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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Jun 20. 2023

과거를 기억하는 나라의 현재는 아름답다

역사를 잊지 않는 도시 베를린

  몇 년 전에 독일 뮌헨을 비롯한 남부 지역을 여행하면서 베를린을 가보지 못해서 못내 아쉬웠었다. 지난 1월 글로벌 스터디 기관 탐방 지역에 베를린이 포함되어 너무나 반갑고 기대가 되었다. 베를린 장벽을 비롯하여 역사적 현장을 잘 보존해 놓은 독일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베를린에서 가장 먼저 가 봤고, 여러 차례 본 곳은 '홀로코스트 추모비'이다. 우리가 묵은 숙소 바로 옆, 걸어서 3분 거리에 '홀로코스트 추모비'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저기 오가면서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공식 명칭은 '학살당한 유럽 유대인들을 위한 기념물’이다. 학살당한 유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되었는데, 크기와 높이가 다른 2,711개의 다양한 크기의 정육면체의 돌이 놓여 있다. 네모난 돌들이 마치 미로 같기도 하고, 공동묘지에 놓여 있는 석관을 연상시켰다.


  지하에 있는 작은 기념관에는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의 명단과 수기, 사진 등의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진지한 얼굴로 이곳의 의미를 살펴보는 사람들을 보니, 과거사를 반성하고 역사를 기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홀로코스트 추모비 모습>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Topographie des Terrors)은 나치스의 만행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한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야외의 베를린 장벽 아래 전시물을 설치하여 나치의 만행에 대한 부끄러운 역사를 사진 자료와 함께 낱낱이 보여주고 있었다.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튀어나온 철근까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현장의 모습도 그대로 남겨져 있다. 


  건물 안 박물관에도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에 관한 자료를 상세히 전시하고 있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자행한 온갖 잔혹한 공포에 대한 자료, 전범들에 대한 사진과 기록이 자세히 적혀 있다.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성하는 독일인의 민족의식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다. 


  박물관 내부를 한 바퀴 돌고 벤치에 앉아 화장실에 간 일행을 기다리며 잠시 쉬고 있는데, 직원인지 가이드인지 사진과 이름이 쓰여 있는 신분증을 목에 건 어느 중년 여성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원한다면, 내가 이곳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줄까요?"

  박물관을 이미 다 둘러보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려던 참었기에 우리는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사실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자료 해석하며 읽는 것만으로도 피로도가 상당히 높았는데, 영어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한편으로 외국인에게까지 자신들의 역사와 그 의미를 설명해 주려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는 베를린 장벽의 철거되지 않은 1.3km의 잔해 위에 21개국 118명의 예술가들이 평화를 기원하며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넣은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야외 갤러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며,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그림으로 인해 멋진 야외 갤러리로 재탄생된 독특한 공간이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형제의 키스'.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화합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작품은 검정 배경에 베를린 글씨가 크게 쓰여 있는 그림이었다. 통일된 독일의 희망찬 미래를 나타낸 작품이라고 한다. 비둘기 두 마리가 입에 줄을 달고 브란덴 부르크의 문을 옮기는 그림에도 눈길이 갔다. 제목이 '애니씽 오픈'인데, 동독의 브란덴 부르크 문 개방을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노천에 개방되어 있어서 그런지 낙서도 많았고 그림이 훼손되고 있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작품들>

  체크포인트 찰리는 독일이 동, 서독으로 분단되었을 때, 미군 관할 아래 있던 서베를린 지역의 국경 검문소를 보존해 놓은 곳이다. 커다란 미군의 사진이 간판처럼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작은 검문소 건물이 남아 있다. 옆에는 박물관도 있는데, 분단 시절 독일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는 서독으로 탈출하려는 동독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 자료, 탈출 도구를 전시하고 있다. 생각보다 박물관 안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검문소 근처에는 사람들이 검문소 건물과 바리케이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진짜 군복을 입고 사진촬영을 해 주고 3유로를 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역사적 장소를 관광 상품으로 잘 보존해 놓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면, 어떤 관광 상품을 만들면 좋을까.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체크포인트 찰리>


  독일은 잘못된 역사를 포함하여 모든 시대의 역사를 성실하게 기록하고 기억하는 나라라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현대사에서 자신들의 과오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진정성 있게 사죄하는 독일의 태도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기에 급급한 우리 이웃 국가들이 독일을 본받았으면 한다. 그래서인지 더욱더 역사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에 고매한 품격이 느껴진다. 과거를 기억하는 독일의 현재가 아름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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