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하이힐에 대한 욕망

죽기 전에 한 번은!

by Redsmupet
출처 : https://pixabay.com


새빨간 하이힐이 갖고 싶었다.

하지만 최종 선택은 매번 검정 구두였다.

그렇다고 빨간 하이힐에 대한 미련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검정 구두를 살 때마다 빨간 하이힐에 대한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궁금했다.

옷을 살 때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신발을 살 때면 보수적으로 돌변하는 나의 선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레드 컬러의 키워드>


에너지, 열정

생존, 현실적인, 물질주의, 목표 중심

용기, 솔직함, 깨어남(awakening)

분노, 좌절


몇 달 전 노량진에 있는 임용고시 학원에서 강사 제의를 받았었다. 강릉까지 내려와서 제안을 하는데 마음이 동했다.

'이거 잘 되면 억대 연봉 저리 가라라던데!'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최근에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현직 교사로 근무하는 지인에게 그동안 공부했던 책과 자료를 택배로 받았다. 책장 옆에 허리춤까지 쌓인 책을 보자 긴 한숨이 나왔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미쳤구나!'


실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공부가 전공 공부였다. 활자 중독자인 내가 절대 안 보는 책이 전공책이었다. 심지어는 나의 전공에 아주 잘 어울리는 그런 타입의 사람들과 나는 기질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굳게 믿어왔다. 그러니 내가 미친 거지! 돈에 미친 거야? 아니면 너무 심심해서 돌아버린 거야?

몇 주 동안 책장 옆에 쌓여있는 책을 보며 한숨을 쉬다 전화를 했다.

"죄송합니다. 못하겠습니다."


이렇게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원장 부부가 다시 강릉에 찾아왔다. 사람의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나는 또 그들의 말에 흔들려버렸다. 딱 3일만 고민해보고 연락을 주겠다며 그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오늘 전화를 했다.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단 딱 1년만 해보겠습니다."


어쩌면 나의 빨간 하이힐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지극히 현실적인 삶 속에서 돈을 벌어보고자 하는 나의 욕망.

지금까지 돈을 안 번 것은 아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과외를 했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학교에서 보건교사로 일하면서 꾸준히 돈을 벌어왔다. 심지어 사람은 밥벌이를 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엄마 덕분에 일과 일 사이의 공백기에 공공근로도 해봤다.


"너 공공근로 신청했는데 종로구청 됐더라."


나도 모르게 신청한 나의 공공근로 덕분에 6개월여를 구청과 정부청사를 돌며 잉여 인간으로 일하는 경험도 해보았다. 다양한 직업 세계를 경험한 것 같지만 그 어느 것도 '진짜 돈을 버는 경험'같지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 해보고 싶은 아르바이트 목록이 있었다. 빵집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했고, 카페나 서점에서 일해 보고도 싶었다. 옷가게에서 일해보고 싶기도 하고 영화관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싶었다. 이 중에서 내가 실제로 해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오직 과외만 했다. 엄마의 외압이 작용했냐고? 절대 아니다. 내 마음이 나를 붙잡았다. 엉뚱한 마음, 하지만 지금도 힘이 센 마음.


매일 정해진 시간, 정해진 장소에 가서 정해진 시간만큼 있어야 한다는 걸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왔다. 그 시간에 뭔가 중요한 일이 벌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밀려왔다. 그 시간에 매여서 정말 중요한 일을 못하면 어쩌나 두려웠다. 말도 안 되는 이 생각들이 나를 동여맸다. 결국 나는 과외 말고 다른 아르바이트는 하나도 경험해보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했다. 내 마음 때문에 희망 목록에만 그쳤던 나의 아르바이트들은 살지 못한 나의 삶으로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사실 나를 솔직히 들여다보면 엉뚱한 마음은 전혀 엉뚱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 뻔했다. 돈을 벌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체면을 구기는 것이라는 생각, 돈보다 더 중요한 걸 추구하는 고고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나의 마음,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이런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오늘 아침 나의 이 마음속으로 융이 문장 하나를 던졌다.


[몸소 체험하려는 모험을 포기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그러한 모험에의 욕망을 질식시킴으로써 일종의 부분적 자살을 자행하는 셈이다.] - 칼 G. 융, <상징과 리비도>, p.166


무엇이 중요한가?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중요한가, 진짜 현실을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중요한가. 그 모험이 '돈'을 버는 것이라 추해 보이는가? 속물 같아 보이는가? 아니! 어떤 욕망도 추하지 않다. 속물적이지 않다. 욕망이 추해지는 건 그게 나의 욕망이 아니라고 부정할 때이다. 꾹꾹 눌러버릴 때이다. 내 안에서 올라오는 나의 욕망에 솔직해질 때 현실에서 그 욕망을 창조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나의 모든 부분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저마다의 생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


쇼윈도 밖에서 구경만 하던 빨간 하이힐을 직접 신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더 나이 들어서 하이힐을 신는 게 힘들어지기 전에 빨간 하이힐을 한 번은 신어보고 싶어 졌다. 굽이 높아 발목을 삐끗할지도 모르지만, 막상 신어보니 발이 너무 불편해 물집이 잡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신어보기로 결정했다. 빨간 하이힐을 신고 빨간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레드 컬러가 끌리는 날, 당신에게는 어떤 키워드가 와 닿나요?

당신 마음에 닿는 키워드를 골라서 당신의 색깔 있는 하루를 글로 표현해보세요.


<레드 컬러가 끌리는 당신의 체크리스트>

A. 에너지, 열정

1. 나는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인가?

2. 나는 열정적인 사람인가?

3. 나는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인가?

4. 지금 체력이 방전되기 직전인가? 많이 지쳤는가?


B. 생존력, 현실/물질주의

1. 나는 현실주의자인가?

2. 내가 돈 버는데 재주가 있나?

3. 공상만 하는 건 딱 질색인가? 직접 몸으로 부딪혀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C. 용기, 솔직함

1. 감정을 숨기려고 해도 티가 나는가?

2. 직설적인 편인가?

3. 나를 솔직히 들여다 보고 수용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4.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가?


D. 분노, 좌절

1. 화가 난 상태인가?

2. 해결하지 못한 분노나 좌절이 마음에 남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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