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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Aug 11.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2화 (1)

2화. 수업 배제 (1)

  정보 부장 김현정은 1학년 국어 수업에 대해 민원 들어왔다는 것을 듣고 알려 주려고 전화했다며, 자세한 내용은 1학년 부장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하필이면 1학년 부장이야, 은혜는 잠시 고민했다. 1학년 부장 송자영은 이기적이고, 승진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은혜가 작년부터 전문직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묘한 경쟁심을 가지고 은혜를 경계했다. 그런 송자영한테 먼저 전화해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그런 은혜의 마음을 훤히 아는 현정은 아무 말 없는 은혜에게 냉정하게 일갈했다.

  “정 부장, 이런 일에는 자존심 세우고 그런 거 아니다. 일단 아쉬운 사람이 접고 들어가는 거야.”


  현정의 전화를 끊고 은혜는 한참 동안 전화기만 만지작거렸다.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음이 길게 울리고서야 건조한 목소리로 송자영이 전화를 받았다. 

  “부장님, 주말에 쉬는데 죄송해요. 정은혜예요. 국어과에 민원이 들어왔다고 하던데요. 무슨 내용인지 제가 전혀 몰라서 여쭤보려고 전화했어요.”

  “아, 그거요. 선생님의 지도방식이 과했다고 9반 학부모가 담임한테 불만을 제기했어요.”

  수업 분위기가 가장 안 좋았던 건 10반이었는데, 왜 9반 학부모가 했는지 은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9반이요? 학부모가 어떤 점을 문제 삼았나요?”

  “선생님이 너무 과하게 지도하고 말투가 세다, 아이들을 세워두고 욕설을 했다고요.”

  9반에서 욕을 한 적이 없는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9반에서도 다른 반과 비슷하게 열 명 넘는 아이들이 준비물을 안 가져와서 자기 자리에 세워둔 게 다였다. 수업에 참여하면 바로 앉혔기에 계속 세워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욕설을 했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의아했다.  

  “그 문제로 오늘 교장 선생님이 안 불렀어요?”

  자영이 사무적으로 물었다.   

  “네, 교장실에서 따로 연락 없었어요.”

  “제 보고를 받고도,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을 부르지 않은 게 이해가 안 되네요.”

  은혜에 대한 걱정이나 염려는 없었다. 자영은 단지 교장이 은혜를 안 불렀다는 점에만 초점을 두었다.


  “부장님, 근데 교장 선생님께 보고하기 전에 저한테 미리 말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내가요? 같은 교사끼리 이런 내용의 민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어떻게 해요? 서로 불편하지 않겠어요? 그런 건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이죠.”

  작년에 1학년 1반 담임이었던 자영은 자신과 친한 교무 부장 노정미에 대해 들어온 학부모 민원을 관리자에게는 알리지 않고, 조용히 정미에게 바로 전달했다. 그 덕에 노정미가 해당 학부모에게 바로 연락하여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고 은혜는 들었었다.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한 자영의 속내가 무엇인지 몰라도 마음이 상했다. 더 이상 자영과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은 집에 가서 학교에서 있었던 말을 상황 맥락 없이 뚝 끊어서 전달하곤 했다. 특히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쏙 빼고, 선생님이나 친구가 서운하게 한 대수롭지 않은 행동은 부풀려 속상함을 토로한다는 것쯤이야 은혜도 익히 알고 있었다. 15년간의 경험에 의하면, 아이들의 말만 듣고 화가 나서 연락하는 학부모들과 직접 만나서 전후 상황과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면 대부분 오해가 풀렸다. 그 과정에서 긴 시간 동안 학부모의 감정을 다 받아내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느라 지치기는 했지만 말이다.      


  몇 년 전에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중에 차에서 토한 아이의 토사물을 다 치우고 닦느라 새 옷을 버리고 온몸에 역한 냄새가 난 채 하루종일 다녀야만 했다. 아이는 차에서 내리자 괜찮아졌다며 놀이기구를 타러 갔다. 점심시간에 다시 아이 상태를 확인하느라 찾았더니 토한 아이가 햄버거를 먹으려던 참이었다. 은혜는 혹시 몰라 따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 갈비탕을 사 먹였다. 아이를 신경 쓰느라 모처럼 동료들과의 한담을 즐기지도 못했었다. 

  아이는 집에 가서 선생님이 토사물을 직접 치우고 갈비탕 사주었다는 이야기는 쏙 빼고, 토하고 아파서 많이 못 놀았다고만 엄마에게 전했다. 아이 엄마는 열 시가 넘은 시간에 은혜에게 전화를 했다. 하루 종일 피곤한 몸이 녹초가 되어 막 씻고 자려던 참이었다. 아이 엄마는 격앙된 목소리로 따졌다. 현장체험학습에 담임이 상비약은 챙겨갔느냐, 아이가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바로 데리고 갔어야 하지 않느냐, 보건교사는 동행했느냐며 온갖 허튼소리를 해댔다. 다 들어주고 나서 은혜는 차분하게 상황 설명을 했고, 그제야 아이 엄마는 선생님도 고생하셨겠다며 그런 얘기는 몰랐다며 겸연쩍게 전화를 끊었다. 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죄송하다는 사과나 세탁비나 갈비탕 값을 드리겠다는 말은 전혀 없었다. 아이 엄마의 전화를 끊고 나자 머리가 찌른 듯이 아프고, 화가 훅 치밀어 올랐다. 부모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아이들이라지만, 선생님이 해 준 고마운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고, 힘들었던 상황을 부풀려 전하는지 야속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도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아 서 있었던 누군가가 속상한 마음에 하지도 않은 욕설을 했다고 지어내어 엄마에게 토로한 게 아닌가 싶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은혜는 잠이 오지 않았다. 먼저 교장을 만나서 수업 시간에 있었던 상황과 지도 내용을 말하고, 해당 학부모를 만나서 직접 오해를 풀겠다고 말해야지. 하필 올해 새로 부임한 교장과는 직접 얼굴 본 적도 없는데, 이런 일로 처음 마주한다는 것이 영 불편했다. 

  피곤한 한 주를 보내고 그토록 기다려 온 주말의 평온은 그렇게 깨졌다. 도대체 누구일까, 9반에서 특별하게 신경 쓸만한 일이 전혀 없었는데, 왜 그런 민원이 들어온 건지 영 마음이 찝찝했다. 주말 내내 무엇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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