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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Feb 10. 2023

하이델베르크에서 주운 10유로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따뜻한 추억

  여행지의 인상은 그곳의 경치보다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느껴지는 것이 많다. 하이델베르크가 바로 그렇다. 나에게 따뜻한 도시로 남아 있는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전해보려 한다.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여 하루를 묶고, 다음날 아침 하이델베르크로 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지만, 천천히 여유 있게 보고 싶어서 하이델베르크에서 하루를 묶는 것으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

<하이델베르크 성이 보이는 옛다리>


  플릭스 버스로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하여 구시가에 있는 숙소로 가서 짐을 맡기고, 시내를 돌아본 후 여행책자에 나온 식당을 찾아 가 이름도 모르는 런치 메뉴를 먹었다.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이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해 볼까. 하이델베르크 성을 둘러보고, 구시가지를 걷고, 성령교회에 들어가 기도도 하고, 유명한 식당에서 저녁으로 슈니첼도 먹으며 빠듯하게 시간을 보냈다.

<왼쪽 하이델베르크 성, 오른쪽 성령 교회>


  하이델베르크에서 하루를 묶고 다음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기 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기차로 30분이면 가는 만하임을 갈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만하임을 가려하니 기차표를 또 예약하는 것도 복잡하고, 어제 다 둘러보지 못한 하이델베르크를 더 구경하고, 철학자의 길도 거닐고 싶어서 하이델베르크에서 천천히 시간을 더 보내기로 했다.


  숙소에서 조식을 먹고 있는데, 내 테이블에 합석한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알고 보니 한국분이었다. 잠깐동안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먼저 괜찮으면 멘사 식당(하이델베르크 대학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다. 안 그래도 멘사에서 밥을 먹어 보고 싶었는데, 여행자이기에 멘사 카드를 사서 식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여행자는 식당 요금도 더 비싸서 포기하려니 아쉬운 마음이 크던 차에 멘사 식당에서의 점심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오전에는 각자 개인 시간을 갖고 12시에 숙소에서 다시 그분을 만났다. 그분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오래전에 정치와 철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고, 하노버에서 일하다가 어떤 프로젝트를 맡아서 하이델베르크에 며칠 전에 다시 일하러 오신 분이었다. 앞으로 살게 될 집에 살던 사람이 나가기까지 며칠 동안 내가 묵은 숙소에 있게 되었다고 했다.


  덕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십여 년을 산, 훌륭한 찐 현지 가이드와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 받았다. 가고 싶었던 멘사 식당에서의 점심도 너무나 훌륭했다. 엄청나게 큰 규모의 대학 식당이었지만, 학생들이 꽉 차 있었고 뷔페식의 다양한 메뉴를 고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하이델베르크의 대학생들 틈에서 식사를 하니 잠시 유학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식사 후에 멘사 식당 안에 있는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왼쪽 하이델베르크 멘사 식당 모습, 오른쪽 위 그날 먹은 점심, 오른쪽 아래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하이델베르크에서 꼭 하고 싶은 것이 뭐예요? 있으면 말해 봐요."

  식사를 마치며 그분이 산타클로스처럼 인자하게 웃으며 물었다.  

  "사실 정말 가 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요.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안에 들어가 보고 싶어요."

  전날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건물 안에는 들어갔으나, 학생카드가 있어야만 사물함에 짐을 두고 도서관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기에 계단에서만 도서관 내부를 보고 나와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기에 뜸도 들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 

  "대학 도서관이요? 문제없어요. 제가 안내하죠."

  그분이 이번에 맡은 프로젝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함께 하는 것이었기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멘사 카드와 도서관 이용 카드, 교통카드 등을 제공받아 갖고 있었고, 내가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미로같이 복잡한 도서관 내부를 이곳저곳 안내받으며, 하이델베르크 대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도 보고 도서관 이모저모를 구경했다. 여기 도서관에서는 우리나라의 십진분류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도서 분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내부>


  그분과 함께 구시가지를 걸으면서 어제 지나쳤던 건물이 어떤 곳인지를 듣는 것도 흥미로웠다. 구시가지 안에 교도소가 있었던 것도 그분 덕에 알게 되었다. 감옥은 보통 시내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기 마련인데 시내에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교도관들이 사용하는 건물 뒤편으로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곳이 안 쪽에 있었는데, 건물 위에 철창이 쳐 있는 것도 그분 덕에 확인할 수 있었다.


  맛있는 점심도 사 주고, 대학도서관도 안내해 주고, 너무 감사한 마음에 뭐라도 드리려 했으나 그분은 한사코 거절하셨다.

  "길 가다가 어느 날 돈을 주은 적 있죠? 하이델베르크에서 오늘 10유로를 주웠다고 생각하면 돼요. 아무런 부담 갖지 말고요. 다시 나에게 뭘 해 주려고 전혀 신경 쓰지 말아요. 그냥 10유로 주워서 기분 좋다고 생각하면 돼요."

  내 감사의 표시를 끝까지 거절하시며, 그분이 하셨던 말이다.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멋진 경험을 선사해 주신 그분 덕분에 하이델베르크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게 오랫동안 간직될 것 같다. 10유로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고, 다시 프랑크프루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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