객과 코미디언이 공범이 되는 과정

사람들이 동조하게 만든 방식은 간단했다.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보고 듣고 접하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길거리에서 유모차를 끌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사람은 대부분 엄마들이었고, 잘 정돈된 긴 머리를 흩날리며 상냥한 말투에 나긋나긋한 몸가짐을 보이는 것도 거의 여자들이었다. 이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사실이 그렇잖아’라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현실에서 엄마들이 애를 주로 돌보는 것도 사실이고, 여자들이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도 사실이잖아. 사실이 그래서 그렇다는데 뭐가 문제야.’라는 생각들. 하지만 여기에는 관찰된 현상만을 바탕으로 한 농담의 함정이 있다. 



왜 우리 눈에 보이는 대다수의 양육자는 엄마들일까? 왜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그런 행동 양식을 더 많이 보이게 된 걸까? 여기에는 여자들을 자원화하는 설계를 토대로 문명을 쌓아올린 사회적 배경이 있다. 노동력을 생산하는 수단으로, 남성들의 쾌락 충족을 위한 성적 대상으로, 누군가는 사유재로, 누군가는 공공재로, 여자들은 사회의 도면 가장 하층부에 배치되었다. 여자들이 사회의 최하층에서 양지로 기어올라오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은 스스로 생존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여자들은 물리적 공간이든 관념적 공간이든 일정 영역 이상 벗어날 수 없었고,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면 목줄이 죄어오거나 쉽게 사살 당했다. 허락된 공간은 남자와 아이의 옆뿐이었다. 운 좋은 사람은 좋은 집으로, 재수 없는 사람은 시궁창 같은 곳으로 배정되었지만 이것은 마치 선택의 문제인 것처럼,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 것처럼 포장되었다. 오로지 성적으로 얼마나 쓸모 있느냐를 최우선의 가치로 평가받는 구조 속에서 우리들은 자발적으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내려놓는 옷을 골라 입고, 더 예뻐보일 수 있는 화장법을 연구하고, 구매자인 남성들이 감수해야 하는 불량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성적으로 매력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을 내면화하고 규격화 되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사람들은 이런 배경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눈 앞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한다. 무거운 구조적 성차별 문제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구조적 모순에 혼란스러워하는 약자들의 이율배반적 행위만 가벼운 조롱거리가 되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처럼 ‘사실이 그렇잖아’를 바탕으로 한 정서가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피해자 집단에게는 ‘그게 싫으면 네가 그렇게 안 하면 되잖아’라는 자기 검열을, 가해자와 방관자 집단에게는 ‘실제로 걔네가 그래서 그렇다는 농담을 한 건데 뭐가 문제야’라는 자기 변명과 혐오를 표출할 구실을 쥐어주는 것으로 말이다. 이로써 웃음으로 동조를 표한 사람들과 선봉에 선 코미디언 사이에 모종의 공범 관계가 성립 되었다. 





#스탠드업코미디 #여성혐오 #굴절혐오 #차별 #사회구조 #성적대상화 #코르셋 

#약자 #조롱 #피해자 #가해자 #혐오 #of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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