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향 Aug 18. 2023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3화 (1)

3화. 아동학대 신고 (1)

   진로 부장 미희가 환경 부장 은숙에게 교장실에서의 일을 간단히 전했다.

  “아니, 수업 배제라니!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을 혼낼 때도 있고, 칭찬할 때도 있는 것인데 말이야. 교장은 뭐 평교사 시절에 안 겪어 봤나. 애들이 혼나서 기분 상하면 집에 가서 과장되게 전하고, 학부모가 오해해서 민원 전화를 하는 일은 다반사인데, 이런 일로 교사를 수업 배제한다는 게 도대체 말이 안 되지. 이쪽 얘기는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 말이야.”

  은숙은 펄쩍 뛰었다. 볼 빨간 갱년기라 툭하면 열이 난다던 은숙은 얼굴이 금방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로 흥분했다. 미희는 은숙의 말에 간간히 그러니까요, 라며 반응을 보였다. 은혜는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하게 앉아 있었다.


  “정 부장,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야?”

  은숙이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은혜는 15년이라는 교직 생활에서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봐서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다고 말했었지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수업 배제 상황에서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교육과정 부장님이나 다른 부장님들께 알려서 대책 회의를 할까요?”

  대답 없는 은혜 대신, 미희가 답했다.

  “지금 다들 수업 들어갔을 테고, 조금 이따 점심 먹으러 올라올 테니 밥 먹으면서 같이 방법을 찾아보죠.”      


  급식실 확장 공사를 시작하면서 위탁 업체의 점심이 맛이 없다며, 몇몇 교사들은 도시락을 싸 왔다. 점심시간이 되자 교육과정 부장 홍선영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가장 먼저 들어왔다.

  “안녕들 하세요. 이번 주는 1, 2학년이 원격수업이라 4, 5층은 아주 평화롭고 좋네요.”

  “여기 융합교육부는 전혀 평화롭지 못해요. 날벼락을 맞았거든.”

  은숙이 손가락으로 은혜를 가리키며 선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눈을 껌뻑였다.

  “날벼락?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조금 이따 다들 모이면 얘기할게요. 정 부장, 오늘은 급식실 가지 말고, 여기서 우리랑 같이 밥 먹어요. 냉동실에 얼린 밥도 있고 일회용 수저도 엄청 많으니까.”

  ‘학교는 3분 카레’라는 관용적인 말을 쓸 만큼 소문이 빠른 곳이었다. 은숙은 급식실에서 은혜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불편할 것을 염두하고 센스 있게 말했다.  



  곧이어 정보 부장 김현정과 3학년 부장 조영심이 도시락을 들고 들어왔다. 이들은 은혜와 부장을 함께 하면서 일종의 전우애 비슷한 각별한 관계를 맺어 온 사이였다. 작년까지 있던 전 교장 변종학의 치사하고 비열한 태도로 인해 부장들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남다른 친분이 쌓였다. 은혜에게는 이들이 직장 동료이자 선배였지만, 사석에서는 편하게 ‘언니’라고 불렀다.      


  부장들은 일사천리로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고, 냉동밥을 전자레인지에 해동하며 식사를 준비했다. 제육볶음에 상추와 오이, 고추, 총각김치, 계란말이, 직접 만든 양념장까지 테이블이 꽉 찰 만큼 거하게 한 상이 차려졌다.

  “우와, 오늘 정말 푸짐하네요. 부장님, 날벼락이 뭔데요? 말씀해 주세요.”

  선영이 상추쌈을 커다랗게 만들어 한입 가득 넣고 말했다.  

  “그게 말이야...”

  은숙이 은혜에 대한 학교장의 수업 배제 통보를 압축하여 전했다. 부장들은 놀라서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어휴, 머리야. 내가 학교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어 봤지만, 교장이 민원 들어왔다고, 교사 얘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수업 배제하는 경우는 또 처음 보네. 이게 무슨 일이야.”

  매사에 똑 부러지는 영심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정 부장, 1학년 부장과 주말에 통화는 했어요? 민원 내용이 구체적으로 뭐래?”

  주말에 은혜에게 귀띔해 준 현정은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하며 차분하게 물었다.

  “아주 자세한 얘기는 안 해주고, 9반에서 민원 들어왔다고요. 근데 내가 하지도 않은 욕설을 했다고 해서 영 신경이 쓰여요.”

  “아니, 교장은 민원이 들어왔으면 아이들이나 학부모와 만나서 오해를 풀게 해 줘야지, 수업 배제를 시키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새로 온 교장이라 어떤 사람인지 정보도 없고, 도대체 어떤 꿍꿍인지를 모르겠네.”

  은숙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다들 교육경력 20년이 넘는 베테랑 교사들이지만, 이런 일이 처음이라 은혜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도 학부모 편에 서서 소속을 잊은 사람처럼 교사들을 욕하던 변 교장이랑은 다르겠지. 학교에서는 이렇게 조치했다고 학부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루 정도 수업 배제하며 쇼하는 게 아닐까?”

  선영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상황을 해석하여 말했다.


  “일단, 정 부장. 교장님을 다시 만나서 수업 시간에 있었던 상황을 사실대로 잘 말해 봐요. 빨리 수업 복귀시켜 달라고 요청해야지 않겠어.”

  현정이 침착하게 다음 행보를 제시했다.   

  “그래, 아이들이 잘못하면 당연히 선생님이 훈육을 하는 거지. 너무 걱정 말고, 정 부장! 이럴 때일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일단 점심 든든히 먹어요.”

  선영이 은혜 쪽으로 제육볶음을 밀어주었다. 은혜는 한참 동안 밥을 씹어 겨우 넘겼다. 점점 속이 쓰라렸다. 현정의 말대로 얼른 교장을 다시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이전 04화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2화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