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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Jul 05. 2023

베를린에서 가 봐야 할 박물관 산책

세계적인 예술품을 배 터지게 볼 수 있는 박물관 섬

 여행을 하면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은 정말 설레고 멋진 일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꼭 들르는데, 베를린에 규모 면에서나 소장품 면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과 박물관이 한 곳에 모여 있으니 나에게는 최고의 도시였다.  


  베를린 슈프레 강의 커다란 섬 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여 단지를 형성했는데, 이를 박물관 섬이라 부른다. 이곳은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페르가몬 박물관, 신 박물관(이집트 박물관), 구 박물관, 보데 박물관, 구 국립 미술관(국립회화관)을 모두 돌아보려면 이삼일은 족히 투자해야 한다. 건축과 회화, 조각 등  예술작품과 역사 유적을 좋아한다면, 시간을 내서 박물관 섬을 가보기를 추천한다. 박물관패스(2023년 1월 기준, 29유로)를 사면, 3일간 박물관 섬을 비롯한 베를린의 유명 박물관 30곳 이상을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다. 세 곳 이상을 들른다면 박물관 패스가 확실히 가성비가 좋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세계적인 고고학 박물관으로 박물관 섬에서 가장 크고 유명하다. 웅장한 고대 건축물이 현지에서 출토된 그대로 옮겨져, 실제 크기로 재건하여 전시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절 그리스, 이집트, 터키 등에서 가져온 엄청난 크기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규모가 방대하고 그 크기에 압도당하여 입이 떡 벌어진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건축, 조각, 비문, 모자이크, 동상, 보석, 도자기 등 엄청난 전시품이 시선을 압도한다.


  '페르가몬 제단'은 고대 헬레니즘 도시 페르가몬의 아테네 제단을 통째로 가져와서 설치한 것으로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이다. 아랫부분에 신들과 거인들이 싸우는 장면을 주제로 부조 작품들이 새겨져 있는데, 헬레니즘 미술의 정수로 꼽힌다. 하필이면 내가 방문했을 때는 보수 공사 중이어서 너무나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나의 눈길을 끌었던 전시품은 '이슈타르 문과 행렬 길'이다. B.C. 6세기 바빌론 성문과 도로를 길게 재현해 놓았는데, 푸른색의 벽돌에 부조로 장식된 신과 동물들의 모습이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특히 성경에도 나오는 느브갓네살 왕의 시대에 만들어진 유적이라는 점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목판화 장식 벽은 17세기 페르시아 왕국의 기독교 상인 조합의 건물 장식을 볼 수 있는 전시품이다. 한쪽 유리벽 안에서 커다란 고글을 끼고 세밀하게 복원하고 있는 모습을 관람객이 볼 수 있게 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섬세하고 정성스러운지 한참을 서서 쳐다보았다. 한 땀 한 땀 섬세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유물을 복원하는 일이 육체적으로도 꽤나 힘들 것 같았다. 복원전문가는 얼마나 지구력이 있어야 저렇게 지난한 작업을 차분하고도 끈기 있게 해낼 수 있는지 존경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밀레토스 시장문'은 2세기 고대  로마 트라얀 지역의 밀레토스의 건축물을 발굴하여 복원한 것인데, 로마 건축 외관의 가장 중요한 표본으로 꼽힌다. 이 외에도 그리스, 로마의 유적과 이슬람 컬렉 등 다양한 전시품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았다. 도대체 이렇게 거대한 유적들을 어떻게 다 옮기서 재현해 놓았을지 놀라울 따름이다.  


<밀레토스 시장문>



  신 박물관(이집트 박물관)은 조각, 파피루스 등 방대한 양의 이집트 유물을 전시하고 있어 4천 년 이상을 이어온 고대 이집트 문화를 보고 싶다면 가보기를 추천한다. '네페르티티 여왕의 두상'은  B.C. 136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아마르나 왕조의 조각품으로 이곳의 대표적 전시품이다. 사실적 표현이 뛰어난 궁전 중심의 예술 사조, 아마르나 미술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입가의 주름까지 사실적으로 조각하여 마치 살아있는 이집트 여왕이 유리관 안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왕의 얼굴에서 품위마저 느껴졌다. 아쉽게도 여왕의 두상은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 눈으로만 담아 두었다.


  청동기 시대의 '황금 모자'도 이곳에서 유명한 작품이다. 태양력과 음력을 나타내는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마치 탑을 세워둔 것처럼 엄청나게 모자가 길었다. 모자의 길이만큼 권력을 부여했는지 모자 끝이 하늘로 솟을 것 같았다. 



<신 박물관의 유물들>



  구 국립미술관에서는 19세기 독일 예술가들의 회화, 조각 작품과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로댕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고전주의 조각 등을 전시하고 있다. 책에서 봤던 유명한 그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 관람 내내 지루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오랫동안 사로잡은 그림은 마네의 '온실 안에서'라고도 불리는 <겨울 정원>이다. 이 그림은 쥘 기르메와 그의 부인을 그린 두 사람의 초상화인데, 일반적인 초상화와 달리 인물이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잘 차려입은 귀족 부인과 그녀의 뒤편에서 등을 구부린 채 여인을 향한 남성의 손끝과 시선처리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 밖에도 너무나 유명한 작품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과 아르놀트 뵈클린의 <죽은 자들의 섬> 등 훌륭한 작품들을 알차게 관람하고 나왔다.



<마네의 겨울 정원>
<구 구립미술관의 작품 및 전경>



   보데 박물관은 중세 시대의 예술과 문화에 대해 보여주는 곳으로 종교 예술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서 특별히 더 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슈프레 강의  몽비주 다리에 맞닿아 있는 박물관은 건축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품처럼 운치가 있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붉은 카펫이 깔린 대리석 계단과 조각상의 모습에서 위엄마저 느껴졌다.

  이곳에서는 중세 이탈리아와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유물, 비잔틴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림을 비롯하여 조각, 공예품, 동전 등 볼거리가 풍부했다. 





  특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그림과 조각품이 이상하게 계속 눈에 들어왔다. 교회나 성당에서 자주 봐 왔던 십자가의 예수님인데, 왜인지 모르겠으나 이곳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니, 예수님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모습이 고통스러울 것만 같아서 할 수만 있다면 힘들게 매달려 계시지 않고 내려오게 해 드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사하여 주신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상징하는 십자가임을 너무나 잘 알지만, 그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왔다. 


  맛있는 뷔페를 계속 먹으면 질리듯이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작품이라도 너무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보게 되면, 그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어 은근히 피곤하다. 베를린 섬의 박물관들을 욕심내어 다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각자의 시간과 체력을 고려하여 더 흥미롭고 관심 가는 곳 두 세 곳만 둘러봐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나무로 만든 십자가의 예수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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