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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r 13. 2023

리스본에서의 인연

뜻밖의 동행자

  비행기 연착으로 저녁 늦게야 리스본 숙소에 도착했다. 리스본의 첫 숙소는 호시우 광장 근처의 호스텔이었는데,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인연을 만났다.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을 앞둔 K. 그녀는 간호사 국가고시를 마치고, 졸업 및 소위 임관을 앞두고 혼자 포르투갈 여행을 왔다고 했다. 며칠 동안 캐나다인과 같이 다니느라 영어로말하느라 스트레스가 많았다며, 나를 만나 한국말을 하게 되니 너무 편하다며 웃는 인상이 선했다.


  K와 이런저런 대화 끝에 우리가 같은 날, 같은 기차로 포르투로 이동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놀라움과 동시에 뭔지 모를 동질감에 우리는 급 가까워졌고, 숙소에서 산타아폴로니아 기차역까지 볼트(콜택시) 타고 같이 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틀 뒤 신트라 여행도 같이 가기로 했다. 안 그래도 신트라 내에서 혼자 이동하기에는 교통편이 애매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터라 잘 되었다 싶었다.   



  그리하여 이틀 뒤, 포르투를 여행하고 리스본으로 온 K의 대학 친구 2명까지 합세하여 총 4명이 리스본 근교 여행을 떠났다. 혼자 하는 여행 중에 가끔 누군가와 동행할 경우가 있는데, 동행이 있으면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멋진 독사진도 건질 수 있고,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고, 돌발상황에서 덜 당황하게 되는 장점이 있다. 이들과 함께 한 하루가 딱 그러했다.


  신트라로 가는 호시우 기차역에서 신트라 원데이 패스(리스본과 신트라 왕복 기차표 및 신트라 내 버스 이용권)를 끊으려 했으나 역무원은 단호하게 그런 게 없다고 했다. 여행 책자나 블로그에 분명히 나와 있는 정보인데 왜 신트라 원데이 패스가 없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해하며, 우리는 기차역에 서서 각자 폭풍 검색을 했다. 그러던 차에 다른 한국인 여행객을 통해 얼마 전에 원데이 패스가 없어져서 신트라 왕복 기차표만 끊고, 신트라 내 버스표는 그곳에서 별도로 구입해야 한다는 최신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K의 친구들은 카스카이스까지 여행하고 오기를 원해서 우리는 당일에 신트라와 카스카이스까지 여행하기로 했고, 호시우에서 신트라로 가는 표와 카스카이스에서 다시 호시우로 돌아오는 기차표를 왕복으로 끊었다.


  신트라에 도착해서 처음 간 곳은 헤갈레이라 별장. 백만장자가 지은 별장답게 멀리서부터 보이는 건물의 위용이 대단했다. 별장이 너무 넓고, 미로 같아서 길을 찾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가장 유명한 것은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우물. 우물을 내려오면 동굴 같은 곳을 지나 작은 연못을 만날 수 있는데, 컴컴한 동굴에서 나와 마주한 하늘이 어찌나 맑고 아름다웠던지...

<왼쪽 헤갈레이라 별장, 가운데 우물과 연결된 연못, 오른쪽 헤갈레이라에서 가장 유명한 우물


  다음 행선지는 무어인의 성벽. 4명이라 볼트를 타고 이동하니 참 편리했다. 무어인의 성벽은 이슬람 세력인 무어인이 8~9세기에 건축했다고 한다. 같이 간 일행들은 성벽을 힘들게 올라가면서 꼭 만리장성 같다고들 했다. 실제 만리장성을 다녀온 내가 보기엔 이 정도 길이의 성벽은 만리장성의 새발의 피도 안 될 만큼 짧았지만 말이다.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가슴이 탁 트일 만큼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왼쪽 무어인의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오른쪽 무어인의 성벽에서 보이는 페나성의 모습>


  시간이 없어서 페나성은 들어가지 못하고,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카스카이스로 이동했다. 당일치기로 두 도시를 다니느라 점심도 거르고, 가져간 빵과 에그타르트, 과자 등의 간식으로 허기만 때운 채 하루 종일 다녔다. 자전거를 빌려서 카스카이스의 해변을 달리는 기분이 너무 상쾌하여 배고픔도 피로도 잊었다. 포르투갈의 겨울은 참 따뜻하고 날씨도 맑아서 여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카스카이스 해변을 누빈 우리의 자전거와 해변 풍경>


  일몰을 본 후, 평점이 좋은 맛집을 검색하여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갔으나 두 곳이나 문을 닫았다. 하루 종일 굶은 우리는 지친 채 겨우 괜찮은 식당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생선 요리와 해물밥, 리소토 등 리뷰를 보며 신중하게 메뉴를 골랐다.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지 우리 입맛에는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그린 와인도 처음 마셨는데, 이날 이후 나는 그린 와인의 세계에 흠뻑 취해 버렸다. 숙소에서 저녁마다 그린 와인을 사놓고, 저녁마다 홀짝홀짝 마셨다.


<왼쪽 우리가 먹은 저녁 만찬, 오른쪽 호시우 기차역>

 

  천천히 저녁 만찬을 즐기고, 다시 기차를 타고 호시우 기차역으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다 되어갔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다니느라 피곤한 하루였지만, 일행들과 함께 하니 즐겁고 풍성한 여행이었다. 


  이후 K와는 포르투로 이동할 때에도 함께 했고, 포르투에서도 두 번이나 더 만나서 함께 일몰도 보고, 카스카이스 못지않은 포르투의 맛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기도 했다. K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이상하게 대화가 잘 통했고, 같이 있으면 참 편했다. 


  며칠 전 국군간호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 소식을 기사로 접했는데, 간호 장교로서 K의 멋진 출발을 멀리서나마 응원한다.  

<왼쪽 포르투의 일몰과 야경, 오른쪽 K와 함께 한 두 번의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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