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살 때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신발을 살 때면 보수적으로 돌변하는 나의 선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레드 컬러의 키워드>
에너지, 열정
생존, 현실적인, 물질주의, 목표 중심
용기, 솔직함, 깨어남(awakening)
분노, 좌절
몇 달 전 노량진에 있는 임용고시 학원에서 강사 제의를 받았었다. 강릉까지 내려와서 제안을 하는데 마음이 동했다.
'이거 잘 되면 억대 연봉 저리 가라라던데!'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근에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현직 교사로 근무하는 지인에게 그동안 공부했던 책과 자료를 택배로 받았다. 책장 옆에 허리춤까지 쌓인 책을 보자 긴 한숨이 나왔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미쳤구나!'
실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공부가 전공 공부였다. 활자 중독자인 내가 절대 안 보는 책이 전공책이었다. 심지어는 나의 전공에 아주 잘 어울리는 그런 타입의 사람들과 나는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니 내가 미친 거지! 돈에 미친 거야? 아니면 너무 심심해서 돌아버린 거야?
몇 주 동안 책장 옆에 쌓여있는 책을 보며 한숨을 쉬다 전화를 했다.
"죄송합니다.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원장 부부가 다시 강릉에 찾아왔다. 사람의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나는 또 그들의 말에 흔들려버렸다. 딱 3일만 고민해보고 연락을 주겠다며 그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오늘 전화를 했다.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단 딱 1년만 해보겠습니다."
어쩌면 나의 빨간 하이힐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지극히 현실적인 삶 속에서 돈을 벌어보고자 하는 나의 욕망.
지금까지 돈을 안 번 것은 아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과외를 했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일하면서 꾸준히 돈을 벌어왔다. 심지어 사람은 밥벌이를 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엄마 덕분에 일과 일 사이의 공백기에 공공근로도 해봤다.
"너 공공근로 신청했는데 종로구청 됐더라."
나도 모르게 신청한 나의 공공근로 덕분에 6개월여를 구청과 정부청사를 돌며 잉여 인간으로 일하는 경험도 해보았다. 다양한 직업 세계를 경험한 것 같지만 그 어느 것도 '진짜 돈을 버는 경험'같지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 해보고 싶은 아르바이트 목록이 있었다. 빵집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했고, 카페나 서점에서 일해 보고도 싶었다. 옷가게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하고 영화관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싶었다. 이 중에서 내가 실제로 해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오직 과외만 했다. 엄마의 외압이 작용했냐고? 절대 아니다. 내 마음이 나를 붙잡았다. 엉뚱한 마음, 하지만 지금도 힘이 센 마음.
매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가서 정해진 시간만큼 있어야 한다는 걸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왔다. 그 시간에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밀려왔다. 그 시간에 매여서 정말 중요한 일을 못하면 어쩌나 두려웠다. 말도 안 되는 이 생각들이 나를 동여맸다. 결국 나는 과외 말고 다른 아르바이트는 하나도 경험해보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했다. 내 마음 때문에 희망 목록에만 그쳤던 나의 아르바이트들은 살지 못한 나의 삶으로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사실 나를 솔직히 들여다보면 엉뚱한 마음은 전혀 엉뚱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뻔했다. 돈을 벌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체면을 구기는 것이라는 생각, 돈보다 더 중요한 걸 추구하는 고고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나의 마음,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오늘 아침 나의 이 마음속으로 융이 문장 하나를 던졌다.
[몸소 체험하려는 모험을 포기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그러한 모험에의 욕망을 질식시킴으로써 일종의 부분적 자살을 자행하는 셈이다.] - 칼 G. 융, <상징과 리비도>, p.166
무엇이 중요한가?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중요한가, 진짜 현실을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중요한가. 그 모험이 '돈'을 버는 것이라 추해 보이는가? 속물 같아 보이는가? 아니! 어떤 욕망도 추하지 않다. 속물적이지 않다. 욕망이 추해지는 건 그게 나의 욕망이 아니라고 부정할 때이다. 꾹꾹 눌러버릴 때이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나의 욕망에 솔직해질 때 현실에서 그 욕망을 창조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나의 모든 부분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저마다의 생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
쇼윈도 밖에서 구경만 하던 빨간 하이힐을 직접 신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더 나이 들어서 하이힐을 신는 게 힘들어지기 전에 빨간 하이힐을 한 번은 신어보고 싶어 졌다. 굽이 높아 발목을 삐끗할지도 모르지만, 막상 신어보니 발이 너무 불편해 물집이 잡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신어보기로 결정했다. 빨간 하이힐을 신고 빨간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