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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Aug 05.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화 (2)

제1화. 새 학기의 시작 (2)

  1학년 아이들은 3월 첫 주에 겨우 이틀 등교하고, 3월 말이 되어 겨우 두 번째 등교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그런지 수업 시간인데도 아이들은 들뜨고 산만했다. 수업 준비물이 없는 아이들도 삼분의 일이 넘었다. 은혜는 준비물이 없는 아이들을 자기 자리에 세워두고 반성하도록 하고 훈계했다. 수업을 맡은 5개 반이 비슷한 상황이었다. 


  금요일 4교시, 10반에서는 더욱 가관이었다. 36명이 넘는 아이들의 독서 일지를 개별 피드백을 하는데, 연습장이나 다른 공책에 대충 써낸 것을 검사받으면서 국어 공책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라고 훈계하자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는 아이도 있고, 거칠게 대드는 아이도 있었다. 그 와중에 일부 남자아이들이 계속 떠들고 수업을 방해하여 은혜가 무리를 향해 지적을 하자 “아이, 씨!” 욕인 듯 아닌 듯 불쾌한 감정을 가감 없이 내뱉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태도가 선을 넘은 것 같다는 판단에 은혜도 정색을 하고 '어떤 새끼'가 그딴 소리를 하냐고, 엄하게 꾸짖었다. 순간 교실 분위기는 싸해지고, 몇몇 아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은혜는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아이들에게 당부했다.

  “선생님이 계속 강조했듯이 국어 시간에 학습지나 진로 독서 책, 독서 일지와 같은 준비물을 안 챙겨 오면 수업에 참여할 방법이 없어요.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잘 챙겨 와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하세요. 그리고, 선생님한테 거짓말을 하거나 예의 없는 말과 태도를 보이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행동이에요. 그런 부분에 대해 선생님이 오늘 혼낸 것은 앞으로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종료령이 울리고 은혜는 맥없이 교실을 나왔다. 아이들과 즐겁게 수업하고 싶은데, 이렇게 혼내는 일이 생기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한 달이 지났지만 사실상 아이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서너 번째인지라 아직은 라포 형성이 안 돼서 그런 걸 거라고 은혜는 생각했다. 다음 등교 수업에서는 게임을 하면서 초콜릿도 주며 재미있게 수업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은혜의 몸은 점점 무겁게 가라앉고 녹초가 되었다. 등교 수업 일주일 만에 기력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마흔이 되어서 그런가. 확실히 체력도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확 느꼈다. 에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커다란 텀블러에 남아 있는 우엉차를 다 마셔버렸다. 이백 명 가까운 아이들의 독서일지를 개별지도 하느라 목이 붓고 따가웠다. 아아, 목을 가다듬는 은혜를 보자 눈치 빠른 환경부장이 상태를 파악하고 말했다.      

  “정 부장, 등교 수업 일주일만에 벌써 목이 다 쉬었나 보네.”

  “네, 독서일지를 개별 피드백해서 그런가 목이 너무 아프네요.”

  “아이고, 한 반에 36명이 넘는 아이들을 개별지도 한 거야?”

  “확실히 원격 수업 기간에 집에서 엄마가 돌봐주지 않는 아이들은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거나 딴짓하고, 수업을 못 따라오는 것 같아서요. 모처럼 등교 수업이라 일일이 붙잡고 설명했어요. 안 그러면 격차는 점점 심해질 것 같아서 제가 마음이 급했나 봐요.”

  “거의 200명을 개별지도 한 거야? 뭘 그렇게까지 하고 그래. 이제 자기 몸도 좀 생각하고 살살해. 그런 에너지 아껴서 연애라도 하고. 정 부장이 행복한 게 제일이야.”

  진로 부장 미희도 하던 일을 멈추고 말을 보탰다.

  “에고, 학력 격차가 남의 얘기가 아니네요. 우리 집도 중학생, 초등학생 애들 둘이 방치된 채로 원격수업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자자, 퇴근시간 다 되었네요. 얼른 집에 가서 방치된 애들 돌보세요."

  환경 부장이 노트북을 끄고 황급하게 가방을 싸서 퇴근했다.      



  집에 돌아온 은혜는 옷도 못 갈아입은 채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죽은 듯이 자다가 전화벨 소리에 놀라 화들짝 깼다. 순간적으로 아침인가 싶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8시 25분, 출근해야 하는데 늦잠을 잤나 싶어 깜짝 놀라 계속 울리는 전화를 바라보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다.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아?”

  정보 부장 김현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퇴근하고, 몸이 안 좋아서 잠깐 누웠는데 여태 잤어요.”

  “지금 정 부장, 속 편히 잠잘 때가 아닌 것 같아.”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늘 침착한 현정이 이렇게 말한다면,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뭔데요, 말해 보세요.”

  “그게 말이야. 국어 수업에 대해 민원이 들어왔다는데? 정 부장은 못 들었어?” 

  국어 수업 민원? 대체 뭐지? 준비물 안 챙겨 와서 수업 시간에 혼 좀 냈다고 어떤 학부모가 불만을 제기한 건가? 환경 부장 말대로 연애에나 신경 쓸 걸 그랬나. 은혜는 고등학교에서 십 년 넘게 입시지도를 하느라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주말도 방학도 없이 일하면서 지냈었다. 방학 때에도 아이들 자소서를 봐주느라 여름 방학 때 놀러 간 적도 없었다. 학교에 뼈를 묻는 거 아니라고 동료들이 농담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30대 꽃다운 청춘이 훌쩍 지났다. 선생님이 하시는 프로젝트 수업이 너무 좋다고, 다음 학기에는 어떤 수업을 할지 기대가 된다는 말에 주말에도 더 좋은 수업을 연구하기 위해 좋은 연수를 찾아다녔다. 선생님 수업 덕분에 제가 전보다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게 된 것 같아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피곤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고 기운이 났었다. 언제부터인지 은혜는 일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이유로 부수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매년 늘어만 갔고, 아이들은 그런 수고를 당연하게 여겼다. 백 가지를 잘해 줘도 한 가지를 섭섭하게 하면, 서슴없이 날카로운 감정을 실어 화살을 쏘아댔다. 어떤 민원을 누가 넣은 걸까. 뒷머리가 따끔따끔 바늘로 찌르듯이 아파왔다. 피곤한 한 주를 보내고 드디어 주말이 되었는데, 이번 주말은 맘 편히 쉬기는 글렀다 싶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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